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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an 28. 2016

암환자에게도 동네의사가 필요하다

환자분들이 “선생님이 제 주치의시니까..”라고 말씀하실 때가 종종 있다. 아, 이 분은 나를 주치의로 여기고 있구나. 감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 암 전문병원의 종양내과의사인 나는 이 방면에 특화된 전문의이지, 환자의 건강문제를 통합적으로 돌보는 주치의로서 적합한 의사는 아니다. 4년간의 내과의사로서의 수련과정을 거쳤고, 환자를 개별질환의 집합체가 아닌 한 인간으로 보라는 가르침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그 이후의 10년은 항암화학치료를 받는 암환자만 보아왔기 때문에 주치의로서의 종합적인 관리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즘은 혈압약을 어떻게 쓰는지, 당뇨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최신지견에 대한 감각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암성통증이라면 내가 조절해드려야겠지만 골관절염이나 추간판탈출증같은 근골격계 증상, 류마티스질환, 천식환자의 스테로이드흡입제 사용, 이런 것들까지는 도저히 일일이 챙겨드릴 수가 없다. 이 환자가 항암치료를 잘 견디고 있는지, 용량은 어떻게 해야 할지, 혹시 재발이나 진행이 의심되는데 놓치고 있는건 아닌지, 이런 것을 확인하는 것만 해도 벅차기 때문이다. 


암환자면 다른 건강문제 보다는 암 치료가 우선이지 않느냐고? 대개는 그렇긴 하다. 하지만 진행암 환자도 고혈당 위기로 입원하기도 하고 만성폐쇄성폐질환의 급성악화로 입원하기도 한다. 암환자들이 고령화되면서 다른 만만치 않은 동반질환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암 치료가 종료된 암생존자들은 더욱 암 이외의 동반질환 관리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종종 나 말고 누가 주치의를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누가 내 환자의 혈압, 혈당도 조절해주고, 항암치료 받으면서 술 드시고 담배피우는 (놀랍지만 정말 그러는 분들이 적지 않다!) 병주고 약주는 생활습관 좀 고치도록, 계속 물어보면서 챙기고 잔소리 좀 해주고, 뭐 먹는게 좋은지 운동은 얼마나 하는게 좋은지 나 대신 상담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주치의가 없으니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저기 다른 과에 컨설트를 내게 된다. 혈압은 심장내과, 당뇨는 내분비내과, 만성폐쇄성폐질환은 호흡기내과, 치질이라도 있으면 대장항문외과….가능하면 한 날에 외래진료를 맞춰드리려고 노력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다반사다. 환자는 항암치료 때문에 2-3주에 한번은 병원에 오는 것 이외에 다른 질환에 대해서도 진료를 받으러 여러 번 발걸음을 해야 한다. 


실은 암과 항암치료로 인한 문제만 해도 종양내과 의사 혼자서는 다 챙길 수가 없다. 항암치료와 관련한 부작용을 설명할 때 받는 가장 흔한 질문은 “집에 가서 이런 부작용이 생기면 어떻게 하죠?” 인데, 심한 경우에는 응급실로 오라고 교육을 하긴 하지만, 평소 환자의 상태를 잘 아는 동네의사가 심하지 않은 부작용은  증상조절을 해주고 중증이라고 판단되면 적절한 시기에 응급실로 보내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일본의 가정의이자 내과의사인 나가오 가즈히로가 쓴 “항암제를 끊을 10번의 기회"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은 마치 항암치료를 받지 말라는 흔한 의료부정서적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항암치료를 현명하게 잘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한 위암환자가 진단을 받고 수술, 항암치료를 받고 이후 진행하여 임종에 이르기까지 일차진료의사로서 돌보는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는데, 이 중 내가 인상깊게 보았던 부분은 환자에게 “양다리를 걸치시라"고 주문하는 장면이다. 저자는 항암치료 후의 오심, 구토와 피로증상으로 힘들어하는 환자에게 “동네의원과 양다리를 걸치시라"고 하며 수액과 스테로이드 등 보존적 치료를 하는 한편, 열이 날 경우에는 항암치료를 받는 병원에 연락하여 전원을 시키기도 한다. 결국 말기로 진행한 그에게 호스피스 돌봄을 제공하고 임종까지 지키게 된다. 환자가 책 속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자. 


“암센터에서 전 그냥 번호로 불리는 존재입니다. 환자의 인생 따위에는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는 주치의는 매번 엑스레이 사진과 혈액수치를 보면서 두세 마디 건네고 끝입니다….제가 마치 수리공장에 들어간 고물 자동차처럼 느껴져서 견딜수가 없어요. 그런데 여기 오면 제 가족관계까지 알고 아내 흉을 봐도 웃으면서 들어주는 나가오 선생님이 계시니까 ‘스즈키 노부오'라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어요.”


남매가 찾아 헤메던 파랑새가 결국 집의 새장 안에 있었음을 확인하는 동화 ‘파랑새'에서처럼, 나의 상태를 잘 이해해 주고 챙겨주는 주치의는 큰 병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 있다. 종합병원 의사도 환자가 집에 있는 동안은 자주 찾을 수 있는, 안심하고 보낼 동네의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2016년 새해에는 종합병원과 동네의원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환자를 위해 협력하는 날이 시작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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