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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Mar 30. 2018

인생의 마지막 길을 준비하기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하여 

이 글은 저희 병원 소식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글도 쓰고 삽화도 그리고...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외래에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직접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사의 서명이 들어가야 하고 설명의무가 의사에게 있습니다. 또한 죽음에 좀더 가까운 환자를 대상으로 설명하고 작성하는 것인데, 대개 그들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정신적 신체적 힘이 많이 부족한 분들이에요. 그래서 시간도 더 걸리고요. 

그보다는 조금 더 일찍 미리 사전의료의향서를 환자들이 작성해놓는 것이 더 나은데 (이것은 의사의 서명이 없어도 되고 담당 직원의 설명을 듣고 작성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잘 모르시고 왜 작성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시니까, 그걸 설명하는 글이 소식지에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 글에 나온 대로 실제 저도 사전의향서를 작성해놓았습니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또는 <연명의료계획서>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또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해 들어보신 적은 있나요? 앞의 두 가지는 지난 2월 4일부터 실시된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해 등록하게 되는 서류입니다. 일종의 유언장과도 비슷하지만, 내용이 다소 다릅니다. 이는 본인의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 대비하여 평화로운 임종에 오히려 해로울 수 있는 과도한 의료적 처치들을 하지 않도록 자신의 생각을 밝혀놓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지켜질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가 연명의료결정법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 몇 마디로는 잘 이해하기도 어렵고, 대부분 환자분들께 여쭤보면 이 법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보게 되기는 하나, 상당히 막연하고 왜 이런 서류를 미리 써놓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저는 종양내과의사로서 수많은 죽음을 겪습니다. 물론 암 생존률이 예전보다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행암으로 완화적 항암화학치료를 받는 분들은 어느 정도 수명 연장이 가능하긴 해도 곧 치료의 한계가 옵니다. 그리고 수 년 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요. 저희도 환자분들을 가능하면 힘든 질병과 치료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드리고자 노력합니다만, 암은 사망률 1위의 질병이니만큼 상당수에서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죽음의 과정이 어떻기에 미리 준비까지 해놓아야 하는 것일까요? 의료진들이 다 알아서 해주는 것 아닐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제가 의사가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의 가족으로서 겪은 경험을 예로 들어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저희 외할머니는 수 년에 걸친 퇴행성뇌질환으로 마지막 몇 년은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셨습니다. 제대로 음식을 삼키지 못해서 배에 꽂힌 플라스틱 관(위루관)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삶을 이어가셨죠. 그게 종종 감염성 합병증을 일으키기도 해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입원하기를 반복하였고, 마지막엔 사타구니의 혈관에 굵은 카테터를 꼽고 투석도 하셨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수 차례 이런 치료를 해야 할지 말지에 대해 고민하시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고, 그 때마다 더 이상 무리한 치료를 하지 마시라고 말씀 드렸지만, 결국 어쩌다보니 이런 저런 의료적 처치들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삶을 외할머니가 원했을까, 라는 질문에 저를 비롯한 가족들은 쉽게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을 들여다볼 때, 왠지 가족들을 알아보는 것 같기도 하고, 차마 할머니의 생명을 유지하는 위루관과 투석관을 제거하자고 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의료인으로서 나름 냉정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저조차도, 위루관을 빼자고 어머니께 말씀 드린 이후 할머니의 얼굴을 대면하고는 더 이상 그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저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생각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나는, 적어도 나는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평화로운 죽음을 원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혀놓지 않으면 자칫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중환자실로 이어지는 끝없는 의료적 처치 속에서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보다는 기계와 약물로 심장박동과 호흡이라는 기본적인 생명활동만 이어가는 존재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이런 죽음은 본인에게도 고통이지만, 남은 가족들에게도 상처와 죄책감을 남기게 됩니다. 이런 과도한 의료적 처치들을 의사가 알아서 중단해주면 좋겠지만, 당장 시행하지 않으면 목숨이 끊기는 상황에서 의사는 쉽게 중단결정을 하기 어렵습니다.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환자 자신이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생명만 붙잡아놓는 조치- 이를 <연명의료>라고 합니다-는 하지 말아달라고 미리 자신의 생각을 밝혀놓는 것입니다.  

제가 만나게 되는 많은 환자분들께서 말기암 상태가 되면 위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십니다. 물론 질병마다 다르기는 하고, 암은 퇴행성뇌질환과는 달리 병을 지니고도 일상생활을 이어가시다가 마지막 수 개월간 급격히 진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죽음을 유발하는 질병에 관계없이 마지막 몇 주는 대부분 비슷합니다.  

앞으로 언제 올지 모르는 막연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수 년, 혹은 수 개월 앞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을 이야기하기는 환자에게나 의사에게나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짧은 외래진료시간에는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가능하면 입원하셨을 때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고자 하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아 고민입니다.  

저희 병원에서는 임종시의 의료적 처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미리 밝혀놓을 수 있는 <사전의료의향서>작성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지하 1층의 법무팀을 방문하시면 절차를 상세하게 설명드릴 것입니다. 환자 뿐만 아니라 19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 글을 쓰고 나면 법무팀에 가서 미리 작성해놓으려고 해요. 여러분들도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위와 같이 저의 할머니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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