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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독서>

최영화 저, 글항아리, 2018

by OncoAzim

글을 쓰는 의사라는 타이틀은 사실 내세울 만한 것이 못된다. 아직 책 한권 낸 적이 없고 ( 올해 나올 지도 모르겠지만) 의료전문지나 원내 소식지 정도에 글을 쓰는 정도이지만, 글을 쓰는 의사라고 알려지기도 전에 나는 이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이 있었다. (물론 김칫국이다) 의사라는 일이 얼마나 바쁜 일인데 글을 쓸 시간이 있겠으며 글을 쓴다는 것은 제 본분 중 하나를 희생했을 지도 모른다는 혐의을 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까지 나는 브런치에 연재를 했다는 사실도 직장동료들에겐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일상의 순간 순간에 내포된 의미와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들을 붙잡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누구에겐 위기이자 비극이자 절정의 순간들을 일상으로 살아내는 그 아이러니를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감염된 독서>를 쓴 최영화 교수님도 아마 그런 사람일런지도 모르겠다. 글의 맛과 리듬이 있다. 그건 쓰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자들에게서 자연스레 나오는 흥겨운 몸짓이나 숨길 수 없는 바람같은 춤사위 같은 것이다. 부러워라.
고전부터 근현대를 아우르는 많은 문학작품 속의 감염병이 이 책의 소재다. 감염병을 인력으로 조절하기 어려웠던 시대의 서사는 인류의 근원적인 공포와 불안을 형성하는 중요한 문학의 재료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데카메론>의 페스트, <이것이 인간인가>의 디프테리아, <닥터 노먼베쑨>의 결핵, <인생의 베일>의 콜레라.... 아직도 많은 만성질환자의 직접적인 사인은 여전히 감염병이며, 수시로 경보가 뜨는 해외 신종감염병과 아직은 사람들이 심각성을 잘 모르는 항생제내성균은 여전히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나, 대부분이 과거의 질환이라는 면에서는 감염의 서사는 과거의 서사여서 좀더 거리를 두고 문학으로 즐길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종양을 보는 의사 입장에선 현대는 암의 서사다....!라고 외치고 싶지만 생각나는 작품이 솔제니친의 암병동 밖에 없고 난 아직도 그걸 읽지도 않았고.... 기껏 더 떠오르는게 가을동화와 러브스토리의 백혈병이라니. 내 독서가 넓고 깊지 못한 탓이겠으나 아직 암의 맨 얼굴을 다룬 작품은 만난 적이 없다. 암은 아직 문학이 되기에는 너무 슬픈 병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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