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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Jun 03. 2024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냐면...

나 너무 많은 일이 '잇엇'어



 꽤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뭔가를 할 정신상태도 아니었고 매일 살아간다는 것이 전쟁과도 같았고 그 틈새에서 툰 분량을 채우고 일러 작업을 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해내느라 글을 쓸 여유가 거의 없었다. 투쟁에 가까운 일상 살아내기 가운데에서 글까지 쓴다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2024년 4월 15일 서울의 대학병원에 정신과 입원을 했다. 입원하던 날 처음 안 사실이었는데 그 때 내 몸무게가 5kg 정도 빠져있었다. 밥이 안 넘어간다 싶긴 했는데 그정도인줄은 몰랐다. 열흘간 병원에 있으면서 몸무게는 대충 원상복구 되었지만 한 번 시작된 불안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결국 자살관념이 어느정도 지나간 것으로 만족하고 이런저런 일정이 있는 관계로 퇴원하게 되었다.


 퇴원 후 무사히 견진성사도 받고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미사도 다녀왔다. 생각보다 일찍 성당에 도착해서 주변을 한 바퀴 도는데 성당 입구에서 갑자기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 한 분을 마주쳤고 성당 마당에서 멍하니 있는데 함께 활동하는 다른 분들도 만났다. 무튼 그 날 간만에 반가운 얼굴들도 보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꾸준히 정신과 외래도 다니지만 불안이 쉽게 잡히지는 않는다. 예고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불안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멍청하게 있다가 조금 센 비상약을 처방받았다. 센 약을 먹으면 그만큼 부작용도 세서 안 좋다고 하지만 불안이 심화되면 정말 죽을 것 같기에 약을 안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활동하던 여성 가톨릭 퀴어 단체 카페를 탈퇴하고 그 모임과 관련된 모든 sns를 언팔했다. 1년 남짓 활동하면서 좋았던 기억도 있고 아쉬웠던 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나에게 너무 큰 스트레스와 불안만을 준다. 수녀님과 신부님도 좋은 분들이시고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도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지만 대표는 그렇지 않았다. 나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대표는 나를 밤낮으로 괴롭혔다. 처음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표를 싫어하는게 보여서 왜 싫어하는거지? 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너무 잘 알겠다. 대표는 나잇값도 못할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자기성찰도 되지 않는 인간임이 분명하다. 이런 사람하고 있으면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해하기는 싫어져서 카페를 탈퇴하고 더는 그 곳에 가지 않기로 했다. 내가 대표를 만나러 그 모임 미사를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곳이라 생각하며 정신승리를 하려고 해보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안 되는 것 같다.


 아빠가 나에게 '동성애는 더럽다'는 말을 했다. 아빠의 말에 기분이 나빠 내 정체성은 레즈비언이 아님에도 "응 아빠도 그 더러운 것 하나 낳았어 축하해~" 라고 받아쳤다. 내 말에 아빠는 충격과 상처를 받은 표정을 지으며 너 동성애 하냐? 부터 시작해 온갖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늘어놓았다. 왜 인간들은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말을 쉽게 던지면서 정작 자신들이 미러링으로 받았을 때 엄청나게 상처받고 충격받은 표정으로 반응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상처받고 충격받는건 괜찮고 자신들은 조금도 그런걸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인증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요상한 증상이 다시 살아났다. 의사에게 얘기는 했지만 아직 어떻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내가 다른 무언가인 것 같기도 하고 쉽게 말해 영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일종의 해리 증상이 아닐까 싶다.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첫 상담 때 결론은 1. 먼저 치료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엄마 아빠다 2. 이전에 만났던 대부분의 상담자는 쓰레기다 3. 지금 병원 이전의 정신과 의사는 개새끼다 이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이 말을 엄마 아빠에게 전한다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엄마 아빠는 세상 학문에 의존하는게 아니라 신앙에 의지해 어쩌고 웅앵웅 할 것이며 이전에 만났던 상담자와 정신과 의사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결국 나만 상담을 받을 것이고 그 외에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어찌되었던 살아있다. 하지만 행복하진 않다. 살아있는게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 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고 마냥 불행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하면 지금 평온한가, 그것 또한 아니다. 그럼에도 어찌되었던 현재 내가 컨트롤 키를 잡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나 싶다.


 어떻게든 루틴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요즘은 있는 기력 없는 기력 다 끌어다가 일력 그리기를 하고 있다. 현재는 이거로 된 것이 아닐까. 내가 방향키를 잡고 있고 어떻게든 유지하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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