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소수자인들 너희가 뭐 어쩔건데?
성당 청년회 전체 회식 자리가 있었다. 돌아오는 회식 자리와 여전히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여러 대화가 오갔고, 항상 돌아오는 주제 중에 '애인이 있느냐'는 주제 또한 그 자리에 함께였다.
사실 성당 청년회를 시작하면서 나는 커밍아웃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했다. 그 곳에서 내가 커밍아웃을 해야 할까? 만약에 한다고 하면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며 하지 말아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싶은 고민이 계속해서 오갔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나는 꿇릴 것이 없으며 설령 누군가 나에게 너는 성소수자니 죄인이야 라고 말한다 한들 그들이 나에게 뭐 어쩔건데? 하는 마인드로 살아가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드러내고 자랑은 하지 않되 누군가 물었을 경우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하자 하는 마인드로 성당 청년회 활동을 시작했다.
고기를 굽는 중에 누군가 나에게 남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저는 성소수자고 무성애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커밍아웃을 대답으로 대체하자 사람들이 응? 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대충 예상한 대답이 아니었기에 조금은 놀란 분위기였지만 이내 곧 "무성애자는 처음 본다" "내 친구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다" 하는 말로 내 커밍아웃은 상당히 자연스럽게 치고 빠지는 형태로 흘러갔고 나는 이어지는 사람들의 무성애자에 대한 질문에 간단하게 팩트 체크를 해주는 정도로 대화는 정리되었다.
이 일을 겪으며 내가 느낀 것은 당사자가 먼저 쫄거나 쭈뻣대며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당당하게 나가면 상대가 뭐라 할 틈이 없고 그저 나는 '내가 성소수자인거에 너희가 뭐 어쩔건데?' 하는 마인드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당사자들이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성소수자로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고 우리는 그저 살아가면 되니 말이다. 당당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하면 혐오를 일삼는 혐세들이야말로 당당하지 못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 상황에서 굳이 잘못한 사람을 꼽으라 한다면 잘못한 사람은 성소수자가 아니라 혐오세력이니까.
나는 앞으로도 당당하게 살아갈거다. 성소수자이고 무성애자라는 정체성이 나에게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고 되려 나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그 정체성으로 다른 세상을 보고 남들이 겪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되니 나에게 이 정체성은 일종의 재능과 같다고 생각한다. 설령 혐오하는 인간을 만난다 한들 신경쓰지 않고 지나가고 싶다.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이니 말이다.
(아무데서나 막 커밍아웃을 떠벌리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커밍아웃은 안전이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