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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Nov 19. 2024

HAPPY BIRTHDAY TO ME

어쩌다 태어나 살아있는 것을 축하해


 사실 생일은 이 글을 쓰는 시점인 11월 19일로부터 사흘 전인 11월 16일이다. 하지만 이제야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오늘 공동체 내에서 크게 생일 축하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코 내가 게을러서 이제야 글을 쓴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근래에 들어 인류애가 팍삭 식고 대폭 삭감되는 일이 있었다. 원래부터 인류애가 그렇게 풍성하지 않았긴 하지만 쥐꼬리만큼 있던 인류애가 반절 정도는 블립이라도 당한 마냥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 일의 중심에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그 중 한 가지 사건을 얘기하면, 내가 청년회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성당 청년회에서의 내 커밍아웃과 커밍아웃 이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진 점, 나는 젠더퀴어이니 자매님 말고 교우님으로 불러달라 라고 말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자매님이라 지칭한 것이 쌓이고 쌓인 상태였지만 내가 성당 청년회를 더이상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청년회 11월 일정표에 남들 생일은 다 넣으면서 내 생일을 넣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취급을 받으며 본당 활동을 해야 하나 싶은 회의감도 본격적으로 느껴졌고 이렇게까지 취급을 받으면서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재는 관련 단톡방을 나오고 관련 인물들 연락처를 차단한 상태다.


 이 일로 나는 인류애가 대폭 깎였고 며칠간 우울하고 또 며칠은 자낮 상태였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었는데, 예전같으면 나는 우울에 상당히 취약해서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였을텐데 이번 일을 겪으며 보니 가벼운 감기처럼 우울과 자낮을 겪고 지나갔다. 이전과 다른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예전같으면 혐오와 차별로 내가 설 곳이 없었고 내가 서있는 곳이 밑바닥 없는 진흙탕 같은 곳이라 조금만 정신적으로 힘들면 크게 휘청거렸는데 지금은 마치 단단하고 평평한 지반을 밟고 서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조금 흔들려도 그정도는 그냥 흔들리고 지나가는 것 같다.


 내가 활동가로서 이 곳에 와서 참으로 많은 것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한 나의 착각이었다. 내가 한 것들은 정말 작고 미약한 것이었고, 오히려 내가 살아갈 수 있게 나는 이 안에서 보호받고 지켜졌다. 이 곳에서 내가 한 것에 비해 나는 정말 큰 것을 받아버린 셈이다. 이를 내가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더 좋은 활동가로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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