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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pr 05. 2018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다

이전 글(https://brunch.co.kr/@cathykimmd/83)에서와 같이 저는 제가 곧 숨을 거둘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치료를 받을지, 또는 받지 않을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환자들에게도 이런 문제를 미리 생각해보시기를 권유드리고 싶어서 병원 소식지에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소식지 글(https://brunch.co.kr/@cathykimmd/82)에 쓴 대로, 직접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사전의향서)를 작성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직접 겪어보면 어떤 과정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편 제가 쓴 내용을 공개하면 사전의향서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병원에서 사전의향서 업무를 맡고 있는 법무팀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직원분들은 조금 당황했지만 곧 해오던 루틴대로 저를 안내해주셨습니다. 사무실 내에 탁자가 놓인 작은 상담실에 들어가 설명을 들었습니다.

 

“연명의료 종류는...뭐 선생님이니까 다  아시죠?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투석, 항암제, 이렇게 네 가지입니다.”

“이런건 환자들에게 설명할때 어떻게 하시나요?”

“뭐 관련된 사진 보여드리기도 하고요. 아시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관심이 전혀 없었던 분이 오시는 건 아니니까, 대개 내용들을 알아보시고 오시죠.”

 

지금 연명의료법은 이 4가지 사항에 관해서만 본인의 의사를표현해놓을 수 있습니다. 사실 연명의료의 종류는 이보다 더 여러가지입니다. 체외막산소화장치, 항생제, 승압제는 연명의료인가, 아닌가? 이런 논의를 하다보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연명의료를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이 상황에서 나에게 어떤 것이 중요한지가 아닐까요? 가급적 고통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사람도 있고, 힘들더라도 가족들을 다 만나고 그들의 곁에 조금이라도 맑은 정신으로 있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전의향서에는 단순한 4가지 체크박스만이 있을 뿐입니다. 각각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면 이것을 파악하고 이들 중 무엇을 받을지 물건을 고르듯 선택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게 느껴질 것입니다.

제가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호스피스 이용계획>과 의향서 작성, 등록, 효력, 변경, 철회, 보관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또 체크박스에 체크를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칠런지 모르겠지만, 마치 목숨을 저당잡힌 금융상품설명서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중요한 내용이기는 합니다만, 꼭 이런 형식이어야 했을까 싶습니다. 

사전의향서를 작성하는 분이 이해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사전의향서의 효력은 본인이 <임종과정>으로 진단을 받아야 발생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종과정은 법률에 의하면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식물인간상태, 또는 의식은 명료하지만 몸을 가눌수 없는 루게릭병이나 척수마비 상태같은, 만성적인 중증장애 상태에서는 사전의향서의 효력이 발휘되지 않습니다. 얼마전 개봉했던 영화 '미 비포 유'에서와 같이 척수마비환자가 안락사를 택하는 상황은 우리나라의 법에 의하면 허용되지 않습니다. 사전의향서는 단지 자연스러운 임종과정을 인위적으로 연장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뜻을 밝혀놓는 것입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하세요?  저희도 이 내용을 환자들에게 설명하긴 합니다만, 사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이 서류를 작성하면 어떤 효력을 갖고 보관이 어떻게 된다 이런 얘기를 하기가 좀 그렇더라구요."

"저희는 그냥 상담자료를 쭉 읽어드립니다. 뭐 은행에서 적금가입할때 하는거랑 비슷하긴 하죠."

"그렇군요... "

"그래도 인근지역 주민들도 꽤 오셔서 작성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본인이 봉사하시는 노인복지관에 출장나와서 받아가라고 하시던데요."

"그래요?"

"네. 환자분들도 어느 정도 아시는 분들도 있고요. 의사선생님이 권유하셔서 쓰러 오신 분들은 좀 당황하기도 하십니다만... 저도 이 내용을 한번 교육받아서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저도 사전의향서를 썼는데, 제가 직접 써보니 그 다음엔 이해가 좀 되더라구요."


의료인이 아닌 일반 병원 직원분이 '임종을 앞둔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들도 사전의향서 작성을 직접 해보는 등 작성자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미리 자신의 죽음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보고 결정을 미리 내리고 오신 분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이분들과의 상담만으로 작성을 하기는 어려워보였습니다. 


"제가 쓴 거 사진 좀 찍어도 되겠지요?"

"아 네, 그럼요 선생님건데. 어떤 분들은 작성하고 나서 뭐 주는거 없냐고 물어보시기도 하세요."

"네? 뭘 줘요?"

"사전의향서를 작성했다는 증서나 등록증 같은거 말이에요. 장기기증같은 것도 서약하고 나면 등록증을 주거든요. 그런데 이건 쓰고 나서 돌아서면 나한테 남는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네, 그렇네요. 전산등록은 직원분들이 하시지만 본인은 확인할 방법이 없긴 하네요."

"가족들에게 나 이거 써놨다 하고 보여주시고 싶은데 그게 없어서 서운해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아무래도 가족분들과 이런 문제에 대해 얘기해볼 기회도 있어야 할텐데 본인만 쓰고 가는 것은 좀 썰렁하죠." 

외국에서는 사전의향서를 작성했다는 내용을 담은 카드 등이 제작되어 있어 본인이 소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료들도 다양하며, 사전의향서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에서 무료 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전의향서 작성 이전과 이후에 가족과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가 아쉽습니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Aging)의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전의향서카드
미국의 사전의향서 관련 비영리단체인  Aging with Dignity에서 제공하는 의향서양식 (Five wishes)과 관련 자료들

아무튼 저는 이렇게 사전의향서를 쓰고 나왔고, 남편에게만 제가 작성한 것을 찍은 사진을 보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고 썰렁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에 아무래도 쉽게 쓰기가 망설여지는 것 같습니다. 이 무미건조한 형식에 서명함으로써 자신의 죽음 역시 무미건조해지고 의미를 잃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 싶어 합니다. 삶이 의미있고 죽음은 여운을 남겼으면 하지요. 사전의향서가 그런 생각을 잘 다듬어서 글로 쓰고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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