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을 원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한 나날, 평범하게 살아가고 평범하게 원하는 것을 하고 평범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일상을 원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각자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하게 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본당 공동체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다.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그런 곳에서 온전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는 잘 지낼 수 있던가. 성당에 다닌다는 이유로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도 우리는 소속감을 완전하게 느끼기 어렵다. 여전히 종교가 있는 성소수자는 낯선 존재고, 종교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종교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 종교 꺼져를 외치기도 한다. 그런 곳에서 우리가 뿌리를 내리는 것은 아직까지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곳을 만들기로 했다. 이런저런 많은 불합리에 휘말리다가 우리는 평범한 나날을 위해 활동가로 뛰어들었다. 이로 인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도, 인류애가 삭감되는 순간도, 주저앉고 싶은 순간도, 모든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불합리가 우리를 무릎꿇게 하지 못하였듯 이런 순간들도 우리가 우리를 위한 안식처를 만들겠다는 그 의지를 깨부수지 못했다.
언젠가 어느 글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많은 것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내가 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나는 내가 한 것에 비해 이 곳에서, 그리고 이 사람들에게서 정말 큰 것을 받았다고. 나는 내가 이 공동체를 지키고 다져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이 공동체가 나를 지키고 키워온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자라고 살아가며 연대한다. 각자로 보면 부족한 점도 있고 때로 뒤쳐지거나 넘어지기도 하고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서로 기다려주고 일으켜주고 이해하는 방법을 살아가고 있다. 활동가가 된 각자의 계기는 다를지 몰라도 그 안에서 만난 우리는 하나의 집을 지은 셈이다. 성당을 다니는 성소수자, 퀴어 크리스찬을 위해 무지개로 지은 A라는 어느 안식처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