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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Oct 09. 2018

종양내과는 뭘 하는 곳인가요?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런데, OO 엄마는 어디서 일하세요? 혹시 선생님이세요? 분위기가 선생님같은데..."

"아 네...전 의사에요."

"아....어쨌든 선생님이네요! 무슨과에요?"

"내과요."

"그럼 OO이가 아파도 직접 다 보세요?"

"아뇨... 애는 잘 볼 줄 몰라요...내과는 어른들을 주로 보거든요."

"그럼 남편분이 아파도 잘 치료해주실수 있겠네요."

"아.. 저는 주로 암환자를 봐서요.  가족들에겐 별 도움이 안돼요.."


아이 친구 엄마와의 대화. 대개 이 이후로는 대화가 잘 진행되지 않는다. '암환자'라는 단어가 나오면 말이다.

종양내과라니. 나도 의과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런 과가 있는 줄조차 몰랐다. 그런데 이름도 생소한 이 과가 사실 웬만한 대형종합병원에서는 입원, 외래 환자가 가장 많기로 손에 꼽힌다. 암환자의 대형병원 집중현상이 일단은 그 원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예전에는 심장질환, 감염 등으로 사망하던 만성질환자들도 요즘은 수명이 길어져서 결국 상당수가 암으로 죽기 때문에, 누구나 생의 마지막에는 이름도 잘 못들어본 진료과인 종양내과의 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항암치료를 하려면 2-3주마다 병원에 와야 하기 때문에, 늘 환자들로 북적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종양내과는 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을 돕는 진료과입니다.

종양내과는 뭘 하는 곳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우선은 항암제가 먼저 떠오른다. 항암제를 쓰는 과. 이렇게 정의하면 될까? 어쩌면 그렇게 불러도 될 지 모른다. “종양내과” 또는 "혈액종양내과"에서 주로 하는 일은 항암제를 처방하여 암을 치료하는 일이다.

처음으로 항암제를 써서 암을 치료하기 시작한 분야는 백혈병- 쉽게 말해 백혈구에 생기는 암-이기 때문에, 혈액질환을 보는 의사들이 항암제를 먼저 쓰기 시작했다. 항암제는 백혈병부터 시작하여 림프종, 융모막세포암 등의 희귀종양을 완치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등장하였고, 점차 더 흔한 병, 즉 위암, 폐암, 유방암, 대장암 등으로 확대되면서 더 발전해 왔다. 종양내과는 혈액암을 제외한 모든 암을 보는 과이고, 혈액내과는 혈액암 및 기타 비암성 혈액질환 (빈혈, 혈소판감소증 등)을 보는 과다. 둘다 주요 진료분야는 암이기 때문에 관련성이 높아서, 혈액내과와 분리가 되지 않은 ‘혈액종양내과(hemato-oncology)’가 있는 병원이 있고, ‘혈액내과(hematology)’와 ‘종양내과(oncology)’가 분리되어 있는 병원도 있다.  (그래서 암 치료받으러 온 곳의 간판이 '혈액종양내과'라고 되어 있으니 본인이 혈액에 이상이 있는거냐고 걱정스레 물어보시는 환자들도 있다.)


종양내과학은 발전속도가 매우 빠르다. 내가 의과대학생으로서 배우던 90년대 후반의 풍경, 수련을 받던 2000년대, 전문의로서 진료를 하게 된 2010년대의 풍경이 너무나도 판이하게 다르다. 세포독성화학요법제가 주를 이루었던 90년대, 표적치료제가 등장하면서 “마법 탄환 (magic bullet)”이라는 수사 아래 금방이라도 암이 정복될 것 같았던 들뜬 분위기였던 2000년대.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전반기에는 다소 주춤했던 임상개발이 면역항암제의 등장과 함께 최근 다시 불붙고 있다. 최근엔 면역항암제의 개발에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면역관문수용체"라는 표적을 발굴한 두 과학자가 201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기본이라는 것도 있는데, 그것이 내가 종양내과라는 분야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종양내과를 '항암제를 쓰는 과'라고만 정의하면 어쩐지 허전하고 찜찜하다. 항암제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새로운 항암제을 개발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종양내과의사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항암제는 어디까지나 수단이다. 그 항암제로 우리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나는 <곡성>이라는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거기서 나왔다는 "뭣이 중헌디?"라는 명대사는 아이의 질문이긴 했지만 왠지 묵직한 울림이 있었는데, 어떤 일의 본질과 목적을 상기시키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암환자의 치료에서 '뭣이 중헌디'를 늘 묻고 잊지 않으며 무엇이 최선인지를 결정하는 일이 종양내과의사의 일이며 변하지 않는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환자를 위한 ‘최선’에는 최신 항암제도 있지만, 한편 보다 적극적으로 수술이나 방사선치료를 추가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고, 반면 항암제를 쉬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도록 권유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즉 처방 (precription) 보다는 결정 (decision)에 핵심이 있는 역할. 그 역할이 지고 있는 무게와 책임을 어려워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지금은 돌아가신, 존경하는 은사님께서 칠판에 분필로 쓰면서 하나하나 가르치셨던 항암화학치료의 원칙은 늘 마음 속에 남아있다.

 

환자의 상태를 먼저 고려하라.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치료는 독약이나 다름없다.  

위험과 이득을 따져라. 이득이 클 때만 치료하라.  

항암화학치료 자체에 집착하지 마라. 치료는 수단일 뿐 환자가 우선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원칙이나, 실제 진료현장에서는 이만큼 지켜지기 어려운 것도 없다. 항암치료가 뭐 좋은 것이라고 집착하느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또 한 분의 존경하는 은사님께서 내신 최근의 저서[1]에서 “의료집착”이라고 표현하신 행태의 한 종류이다. 환자나 가족들이 임종과정에서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박동이나 호흡만을 유지시키는 연명치료에 집착하는 것을 의료집착이라고 부른다면, 치료가 더 이상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항암치료를 진행하는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는 현상을 나는 항암치료에 대한 집착이라고 부르고 싶다.  

아무리 치료법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상당수의 진행암 환자들은 치료의 독성으로 고생을 하게 되고, 대부분의 환자들이 결국은 치료의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더 이상 종양이 약으로 조절되기 어려워 항암제를 중단하게 되는 시기가 오는 것이다. 이런 질병 치료의 한계에 대해 늘 설명을 하고 치료를 시작하지만, 대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자들이 ‘자신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완치될 것이다’라고 믿는다.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미국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설문조사[2]도 그러하니, 어쩌면 쉽게 삶을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심리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더 이상의 치료가 효과가 없거나 위험하니 쉬거나 종료하자고 하는 의사의 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다른 의사의 의견을 물으러 다니거나 때로는 큰 효과가 없어보이는 항암치료나 대체보완요법을 지속해가기도 한다.  

반면, 치료를 쉬거나 종료하는 적절한 시기에 대한 고민 없이 관성적으로 항암제를 처방하곤 하는 것은 의사 측면의 치료집착이라 부를 만 하다. 언제까지 치료를 할지, 치료의 목표를 무엇으로 하는지 상의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항암제를 처방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시간에 쫓기면 당장은 후자를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행위별수가제 하에서 두 진료에 대한 보상은 동일하니, 치료집착을 부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환자가 원하는, 또는 나의 내면에서의 치료집착과 관성과 싸워 이겨내는 것이 늘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항암제를 처방하는 것보다, 처방하지 않는 것이 의사에겐 더 어려운 일이다.

 

항암제로 완치가 가능한 질병들이 있다. 수술 후 재발, 전이를 막기 위한 보조항암요법을 하는 경우, 또는 항암제 반응이 매우 좋은 림프종이나 백혈병, 생식세포암 등은 항암제로도 상당수가 완치 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 흔한 암들이 재발, 전이되어 항암치료를 받는 경우에는 완치는 대부분 어렵다. 일단 완치가 안된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깔고 치료를 하는 것인데도 치료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혹시나’ 하는 막연한 희망, 더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 실제 극히 일부의 재발 전이암 환자들은 항암제로 새로운 인생을 얻기도 한다. 의학적으로는 ‘완전관해’를 얻는 약 5% 미만의 환자들이다. 이들 중에서도 치료 효과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이들은 또한 일부이다. 요즘 면역항암제가 등장하면서 이렇게 지속적인 종양조절이 가능한 증례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언젠가 과외교사로 시작해서 입시교육업체의 CEO로 성공한 손주은씨의 강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예비 고3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고3혁명 (고3에 엄청나게 공부를 해서 성적을 쭉쭉 올려 입시에 성공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유전자가 결정하지 노력의 영향은 별로 없다. 그래서 너희들 중 대부분은  1년 지나면 다 울고 있을테니 일찌감치 공부가 내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중단해라.”
 그런데 자신이 80년대 후반 과외교사로 처음 입문하게 되면서 만난 한 여학생은 고3혁명을 이뤄냈던 학생이었다고 한다. 상상도 할수 없는 엄청난 공부량을 소화해낸 (하루 17시간, 하루에 수학 100문제 풀고 영어지문 100개 보고 단어 100개 외우고….)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고3혁명이 매우 극소수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너희들이 그것을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하는 것이다”라며 결국은 청중의 의지를 북돋는 내용으로 끝을 맺었다.
 아주 작은 희망의 확률을 이야기하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간절함을 만나면 그 희망이 그의 것이기를 바라게 되는 것, 그 희박한 희망을 바라보고 가겠다고 하면 도와줄 수밖에 없는 것,  비단 입시강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항암치료를 하는 종양내과 의사의 마음과 비슷한 것 같다. '완치가 안된다'고 말하고 시작하지만, 일단 치료를 시작하면 나도 완치를 바란다. 그분이 말한 고3혁명이 성공할 가능성이 5%라고 하는데, 그것은 위에서 말한  완전관해의 확률과 비슷하다. 그러나 고3혁명은 노력을 해서 될 가능성도 있는데, 완전관해는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니 더 답답하다.  

확률이 적다고 해도 그것을 바라는 마음은 환자나 의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교사와 의사는 길잡이를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 멀리 내다보고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일찌감치 공부가 갈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도 교사가 할 일인데, 의사 역시 그렇다.  치료가 잘 안듣거나 부작용이 크다면 가능성이 적은 희망에 매달리는 환자의 마음을 너무 늦기 전에 돌리는 것, 너무 늦기 전에 항암치료를 종료하고 삶을 정리할 시간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 종양내과 의사의 역할이며, 그것이 종양내과 수련을 하며 배운 귀중한 가치들이다.   

 

아버지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셨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록 중에도 항암치료에 대한 이야기는거의 없다. 다만 진단을 받은 후 9개월차가 되어가던 즈음 점점 상태가 악화되며 응급실을 들락날락하게 되는 상황이 되자 어머니는 “항암치료나 방사선을 해볼 걸 그랬나, 내가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 넣고 있지는 않나”라며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항암제가 잘 안듣고 부작용이 심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고 하지 않기로 결정하셨다고 들었다. 사실 90년대 초반이라면 그 결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담낭암에 쓸 수 있는 항암제라고는 몇 가지 되지 않을 때이다.

요즘 같으면 40대 남자가 담낭암을 진단받았을 경우, 아무리 병이 진행이 되어 있어도 항암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완전관해를 얻는 경우는 드물지만, 치료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항암치료를 하는 편이 기대여명이 연장되고 삶의 질 또한 호전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소화기암에 쓰는 약은 몇 가지 없던 상황이었고, 무엇보다도 항구토제나 조혈촉진제같이 부작용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세계에서 임상시험을 가장 많이 하는 도시라는 서울. 그러나 90년대 초는 우리 나라에서 신약 임상시험은 전무하다시피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예전보다 다양하고 독성도 덜한 항암제들이 개발되었고, 부작용을 조절할 수 있는 약제들도 개발되어 예전보다는 수월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일부 환자들은 임상시험에 참여해서 신약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다. 물론 항암치료는 아직 힘들고, 대개 주사를 맞고 온 날은 기운없이 누워있어야 한다는 분들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기운이 회복되는 나머지 시간에는 일도 하고 여행을 가는 분들도 있다. ‘남들이 보면 환자인 줄 모른다’는 분들도 있을 정도다. 그 중 모두가 완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끝이 오더라도, 그 시간까지 암이 자신의 삶을 삼키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항암제의 역할이다.

솔직히, 정말 솔직히 나는 암이 ‘정복’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암은 유전자의 에러로 나타나는 불운의 산물’임을 수학적 모델로 보인 논문[3]도 최근 화제가 되었지만, 암은 노화처럼 삶의 부산물 또는 운명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신기술로 금방 암이 정복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암 연구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되는 클리셰다. 사실 학회에 참석할 때마다 솔깃하고 마음이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진료실로 돌아올 때마다 지극히 차분해지며 냉소하게 되지만.    

“낫는 것을 바라진 않지만, 십년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같이, 언뜻 소박하게 들리는 환자의 소망은 4기 진행암이라면 사실 대개 불가능에 가깝다. 질병 중 사망원인 1위라는 통계가 말해주듯, 4기 진행암의 경우 암에 의해 삶이 잠식당하는 것을 대부분은 피할 수 없다. 종양내과의사는 암이라는 장막을 조금씩 걷어내며, 그 아래에서 약간이라도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운이 좋으면 저 멀찍이로 걷어내버릴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거의 손을 대지 못할 수도 있다. 왜 이걸 없애버리지 못하느냐고 발을 동동 구르며 탓하는 말도 많이 듣지만, 한편 약간이라도 노력해주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숨을 거두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픈 가운데 보람도 얻는 그런 직업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내가 이런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이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뭣이 중헌디'를 알게 해주었다고는,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 허대석,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글항아리, 2018

[2] Weeks JC, Catalano PJ, Cronin A et al. Patients' expectations about effects of chemotherapy for advanced cancer. N Engl J Med 2012; 367: 1616-1625.

[3]Tomasetti C, Vogelstein B. Variation in cancer risk among tissues can be explained by the number of stem cell divisions. Science 2015; 347: 7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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