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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pr 02. 2018

해마다 4월이 오면

4.3과 나

제 생일은 4월입니다. 어제도 가족들과 모여서 생일축하를 받았네요.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생일은 달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걸 핑계삼아 어머니, 동생들과 모여서 함께 지내는 시간을 갖는 건 좋아요.

그리고 4월엔 4.3이 있지요. 올해는 4.3 사건이 발생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합니다. 4월은 제가 태어난 달이기도 하지만 제주에 살던 아버지의 집안에는 비극이 일어난 봄날이기도 합니다. 가족의 죽음을 불러온 한 축은 암이고, 한 축은 4.3입니다. 4.3의 증인인 아버지와 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이후에 저희 가족은 제주를 떠났고, 4.3이 저의 가족에게 갖는 의미는 점점 흐려지고 있습니다. 집에는 사놓고 아직도 보지 않은 "지슬" DVD와 강요배 화백의 화집 "동백꽃 지다"가 있지요. 이젠 한 세대를 건너고 비극을 겪은 증인들이 다 저세상으로 가고 나니 저에게도 정말 남의 일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일런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비극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요. 하지만 정말 이러다가는 잊혀지고 말겠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아픕니다. 6학년 아들도 이제 학교에서 한국현대사를 배울만큼 자라났으니, 더 늦기 전에 4.3 공부를 더 하고 아이에게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집니다.


다음은 2014년 교학사 국정 역사교과서 배포금지 가처분신청이 진행되었을 때 제가 내었던 탄원서입니다. 당시 국정교과서에 관한 기사를 보고 작성해서 보냈던 것인데, 그 이후 한 인터넷 언론 기자분께서 저의 탄원서를 기사로 쓰고 싶다는 요청을 하셨었습니다. 물론 익명으로요. 그러나 글에는 저의 신상정보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었고, 그때는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혹시 글을 쓴 사람이 저라는 것이 알려지면 병원에서 꼬투리잡힐까봐 두려웠고,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었습니다. 정권이 바뀐 지금도 혹시 직장에서 문제가 될까봐 걱정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병원은 보수적인 직장이니까요. 하지만 저의 가족들이 역사속에 죄없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사실이고, 국정교과서는 결국 폐기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잊혀지면 안되겠다는 마음에 기록해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 살해당한 사람들의 자손들은 사회의 어느 곳에나 있고, 잊지 않고 있으며,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알리고 싶습니다.


저는 주로 암환자들을 진료하는 의사입니다. 진행암으로 항암화학치료를 받는 환자들, 그리고 말기암으로 호스피스 돌봄을 받는 환자들을 주로 봅니다. 제 아버지와 할머니도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특히 40대 중반에 생을 접으셔야 했습니다.  

암과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무슨 상관이냐구요? 물론 별 상관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암보다 더 무섭습니다. 암보다 더 치가 떨립니다. 암으로 돌아가신 제 아버지와 할머니는 제주 4.3사건의 생존자였습니다.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들이었습니다. 제주에서 서당훈장을 하시던 할아버지는 ‘폭도’로 지목되어 토벌대에 의해 살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어린아이들이었던, 아버지와 형과 누나들도 모두 ‘폭도’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학살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총알이 빗나가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셨고, 당시 세 살이던 아버지를 간신히 살려 그 잔인한 세월을 견뎌내셨습니다. 아버지는 성장과정에서 편모슬하에서의 지독한 가난과 함께 ‘폭도의 자식’이라는 굴레를 짊어지고 살아야 했으며, 직장인이 된 80년대까지도 연좌제 때문에 안기부의 사찰을 받아야 하였습니다.  


수정, 승인된 교학사 국사교과서는 이렇게 제 아버지의 가족이 학살당한 4.3을 “무장봉기” “경찰서와 공공기관습격” 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도 초래되었다”라며 그것이 마치 피치 못할 일처럼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경찰과 우익인사가 살해당하였다” 며 민간인의 희생과 경찰/우익인사의 희생이 동등한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러나 4.3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만 4천명이 넘는 민간인 피해자의 약 80%는 군인과 경찰 등 토벌대에 의해 희생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제 아버지의 가족들도 있습니다. 사건의 본질은 ‘폭도들의 무장봉기’가 아니라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입니다.  

4.3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와 할머니를 마저 저 세상으로 데려간 것은 암이지만, 교학사 국사교과서는 이미 돌아가신 그 분들을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하고 다시 끌고 나와 ‘폭도’라는 낙인을 찍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어린 학생들 앞에서요. 이러한 교학사 국사교과서가, 저는 환자들을 극심한 고통과 절망에 빠뜨리는 암보다도 더 무섭고 증오스럽습니다.  


대부분의 암종의 경우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은 전이와 재발을 일으키기 전에 그 싹을 자르는 방법입니다. 즉 근치적 절제수술이 중요합니다. 조기에 발견하여 절제할수록 완치율이 높아집니다. 마찬가지로 교학사 국사교과서도 더 이상 역사왜곡을 일으키고 4.3유족들과 그 자손들의 괴로움을 가중시키기 전에 근치적으로 절제, 즉 배포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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