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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ul 02. 2022

'조력존엄사'라는 이름의 자살

https://n.news.naver.com/article/081/0003287441

설문조사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만큼 죽음에 ‘쿨한태도를 지닌 이들이 없는  같다. 국민의 무려 76% 안락사  의사조력자살의 합법화를 원한다고 한다. 지난 6월에 발의된 ‘조력존엄사 허용하는 법률 개정안은 이러한 여론을 반영했다고 한다.  영향력있는 정치인 12명이 공동발의한  법안에 의하면, 말기질환을 진단받은 환자는 의사의 확인과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면 치사량의 의약품을 처방받아 스스로 복용하여 생을 마감할  있게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위 ‘조력존엄사’의 대상인 말기질환을 주로 진료하는 의료진은 이러한 ‘쿨함’과 대조적인 풍경을 매번 마주하게 된다. 환자들에게 ‘이제 호스피스를 고려해보셔야 할 때’라고 조심스레 말씀드리면 ‘이대로 죽으라는 말이냐’며 역정을 내거나 ‘거부감이 들어 아직은 호스피스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암으로 사망하는 환자 중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2020년 기준 23%에 불과하여, 유럽이나 미국의 50-60%에 비하면 매우 낮다. 물론 2008년에 7.3%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것이긴 하지만, 죽음의 고통을 줄이고 화해와 평화 속에 세상과 작별하도록 도와주는 이 서비스는 여전히 인기가 없다.

호스피스를 택하지 않은 77%의 암환자들은 어떻게 삶을 마칠까? 대형병원의 응급실을 수시로 드나들며 고통스러운 검사와 처치 속에 삶의 마지막 몇 개월을 보낸다. 그러다가 의식이 혼미해지고 가족과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 그나마도 호스피스 진료의 대상이 되지 않는, 암 외의 다른 질환으로 사망하는 이들은 거의 90% 이상이 이런 과정을 겪는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쿨한’ 태도는 아마 이런 고통스러운 죽음을 가족, 지인 중에 목격하거나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싶다. 죽음의 과정은 어차피 고통스러울테니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깔끔하게 세상을 뜨고 싶다는 소망.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사회에서 호스피스 의료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임종 과정에서의 고통을 진통제나 진정제같은 약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른다. 또한 죽음의 길목에서 삶을 되돌아보고 사랑했던 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지를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다.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과정을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게 된다. 이것은 사실 죽음에 대한 ‘쿨한’ 태도가 아니다. 죽음의 과정 또한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공포 반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안락사에 대한 찬성이 고통과 질병을 ‘죽음만도 못한 삶’으로 규정하고 혐오하고 터부시하는 문화와도 닿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문화는 다름아닌 고통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회의 결핍과 정치의 무능력 때문에 형성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간병살인과 장애인 자녀 살해 역시 이러한 맥락 위에 있다. 취약한 이들을 사회가 함께 돌보지 않으니 돌봄은 오로지 가족들의 몫이 되고, 그들 중 일부는 경제적은 물론 정신적으로 황폐화되며, 사회로부터 고립되며 결국 죽음 외에는 갈 곳이 없게 되는 것이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마음은 ‘적어도 나는 이런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바람의 표현으로 읽힌다. 그러나 정치가 이러한 위험 징후를 읽지 못하고 도리어 자살로서 고통을 해결하도록 조장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은 참으로 비겁하고 무책임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조력존엄사’ 법안을 발의한 유력정치인 12인에게 나는 한번 종양내과 진료실에 와보시라고 권유드리고 싶다. 그들이 자살할 권리를 주겠다고 하는 그 대상들이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들이 얼마나 간절히 삶을 갈망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혼잡하고 어수선한 진료실에서 의료진과 마주앉아 차분히 삶을 정리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미처 준비되지 않은 채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일이 부지기수라는 것 역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이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과연 자살이라고 생각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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