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과 재정비

일희일비의 일주일

by 재재형제맘

열흘 정도 된 것 같다.

새벽에 컴컴한 거실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는 남편을 목격했던 때가...


나야 원래 수면의 질이 항상 안 좋아서

2시간마다 깨는 사람이고...

고민이 있으면 한숨도 못 자고

밤을 꼴딱 새우는 사람이지만...

남편은 달랐다....


머리만 닿으면 잠드는 스타일인 남편...

연애할 때도 잠이 너무 많은 남편의 별명은 '나무늘보' 아니면 '코알라'였다.

전화가 안 돼서 보면 자취방에서 잠자고 있었다.

난 옆 학교 대학원생이었고 남편은 옆학교 늦깎이 학부생이었다.

그렇게 잠을 많이 자면서 공부는 어떻게 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결혼하고 나서도 하도 누워있기만 해서 '가로본능'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더랬다.


내가 집안일을 한다고 사부작 사부작 하고 있으면

자기 쉬지도 못하게 자꾸 움직인다고 제발 가만히 같이 앉아있자고

그리고 놔두면 주말 내내 잠만 잘 것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새벽에 깨서 우두커니 멍을 때리고 있던 것이다.

잠을 안 자고 어두운 거실에서

축 늘어진 어깨로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여보, 우리 파산 직전이야...."


결혼 11년 동안...

우리가 양가 도움 하나 없이 무일푼에서 청약이 되었을 때도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집 재정 상태를 언급한 적 없었더랬다


둘 다 쓸데없이 가방끈이 길었고

학자금을 갚고 있었다.

남편은 한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과정을 밟았고..

우리가 결혼할 당시 나도 내 커리어로 승승장구할 때였고

그는 아직 레지던트 2년 차였다.


전문의 시험에 붙고

외래 진료를 보면서 그도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는 금쪽같은 아들 둘을 낳았다.

나는 둘째를 낳으며 회사를 그만두고...

번역과 강의로 프리랜서의 길을 걸으며

육아와 병행하면서 벌이는 일정치 않았다.

프리랜서로 통번역 강의로 다시 커리어를 시작하려고 할 때 코로나가 터졌다.

첫째 46개월 둘째 18개월 때였다.

그리고 남편은 개원을 하기 위해 일을 쉰 지 3개월.

그런데, 청약 당첨 문자를 받았다.

어떠한 것도 준비되지 않은 채.


그때부터 남편 혼자 외벌이로 무에서 유를 만들기 시작했다.

코로나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에

남편은 우리가 사는 곳에서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입원실 한의원을 개원했고

입원실이라는 특성 때문에 혹시라도 코로나 환자가 입원을 할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매일매일 살얼음 판을 걷듯 일을 했더란다.


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일을 하는 남편

계속 이어지는 가정보육과

남편 없이 혼자 남겨진 채

코로나라는 무서운 질병을 피하기 위해 밖에 나가지 못하고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하루하루 나 자신이 없어지는 나날들을 보냈다.


하루 세끼를 식단 짜가며 유아식을 먹였고

티브이도 없고 책육아 주의라서

책 읽어주고 모든 촉감 놀이와 미술 놀이를

내가 집에서 혼자 해줬었다...

남편은 주말에만 집에 오고....

다행스럽게도 코로나 기간 동안 내내

남편 병원은 코로나 환자들이 피해 갔다...


이런 생활을 1년 정도 했더니...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 당시 일기장엔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 너희가 즐거웠으면 돼... 너희가 웃으면 돼... 근데 엄마는 왜 이렇게 슬프지?'


그렇게 나는 서서히 무너져갔었다...

그때 남편이 날 참 많이 챙겨주고 이해해 주고

병원 방문도 적극적으로 권해주었다...


그런데...

그 무너지기 직전 모습을 그날 새벽 남편에게서 보았다.


그동안 이 집을 잡으려고...

병원을 지키려고...

혼자 너무 애써 싸우고 있었던 그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것이다.


그날 이후 며칠 뒤,

우리의 첫 집을 팔고 다시 새로 시작하자는 남편의 말...

이러한 상황을 소화시키는데...

며칠 걸렸지만...

며칠이면 충분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친정부모님이 근처에 사신다...


애들이 웬만큼 컸고...

재택이 가능한 내가 있으니

나 일할 때 친정부모님 근처 계시니 도움 받자고...

애들 어릴 때 친정 엄마 도움 하나도 안 받고

타지에서 나 혼자 애썼으니 기저귀 갈 필요 없고

말귀 다 알아듣는 애들 부탁하는 거

염치없는 거 아니라고...

우리 이제 함께 헤쳐나가 보자고 했다.


그리고는 지난주...

나는 내 커리어를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재정비로만 부족한 듯하여

분야별 샘플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첫째로, 인문학 쪽은 그동안 내가 읽은 책들과 내 특유의

ENFJ 감성과 맞아서 수월했다.

이 와중에 찬밥 더운밥 가리면서 에이젼시 하나를 거절했더랬다..


사실 거절 메일을 보내고 나서 이거라도 할 걸 그랬나? 하루 종일 후회했다.하지만 너무 낮은 단가로 열정페이를 받을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으로 애써 나 자신을 위로했다.


두 번째로, 법률 부문... 이것도 법정 증거 자료로 쓰일 자료이니 문어체와 법률적인 표현이 적절히 녹아 있어야 하는데... 아직 감을 잃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역시 구하는 자에게 복이 오는 걸까?

바로, 다른 에이젼시에서 연락이 와서 프로젝트 진행 확정 바로 직전 단계이다..

그런데 주제에 요율을 너무 높게 불렀나?

내가 요율 협상 제안 메일을 보내서... 퇴짜 맞을까 봐 주말 동안 조마조마한 상태다...


3년의 공백기를 깨고

다시 커리어를 쌓아가려면

내 실력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오늘부터는, 원래 인하우스에서 했던 시방서 번역, 공문서 번역, 그리고 의료, 생물학 분약 번역을

샘플 번역을 해서 각 에이젼시에 이력서, 포트폴리오, 샘플 번역을 함께 첨부해서 보내려고 한다...


재정과 재정비 사이...

재정 상태 확인을 하지 않았으면

재정비할 엄두를 못 냈을 터이니...


나의 본격적인 프리랜서의 생활에

트리거가 되어 준 한 글자 차이의 이 두 단어...


앞으로의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도록

가슴에 아로새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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