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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un 10. 2018

빡침의 힘

나의 그림을 돌아보며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7살때 피아노학원에서 보기 시작한 보물섬, 친척집에 가서 보던 드래곤볼과 슬램덩크,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친구와 번갈아가며 만화잡지 윙크 구독으로 이어진 것이 나의 독자로서의 일대기. 그렇다고 '아르미안의 네 딸들' '별빛속에' 대사를 줄줄 외는 수준까진 아니었고. 그냥 적당히 즐기는 정도, 그리고 만화를 따라서 그리는 것도 좋아했다. 대학을 가서도 간간히 만화는 봤고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21세기 소년을 접한 것이 그때) 의대 교지에 만화를 그려서 싣는 등 간간히 활동(?)을 해오긴 했지만 학업-시험-병원수련-취업-학위-육아로 이어지는 인생의 쓰나미 속에 만화가 차지할 자리는 없었다. 

그러던 중 문득 영감을 얻어 만화로 표현하게 될 계기가 조금씩 생겼으니, 그것은 기쁨의 순간(자라는 아이들을 볼 때)이기도 했지만 주로 소위 '빡칠 때'였다. 최근 수 년간은 그림 장비들(?)도 새로 구입하고 내용이나 기법도 조금씩 발전해온 과정이었는데, 그 흐름 속에 '빡침'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처음의 빡침은 모 대학 해부학교실 정 모 교수님의 만화를 볼 때였다. 솔직히 나는 그 교수님의 그림 실력은  나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하지만 (^^ 죄송합니다) 어차피 그림의 질로 승부하는 만화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기승전결 네컷 만화의 구성력이나 꾸준함은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비범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종종 교수님의 만화에 들어있는 여성비하 (엄밀히는 여혐이 맞다) 코드는 계속 불편했다.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이젠 그것이 명백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땐 다들 좋아하는 교수님의 만화를 비판하는 것이 아무래도 망설여졌다. 괜히 예민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만화엔 만화로! 하는 마음으로 종이에 연필로 그려서 펜으로 덧칠하고 스캔해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진 않았다. 자신도 정교수님의 만화가 비슷한 이유로 불편했다는 댓글도 달렸다. 나만 그런 생각했던 것은 아니구나. 위안도 되고 약간의 자신감도 생겼다. 지금 와서 이 만화를 보니 역시 너무 장황한 구성에 그림도 그닥... 역시 난 교수님을 따라가기엔 아직 멀었다. 

2015년 5월 페이스북에 올린 안티해랑만화


그 이후론 내 만화실력을 이대로 썩히기는 아깝다!는 생각으로 (사실은 일일이 연필스케치 지우고 윤곽선그리고 스캔하기 귀찮아서) 와콤타블렛을 젤 저렴한 것으로 구입했다. 스케치를 위한 프로그램은 파이어알파카를 이용했는데 물론 나는 예나 지금이나 프로그램에 내장된 여러 기능을 사용할 재주도 배울 시간도 없는 사람이라 그림 형태는 비슷했다. 하지만 타블렛을 쓰니 아무래도 좀더 깔끔하게 보인다는 장점이... 

여성의사들의 애환을 그린 만화 중 한컷.


이후 학회 소식지의 편집위원이던 나는 다들 원고가 안들어와 고민하던 회의에서 "저...만화를 좀 그려볼까요?"라는 제안을 하게 되면서 제 무덤을 파게 된다. Oncoazim이라는 필명을 지은 것도 이 때이고 뻗침머리에 늘 청진기를 귀에 꽂고 있는 캐릭터로 스스로를 설정하게 되면서 (물론 예나 지금이나 알아보는 이는 별로 없으나...) 진료현장에서의 부조리에 대한 빡침을 주 소재로 그림을 그려 올리게 되었다. 

심사평가원에서의 진료비 삭감에 대한 소견서를 쓰며 느낀 빡침을 표현한 그림. 2016년 2월  

와콤타블렛의 시대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2016년 초 아이패드프로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전 직장의 학술지원비로 구입했다. 워낙 비싸서 그림그리기만의 용도로 구입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논문을 본다는 구실도 필요했다. 실제로 아주 가끔(!) 논문도 본다) 수 개월 후 애플펜슬도 구입하게 되면서 (현 직장의 학술지원비로 구입했다. 전 직장의 학술지원비가 부족해서 이직 후 구입했다. 물론 그것때문에 이직한 것은 아니다) 좀더 자연스러운 필기감으로, 게다가 더 빠른 속도로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중 가장 높은 수위의 빡침을 경험하게 되면서 작품세계(?)의 전환을 맞이하게 된 사건이 연명의료법이다. 환자를 편안히 임종하게 하기 위해서는 서식이 7개나 필요하다는 황당한 얘기를 회의에 가서 들었다. 종양내과의사들의 모임인 대한항암요법연구회 완화의료분과에서 개최한 회의였는데, 이 상황에 대해 사회에서는 물론 의료계에서도 심각성을 잘 모른다며 공청회에 가서 발언을 좀더 해야 한다는 취지로 대화가 오갔다. 회의가 끝난 후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가  '이 상황을 만화로 한번 그려보지 그래...'하고 별 생각없이 말을 건네었고 나의 창작욕(?)은 점화되었다. (참고로 지금은 환자의 임종을 위해 필요한 서식은 4개이다. 보건복지부 담당과장님은 현장의 어려움을 반영하여 정말 많이 간소화했다고 말씀하신다...) 

연명의료법 그림 1탄. CPR 장면 

이 그림을 그려서 완화의료분과 선생님들께 이메일로 회람을 드렸는데 다들 너무 좋아하셔서 그 성원에 힘입어 몇 점 더 그렸다. 법의 시행과정에서 예상되었던 여러 문제점은 지금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연명의료법 그림 3탄. 임종과정에서 환자본인 의사 확인의 어려움 

이때까지 그린 것은 모두 선 위주의 작업이었던 반면, 아이패드 앱인  procreate의 여러 기능들을 조금씩 익히게 되고 레이어를 활용하게 된 이후로는 조금 더 그림이 정교해졌다. 연필브러시로 스케치를 하고, 다른 레이어에서 펜 브러시로 윤곽선을 그린 후에 스케치했던 레이어는 지우고, 다른 레이어를 만들어서 색을 입히고.이젠 제법 웹툰같은 모양새가 난다. 물론 아직도 아마추어지만.  

연명의료법 그림 6탄.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져오느라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사태.

브런치를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정문정씨의 세바시 강연을 유튜브에서 보게 되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그것은 바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노룩패스 동영상을 보게 되면서였다고 한다. "저의 뮤즈(?)인 그분께도 감사드립니다"라며 웃는 그녀에게 여유가 느껴졌다. 되돌아보면 나의 뮤즈는 정 모 교수님일까 심평원일까 연명의료법일까....

'빡침'의 감정은 표현의 욕구를 만들고, 표현의 욕구가 잘 해소될 때 좋은 창작물이 나오게 마련이니, 창작자에게는 빡침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순간 화나는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설명하고 표현할 방법을 찾아보는 가운데 마음도 차분해지니, 뭔가 쓰고 그리는 것은 확실히 정신건강에도 좋은 일이 아닌가! 그보다는 세상에 빡칠 일이 좀더 적은 것이 더 낫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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