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coAzim Oct 02. 2018

나쁜 소식을 따뜻한 마음으로 전달하기

슬픈 이야기를 진심을 담아 하는 방법

암 진단에 대해 환자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의료진이 좀더 사려 깊게 개입한다면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절망과 마음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

 

"나쁜 소식 전하기 (breaking bad news)"는 의과대학생 및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사소통교육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이다. 환자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진단받았음을 알릴 때, 또는 질병이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는 나쁜 소식을 전할 때, 과연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가. 놀랍게도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의과대학에서는 이런 것도 가르친다. 누구도 차마 하기 어려워하는 이 악역을, 어떤 순서로,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언어를 써서 훌륭히 수행해낼 것인지를.

예전에 내가 학교를 다닐 시절엔 이걸 순서대로 외워서 쓰도록 하는 아무 의미 없는 시험문제를 내는 일도 있었지만, 요즘은 이대로 잘 하는지 실기시험에서 살펴보기도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나쁜 소식을 전하는 면담기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1) 먼저 환자나 가족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탐색하며 분위기를 조성하고,

2)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에둘러 말하지말고, 미루지 말고!) 나쁜 소식 (암을 진단받은 것, 얼마나 살 수 있는지 등)을 전하며,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이 당신을 도울 방법을 알고 도울 의지가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막연한 희망을 던져 불가능한 기대를 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 나쁜 소식 전하기 훈련은 대개 의과대학에서 그친다. 외래에서 겨우 2-3분 정도 주어지는 시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입원환자에게는 수련중인 전공의나 전임의 선생님이 주로 설명을 하고 있지만, 한 명의 의사가 입원환자 30-50명까지 담당하는 과중한 업무를 맡아서 보는 이들은 그 와중에 복잡한 의학 실무 지식만 익히는 것만 해도 버거워 한다. 나쁜 소식 전하기는 외워서 쓸 수 있는 지식의 영역도 아니고, 당장 환자를 살리는 데 시급하게 필요한 요령도 아니기에, 수련중인 의사들은 별로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나 역시도 그랬고, 최신의 의학지식을 따라잡는 데 급급했지 환자와의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만약 내가 아버지의 담당의사라면,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어떻게 전달했을까. 가족만 불러서 따로 얘기하거나, 준비없이 사실만을 말함으로써 환자를 당황하게 하는 방식은 곤란하다.

우선 두 분을 부른다. 병동에 마련된 조용한 방으로.  


이제까지 여러가지 검사를 받으셨는데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걱정이 되네요. 아무래도 황달이 생기면 간이 많이 안좋아진 거라고 해서큰병은 아닐지  두려워요.”  

…. 사실 아주 좋은 소식은 아니긴 합니다.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많이 힘드시면 가족분이 대신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제가 알아야죠. 제가 선생님께 직접 정확히 듣고 싶습니다.”

… CT결과 담낭- 보통 쓸개라고 부르는, 간에서 생긴 담즙을 보관하는 주머니를 말합니다- 혹이 있고, 그게 담도를 눌러서 황달이 생긴  같습니다.”

 혹이 뭔가요?”

아마 악성종양일 가능성이 높을  같습니다.”

악성종양이라면…”

보통 암이라고 부르는 병입니다. 병명은 담낭암일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그럼치료가 가능할까요?”

유감이지만, 담낭암이 진행되어서 간까지 퍼진 상태이기 때문에 아마 수술로 제거하기는 어려울  같습니다. 담낭암은 아직까지 수술이 유일한 치료 방법입니다. 수술이 어렵다면….. 아마 완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같습니다. “

그럼…. 저는 이제 죽는 건가요?”

일단은 황달을 조절하기 위해 시술을  예정입니다. 담관이 막혀서  갈길로 가지 못하고 있는 담즙이 혈액에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바깥으로 빼주는 시술입니다. 그것을 하면 일단 간기능이  악화되는 것을 막고 감염증이 생길 위험을 줄일  있습니다.”

그건암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지요?”

 자체를 줄이는 방법은 아니지만, 암으로 인한 합병증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우회로 같은 것이죠. 이런 치료를 완화치료라고 부르는데, 암으로 인한 여러가지 증상들을 조절하기 위한 방법들은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암이 치료되는 것은 아니지요? 제대로 치료할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말씀드렸지만…. 종양 자체를 없애거나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는 상황입니다. 항암치료를 고려할 수는 있지만 효과가 미미한 반면 독성도 만만치 않아서, 환자분께 정말 도움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지금은 담낭암  담관암에 젬시타빈과 시스플라틴이라는 표준항암화학요법이 있고, 여러가지 표적치료제와 면역치료제 등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버지가 진단을 받았던 당시인 90년대 초반에는 젬시타빈이 나오기 전이고 효과적인 항구토제도 없었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하더라도 부작용을 조절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때의 기준으로 말씀드려야   같다.) 우선은 황달이 있는 상태에서는 항암치료의 부작용 위험이 커서 권해드리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려서 저도 마음이 아프네요…. 환자분도 많이 힘드실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너무 청천벽력 같은 소리라…”

환자분, 가족분들도 너무 당황스럽고 힘드시겠지만, 저희가 최대한 돕겠습니다. 앞으로 여러가지 힘든 증상들이 나타날  있습니다. 우선 말씀드렸다시피 담관배액술을 하고, 관리할 방법을 알려드릴 것입니다. 통증이 나타날  있는데, 진통제를  쓰면 조절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환자분이 불필요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까지 겪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입니다. 고통이 없을  없지만, 가능한  줄일 수는 있습니다.”

선생님만믿겠습니다.”

환자분이 의지가 강하시고 평소에 건강하신 편이었으니  이겨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환자분을 돌보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가지 신체적증상 뿐만 아니라 우울이나 불안 같은 심리적 증상도 많은 환자분들이 겪게 되시는데, 내과, 정신과, 마취과 등의 다른  의사선생님들도 도움을 드릴  있습니다. 또한 간호사, 사회복지사  환자분들을 돌보는 여러 직군들이 있습니다. 종교가 가톨릭이라고 하셨죠? 병원에 성당이 있으니 신부님이나 수녀님과 상담을 해보시는 도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내가 진료를 하면서 늘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늘 시간에 쫓기고, 막상 설명을 하려면 입이 떨어지지 않기도 하며,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기도 하니까. 또한 오늘날 박리다매식으로 운영되는 (낮은 진료수가로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대다수의 암병원은 한마디로 공장형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속전속결로 환자에게 통보하고 휘몰아치듯이 바로 치료를 시작하는 와중에는 이런 ‘느린 진료’가 이루어질 틈조차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병동에는 따로 상담할 만한 조용한 방도 없다.

병동을 다니다 보면 복도에 서서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의사, 풀이 죽거나 우는 보호자가 종종 눈에 띈다. 환자 치료가 중요하지 어디서 얘기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 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아무나 지나다니는 복도에서 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절체 절명의 순간을, 그것도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가. 늘 해왔던 일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소스라치게 되는 것이다.  


정말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쁜 소식 전하기’ 시나리오를 써봤지만 그렇게 했더라도 두 분이 겪었을 마음 고생이 그리 많이 덜어졌을 것 같지는 않다. 치명적인 병, 길어야 일년의 시간, 그 사실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좀더 시간을 두고 의료진과 찬찬히 상담을 할 시간이 있다면, 그리고 그 상담을 통해 정서적 지지와 위로를 받는다면… 이런 건 조금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병원에서 멀고 먼 집으로 다시 돌아와 두려움에 떨며 눈물을 흘리는 것.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막막해 하는 것.

질병의 고통 속에 홀로 남겨진 기분에 외로워 절망하는 것.


신약이 하나 개발되면서 연장되는 진행암 환자의 수명은 대개 수 개월 정도이다. 암 진단 당시부터 존중과 배려를 담은 투명한 의사소통을 시작하는 것이 신약보다 덜 중요할까? 환자의 삶의 질에는 어떤 좋은 약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의료진에게 의사소통훈련을 시키고, 충분한 상담시간을 보장하는 것은 의료진의 선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돈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신약 사용으로 지출되는 건강보험 약제비에 비해서는 미미할 것이다. 이젠 병원에서의 경험을 좀더 인간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에도 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암을 진단받은 세 아이의 아버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