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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an 28. 2016

세상을 떠나려는 당신에게

(2015.8. 청년의사 기고문입니다) 

A님,  

당신은 처음 저에게 오셨을 때 당신의 암이 완치가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고 하셨지요. 치료의 목적은 암을 누그러뜨리는 것이지 이것을 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계신다고 하셨어요. 당신은 보기 드물게 치료의 목표와 본인의 상태에 대해 잘 이해하고 계시는 환자였어요. 그러나 여느 다른 분들과 같이, 끝이 언젠가 올 거라는 생각을 하고 싶진 않은듯 보였어요. 언제나 병이 진행될 수 있다는 데 불안감을 느끼시고, 항암치료가 독성으로 연기되는 것을 걱정하시면서, “제때 맞춰 주사를 맞아야 할 텐데” 하시며 초조해하시는 모습에 저도 같이 조바심이 났었나 보아요. 약이 잘 안들을 경우, 암이 진행해서 몸 상태가 나빠질 경우, 스스로의 몸을 가눌 수가 없고 누군가의 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미리 마련하지 못했었어요.

그러나 핑계일런지 모르겠지만, 환자 한 분당 5분 정도를 쓸 수 있는 외래 진료시간엔 이전 치료의 부작용과 지금 당장 불편한 증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만 해도 벅찼다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어요. 우리의 대화는 대부분 지금  있는 통증이 암의 진행을 의미하는 것인지, 통증의 양상과 강도는 어떤지, 진통제의 부작용은 어떤지, 백혈구가 떨어진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항암제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인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죠. 사실 5분은 그런 얘기를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에요. 그 5분의 목적은 최대한 사고 없이 안전하게 항암치료를 하는 데 맞추어져 있지, 안타깝게도 당신의 마음 깊은 데 있는 고민과 계획을 들어보고 조언을 드릴 수 있는 데 맞춰져 있지 않아요. 그래도 오실 때마다 유난히 여러가지 증상을 호소하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진찰하고 판단하는 데 저는 다른 환자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썼어요. 정말 오실 때마다 10분 이상은 뵈었던 것 같아요. 대신 다른 환자의 진료시간이 1-2분으로 줄어들었겠지만요.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많은 도움을 드리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약제를 두 번을 바꾸어 3차 치료를 진행하던 중 예기치못한 감염증으로 응급실로 입원하셨던 그날, 저는 정말 나빠질 경우까지 말씀을 드려야 했었어요. 하지만 늘 응급실로 들어왔다가 충분히는 아니지만 근근히 회복되어 나가는 많은 암환자들처럼 당신도 그러리라 생각했어요. 감염증은 어쨌든 항생제 치료를 하면 좋아질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감염증은 어느 정도 좋아지긴 했지만 그 이후로 연쇄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는 여러가지 증상들 - 통증, 악액질, 장마비, 부종, 혈전 등이 당신과 가족들을 불안하고 괴롭게 하였고 결국 당신이 호스피스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내도록 만들고 말았어요. 이것이 당신에게 가장 미안한 일이에요. 남은 시간을 편하게 지내고 싶다는 소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저는 당신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치루더라도 그 남은 시간을 좀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리라 생각했어요. 그동안 만나온 당신의 모습은 저에게 그렇게 비쳤기 때문이었어요. 한마디로… 아직 생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없는 일이에요.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언제나 물어보고 확인해야 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닐까 해요. 누구나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기를 원하진 않아요. 하지만 지금이 그 마감해야 할 때인지를 알기는 어렵죠. 그것을 알려드려야 하는 것이 의사의 일인데, 저는 당신에게 그것을 먼저 알게 하고 말았어요. 그게 가장 부끄럽고 죄송한 일입니다.

예전엔 환자가 먼저 마지막이 다가오는 걸 알게 되면, 힘든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내 일이 덜어지니 고마웠고 안도가 되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걸 환자가 먼저 알게 하는 것이 더 미안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고통을 겪으면서 몸으로 알게 하는 것이니 말이죠. 물론 의사에게 먼저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마음에는 더 고통스러운 것일런지 모르겠어요. 마음의 고통이 몸의 고통으로 이어질까 가족들은 걱정을 하기도 하고요. 어떨 땐 병의 경과일 뿐인데도 안좋다는 얘기를 듣고 점점 나빠진다고 담당 의사를 원망하기도 하세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런 마음의 고통을 겪은 후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건 다름 아닌, “당신이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할 지 계획할 수 있고, 가족들에게 어떤 기억과 유산을 남기고 갈 지를 생각해둘 수 있는 시간. 저는 A님에게 그런 시간을 드리지 못한 것이 가장 미안해요.

지금 당신은 조금씩 의식을 잃어가고 혈압도 떨어지고 있어요.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이 당신은 세상과 이별을 하려고 해요. 당신은 그렇게 호스피스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 채 사망하는, 전체 암사망자의 90% 중 한 사람이 되시겠지요. 가족분들은 저에게 그동안 돌봐주어 고맙다고 하셨지만, 많은 가족분들이 환자가 이렇듯 갑작스럽게 또는 준비되지 못한 채 맞이하는 죽음에 대해 슬퍼하고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였다는 아쉬움 때문에 의료진들의 무성의를 비난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우리나라에 호스피스병상이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많이 언론에 나와요. 저는 그것도 문제이지만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서 의료진이 길잡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건 제한된 진료시간과 적은 의료수가, 부족한 커뮤니케이션 교육 등 여러가지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저희가 하고싶어도 제대로 못하는 측면이 커요. 그러나 저희 의사들은 그 존재의 존엄에 걸맞는 돌봄을 제공받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지는 당신과 같은 분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지면을 빌어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 세상에서는 고통없이 평화가 함께 하길 빕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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