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의심전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coAzim May 28. 2022

누가 의대에 입학할 것인가

https://n.news.naver.com/article/081/0003277673

최근 나라를 뒤흔든  가지 불공정 이슈는 의대 입학과 관련된 것이다. 90년대 중반, 학력고사에서 수능과 본고사의 시대로 접어드는 대혼란의 시대에 어쩌다 운좋게 의대에 입학했던 나는 요즘  운의 힘을 더욱 실감하고 있다. 의대라는 곳은 시험의  못지 않게 시대의 , 종종 부모와 재력의  역시 받쳐주어야 들어올  있는 곳이었구나 싶어, 지나온  관문이 더욱 드높게만 보인다.

최근 여러 언론기사에 보도된 의대 입시를 둘러싼 복마전을 보며, 나는 나라 걱정보다는 내 아이 걱정으로 세월을 보냈다. 자기 아이를 본인이나 동료 교수 논문 저자로 넣는 따위의 일을 하고도 별다른 타격 없이 꾸준히 진료와 연구를 하고 계시는 몇몇 선배 의사들을 보며 예전엔 화가 났지만, 이제 내 아이의 입시가 다가오니 차라리 그게 부러워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 한달 전 공부엔 취미가 없다며 학원을 끊겠다고 선언한 아이를 설득하지도 못하고 있는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싶어 자책과 한탄에 빠진 것이다. 차라리 의대에 가고 싶으니 논문에 이름을 넣어달라고 엄마에게 부탁하는 열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삐딱한 바램까지 들었다. (물론 지금 적어도 국내대학에서는 논문이 입시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입시부정도 아이가 어느 정도 욕망과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아니, 그 욕망마저도 결국은 엄마가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인가. 혹시 아이를 존중한다는 미명하에 너무 방치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누가 의대에 입학하느냐의 문제는 사실 공정의 이슈 또는 정치권의 내로남불 공방을 뛰어넘는 중요한 문제다. 의사 사회가 다양한 계층과 정체성을 가진 인물로 구성되어 있어야 그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있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즉 특정 계층, 특정 지역에서만 의사가 배출된다면,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사는 이들의 건강 문제는 외면당하기 쉽다. 지역민의 건강문제에는 그 지역 출신의 의사가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여성의 건강문제에 여성 의사가 더 신경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제의학교육협회는 의과대학의 사회적 책무 중 하나로서 의대생을 좀더 다양한 인종적, 지역적, 사회적 집단에서 모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미국의 의과대학들 역시 백인 일색의 의료계에 흑인, 히스패닉, 아메리카 원주민 등의 소수 인종 학생의 비율을 늘리는 것을 중요한 정책목표로 삼고 있고, 이들의 비율은 조금씩이긴 하나 증가하고 있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유색인종 출신의 의사가 백인 의사에 비해 의료자원이 부족하거나 유색인종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근무하는 비율이 높았으며, 지역사회에서 일차의료에 종사할 가능성도 더욱 높았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의대 입학이 계급 재생산의 가장 확실한 도구로 자리매김해 나가는 중이다. 의대생 중 상위 2분위 소득 가정 출신자의 비율이 80%에 이르는 만큼, 상류층 쏠림 현상이 뚜렷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의대 입시에서 외국과 같은 사회통합정책이 없던 것은 아니다. 부모 찬스로 의대에 입학하는 이들이 주로 보도되어 오긴 했지만, 지역인재 의무할당제나 사회적 배려자 전형을 통해 단순히 성적이나 스펙만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과 지역의 학생들에게 의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넓히는 제도가 시행되어왔고 이는 향후 더 확대될 예정이다. 실제 2021년도에 의대에 입학한 약 3,000명의 학생들 중 800여명이 이런 전형을 통해 선발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대중이 느끼는 박탈감은 여전한데, 혹독한 선행학습과 고가의 사교육의 기회를 얻고 여기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주로 의대에 가는 현상은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대에는 의료가 더 필요한 지역과 계층의 학생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옳은 방향인 것은 분명하다. 사회 통합은 물론 건강의 지역별 계층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도 의대에서의 ‘소셜믹스’는 필요하다. 대학교수나 의사의 아이들보다 평범한 도시 서민이나 농어민의 아이들의 학업 역량을 키우고 이들이 의사가 될 기회를 더 많이 줄 수 있는 프로그램과 입시제도를 만드는 고민이 필요할 때다.

의사가 될 생각은 1도 없는 아이가 받아온 처참한 중간고사 성적표를 보며 마음을 비운다. 그래, 자녀의 진로를 앞장서서 닦아주는 소위 ‘헬리콥터 맘’이 될 여지조차 주지 않는 너 덕분에 엄마는 교육자로서 좀더 공정하고 초연해질 수 있었다. 엄마는 좋은 의사를 키워내는 데 사심없이 집중할테니 너는 네가 생각하는 너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길.      

매거진의 이전글 진료의 정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