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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노지양 저, 북라이프, 2018

by OncoAzim

작가가 나온 팟캐스트를 재미있게 들었고 책은 그 이후에 출장가면서 e-book으로 구입했다. 자신의 찌질함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솔직함이라니, 매력적인 주제다. 스스로의 찌질함을 견디지 못하는 구린 내면의 소유자 (=나) 라면 한번쯤 읽고 싶게 만드는 재미있는 팟캐스트여서, 제목은 좀 그랬지만 (솔직히 진부하지 않은가 싶다... 팟캐스트 안들었으면 안샀을 것) 출장가기 전 이북으로 구매해서 비행기 안에서 아이폰으로 읽었다.

번역가인 저자는 영문 원서 또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단어나 문구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 마디로 번역해서는 전달되지 않는 느낌을 이야기하며 개인적인 경험을 엮어 내는 흥미로운 형식이다. “reminiscence”를 설명하며 작업공간으로 썼던 도서관 로비가 북카페가 된 것을 보는 느낌을 서술하는 부분이 가장 맘에 남는다. 남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공간을 위축되었던 자신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고, 또 그것을 긍정한 문장이 비범하다.


“자꾸 움츠러들고 피지 못한 봉오리같이 느껴졌던 그 나는 누구도 눈여겨봐주지 않던 그 쓸쓸하고 적막했던 로비와 어울렸다.
그리고 그건 그것대로 아름다웠다.”


책을 읽으며 글쓴 이가 말하는 감정과 순간에 공명하는 것은 즐거웠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 마음에 남는 잔상은 어이없게도 세속적인 것들만 남았다. 책을 읽으며 즐겼던 좋은 성분들은 다 걸러져 하수구로 떠내려가 버리고 찌꺼기와 불순물만 체에 남아버린 것처럼. 명문대를 나왔고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도 있으며, 영어도 잘하고 (번역가이니 당연하겠지), 딸과 해외에서 한달살기도 해봤으며 자기 일을 가지고 있는 프리랜서 여자가 털어놓는 찌질함과 솔직함이라니....여기에 사람들이 공감까지 한다면 그는 다 얻는 것 아닌가? 여기에 질투가 나는 내가 더 찌질하게 느껴지는 이 불순물같은 느낌.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서 못 가진 것 (서울 서북부 감성이라던지..)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는 것은 너무 과하잖아.

하지만 나 역시 그렇지 않은가. 이정도면 먹고 살만한데도 감성 충만하며 인간적인 동시에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며 끊임없이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질투하잖아. 역시 먹고사는 게 전부는 아닌 법이다. 그래서 그런 어쩌면 진부해보이는 제목을 달았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책을 덮고서야 다가온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불순물도 쓸 데가 있긴 있는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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