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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Nov 05. 2024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를 위한 위령미사를 다녀오다

주님, 간절히 청하건데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11월 치고 날씨가 많이 따뜻한 날, 용산의 예수성심성당에서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를 위한 위령미사가 봉헌되었다. 우리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성당에서 우리의 미사가 처음으로 봉헌되었다. 성소수자 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는 순간 '우리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수없이 돌아왔지만 어떻게든 우리는 성소수자를 위한 미사를 성전에서 봉헌했다.


 무려 처음으로 성전에서 봉헌되는 우리의 미사인데 반주자가 없다고 해서 피아노를 한참 전에 놓은 내가 성가 반주를 하겠다며 나서고, 우리 활동가들이 돌아가며 전례 봉사를 해서 어찌어찌 미사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사무실부터 경당과 기도실에서 미사가 봉헌된 적은 있었지만 성당에서 봉헌되는 것은 처음이다보니 우리 역시 미사가 봉헌되는 내내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어찌되었던 미사는 무사히 끝났고 나 역시 버벅댄 구간이 있긴 하지만 어찌어찌 반주를 끝냈다. 긴장의 연속이 이어지다가 짧은 연도까지 바치고 미사가 끝나고 나니 힘이 쫙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를 위한 위령 미사를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나 역시 활동가가 되기 전에 이 미사를 다녀온 적이 있었기에 아주 낯선 느낌은 아니었지만 미사가 끝나고 나면 어딘가 쓸쓸한 기분이 든다.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성소수자들이 그런 기분이었을까. 등돌린 사회의 잘못이고 먼저 손내밀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라 생각한다. 부디 지금이라도 평안하고 따뜻하기를 바란다.



 주님 그들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회의 잘못이며 모두의 탓입니다

 간절히 기도하오니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소서

 그들에게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




미사가 봉헌된 성전 내부. 아담하면서 꽤 예쁘다.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기도문과 퀴어한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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