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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Oct 16. 2018

왜 환자들은 대체요법을 받는가

대체요법(alternative medicine)은 국가암정보센터(www.cancer.go.kr)의 정의에 의하면 기존의 의학적 치료를 대신하여 사용되는 방법' 입니다. 의학적 치료와 병행하여 사용되는 보완요법 (complementary medicine)와 함께 '보완대체요법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약자로 CAM으로 흔히 부릅니다)으로도 종종 불립니다. 공통점은 대개 저와 같은 종양내과 의사가 굳이 권유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다수가 임상시험을 통해 그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물론 보완요법 중 요가, 명상과 같이 위험이 크지 않은 것들은 굳이 말릴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체요법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상당수가 검증이 충분하지 않은데도 효과를 과장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돈을 받으며 환자의 경제적 고통을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항암치료를 받다가 언젠가부터 진료실에 나타나지 않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대개는 수개월 후 더 악화된 상태로 내원합니다. '자연요법'  또는 '식이요법’ '면역력 강화 치료'이라는 것을 했는데 효과가 어떤지 보고 싶다며. 그리고 검사결과를 확인한 뒤 실망한 눈빛으로 진료실을 떠납니다. 대체요법을 선택하는 더 흔한 경우는, 더 이상 항암치료가 효과가 없고 도움이 되지 않으니 호스피스 돌봄을 고려하자는 말씀을 드렸을 때입니다. 이제 죽는 건가, 더 이상 희망이 없나, 하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말기암'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할 때 바로 등장하는 것은 고주파온열암치료. 고농도 비타민주사. 미슬토주사. 대학병원에서 포기한 환자도 치료가능. 차가버섯. 후코이단. 아베마르.  AHCC. 키토산.......지푸라기라도 붙잡는 마음으로 클릭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굼벵이.

대체요법이라고 하면 저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굼벵이입니다.  

부엌 바닥을 꿈틀꿈틀 기어다니는 하얗고 윤기나는 통통한 벌레들. 어머니가 아픈 아버지에게 달여주려고 오일마다 열리는 시골장터에서 사온 굼벵이였습니다. 굼벵이를 넣어두었던 상자가 엎어지는 바람에 바닥에 펼쳐진 끔찍한 생물체들의 향연을 보면서 열다섯의 소녀는 역겨움과 슬픔에 몸서리쳤습니다. 아픈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보다 그런 것을 사다 먹으며 병이 나을 거라고 믿는 부모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큰 나이였습니다.  

굼벵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은 더 역하고 부끄러운 것도 마다않고 하셨습니다. 요료법이라는 것이었지요. 그것은 자신의 아침 첫 소변을 받아서 마시는 것입니다. 소변으로 빠져나가버리는 것들 중 몸에 좋은 물질들, 특히 항암물질이 있을거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9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대체요법인 스쿠알렌, 알콕시, 각종 녹즙, 삼백초...그리고 정체모를 중국약 등등.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꼼꼼히 기록해둔 부모님의 일기장에는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사실 어머니와 아버지의 '투병일기'의 대부분은 이런 대체요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방법들로  전이된 암이 치료될 것이라 믿고 따른 것은, 그분들이 교육 수준이 낮아서, 또는 장사치들에 쉽게 속아넘어가는 순진한 성격이어서, 병으로 인해 판단능력이 흐려져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40대 중반의 대학교수이자 경제학자였고 어머니는 전직간호사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정체모를 식품들을 권유하고 기꺼이 자비를 들여 구해와주신 고마운 지인분들 역시 훌륭한 인격에 높은 학식을 갖춘 분들이었습니다.  

 

<대체요법을 믿으시나요? >[1]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소아과의사이자 백신연구자인 저자가 미국사회에서 대체요법산업이 성장해온 궤적을 추적한 역작입니다. 대체요법이 활발히 이용되고 있는 질병 중 대표적인 분야가 암과 자폐증입니다. 아마 저자가 대체요법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게 된 이유도 아마 본인이 백신 연구자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근거없는 불신이 대체요법의 성장의 발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자폐아의 부모들이 대체요법에 매달리는 이유에 대해 한 부모의 입을 빌어 이야기합니다.  


추천드릴만한 책입니다.

 

자폐증 연구재단 (Autism Science Foundation) 설립자이며 예일대학교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앨리슨 싱어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부모들이 어떻게 이처럼 쉽게 속을 수 있는지 설명한다.  
“제 딸 조디가 자폐증 진단을 받았을 때, 저는 조디를 고치고 싶었습니다. 조디가 건강해지기만 한다면 무슨 짓이든 하고싶었습니다….우리는 글루텐과 카세인을 함유하지 않은 식단을 시도했습니다. 디메틸글리신도 시도했지요….. 한번은 조디를 척추지압사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밤에 매트리스 밑에 커다란 전자석을 깔아놓으면 조디의 뇌 속 이온이 재배열되어 조디를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 당시 저는 이미 멍청해진 지 오래였답니다. 그때 남편이 저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하더군요. ‘당신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 당신이 뭐라고 말하는지 들려?’ 바로 그때 제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깨달았습니다. 그건 제가 아둔해서가 아니라 제 슬픔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어요. 마음속에 슬픔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책 149페이지)

 

이성은 생각하기 싫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폐아의 부모가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의 삶, 그리고 그를  평생 보살피며 사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진행암환자와 그 가족이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수개월 또는 수년 안에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죠. 대체요법에 집착하는 것은 이성적인 사고로부터 오는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인 것 같습니다. 매트리스 밑에 전자석을 깔면, 굼벵이를 달여마시면, 자신의 소변을 받아마시면 혹시 병이 나아질 지도 모른다는 희망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어쩌면 말이 안된다는 것 자체가 이성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마약과도 같은 힘을 지닌 것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십여년을 종양내과전문의로서 살아오며 대체요법을 이용하는 수많은 환자들을 보아왔습니다. 대체요법에 대해 의사에게 물어보는 분들은 그래도 의사를 신뢰하는 이들이라는 것을 압니다. 얘기해 보아야 달리 좋은 대답을 듣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물어보는 것이니까요. 사실 환자들은 의사에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대체요법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암환자들은 약 25% 정도가 진단 이후 한번 이상 대체요법을 이용한 적이 있고, 말기암 상태가 되면 그 비율은 약 37%로 증가한다고 합니다[2][3]. 사실, 체감하는 비율은 거의 90% 에 가깝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대체요법에 대해 한번 정도는 문의하고 실제 이용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큰 시장이라는 것이죠.

어머니와 아버지의 병상기록을 보며 찾아낸 대체요법들을 아버지의 담당의사가 알았더라면 정말 황당해했을 것입니다. 만약 제 환자가 황달이 있어 간기능이 떨어져 있는데  그 많은 정체불명의 약품들을 먹어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면.. 아마 깜짝 놀라며 환자를 혼내거나, 속으로 무식한 사람이라며 한심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내 아버지였지요.

 

대체요법도 유행이 있습니다. 요즘은 굼벵이나 요료법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개똥쑥이 한동안 대 유행이었고 글라비올라, 와송, 상황버섯, 차가버섯, 야채스프 등은 몇 년 주기로 번갈아 유행하는 것 같습니다. 대개 케이블TV나 신문, 인터넷 포털, 블로그 광고의 빈도에 따라 유행은 바뀌는 듯한 느낌입니다. 상당수 요양병원과 종합병원에서도 하고 있는 겨우살이추출물 주사, 태반주사, 자닥신, 온열치료 등은 너무나도 만연한 나머지 많은 환자분들이 표준치료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을 정도입니다. 저에게는 왜 '이 병원에서는 온열치료를 안해주느냐'고 따지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항암효과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해서'라고 하면 대형병원의 오만이나 기득권의 횡포인 양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대체요법이 오히려 해로울 수 있고 반면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환자들에게 경고를 하였을 때에도, 그들은 침묵하였으나 속으로는 타성에 젖은 제도권 의사의 오만으로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체의학을 믿으시나요>에서는 그러한 음모론 자체가 대체요법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자들이 기생하는 토양임을 드러냅니다.

 

“대체의학의 또 하나의 유혹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현대의학을 공부한 의사들은 냉담하고 무심해보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자기가 한 사람의 개인이기보다 숫자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바로 이 틈새를 대체의학 치료사들이 파고들어 온 것이다. “의사들은 시스템 안에서 꼼짝을 못합니다. 탐욕스럽게 영리를 추구하는 시스템 안에서 말이지요.” 라면서. (책 51페이지)  

 

저는 이제까지 그런 환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는 했습니다. 병원에 대한 불신, 특히 컨베이어처럼 돌아가는 대형병원의 바쁜 현실, 부족한 설명, 병에 대한 불안 때문에 그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과학적 사고의 결여와 무지가 그러한 사고에 한몫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책에서 자폐아 부모의 이야기, 그리고 부모님의 일기를 읽었을 때, 그러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더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거가 없거나 부족한 대체요법 광고들은 슬픔으로 인해 약해진 마음을 파고듭니다.

슬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킵니다. 빛나던 지성도 슬픔 앞에서는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 틈새로 흘러들어 채워지는 것은 신비, 천연, 초자연 따위에 대한 절실한 믿음. 슬픔을 잊게 해주는 맹목적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미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장사꾼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정한 인술을 펼치는 재야의 실력자인 양 환자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 뒤에는 슬픔이 있습니다. 그들이 슬픔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되 현실을 직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의무가 의료인들에게 있습니다. 그들이 한심하게 여겨지거나 짜증이 날 때면, 부엌바닥을 기어다니는 굼벵이들을 떨리는 손으로 주워담던 어머니를 기억하려 합니다. 하얀 굼벵이만큼이나 무겁고 굵은 눈물을 속으로 흘려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말입니다.  

 

 

[1] 폴 A.오핏 저, 서민아 옮김, 대체의학을 믿으시나요?, 필로소픽, 2017

[2] Kim et al, Asian Pac J Cancer Prev. 2013;14(1):225-30.

[3] Choi et al, Asian Pac J Cancer Prev. 2012;13(4):14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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