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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Mar 01. 2024

당직실에서

오늘은 드디어 첫 당직입니다. 

병동환자를 보는 것은 며칠간 해왔지만 그것은 제가 입원시킨 2-3명정도를 보는 것이었고 

이제는 밤동안 약 30명의 환자를 책임져야 하는데요. 

이것은 사실 전공의선생님들이 짊어져야 했던 업무에 비하면 정말 작은 것이기는 합니다. 

보통 전공의선생님들은 하룻밤에 100여명의 환자의  call을 받습니다. 

여기가 그나마 큰 병원이라 그 정도이고, 

좀더 작은 병원인 제 전 직장에서는 

하룻밤에 200여명의 콜을 받아야 해서 휴대폰 배터리가 충전할 새도 없이 다 닳아버렸다는 얘기를 전공의선생님들에게 들은 적도 있습니다. 

파업을 해야 오히려 입원진료의 부담은 

역설적으로 적정선을 찾게 됩니다. 


몇주 전 환자분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했었습니다. 

짧은 진료시간동안 할 수 있는 말씀이 제한되어 있기에, 

치료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드리고 환자들의 질문을 받는 자리를 한달에 한번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오신 분들이 모두 제 환자분들이 아니고, 공개된 자리이기 때문에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상담은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환자들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시작한 일입니다. 

진료시간이 너무 짧아 환자분들에게 죄송하다고도 얘기를 했었지요. 

그때 어느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자세히 설명들을 기회도 없고 의사 선생님 만나기도 너무 힘들어요. 제발 의사 늘리는 데 반대만 하지 말아주시고 좀더 병원에 의사선생님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만히 어색한 미소만 지었을 뿐이었죠. 

이 병원에는 의사가 적은 게 아니라 환자가 너무 많은 거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종양내과 외래에는 약 10개의 방이 있습니다. 저희 과에는 20명이 넘는 의사가 있고요. 한 방에 의사 한 명씩 들어가서 하루 종일 진료를 봅니다. 남는 방은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하루 800-1000명 정도의 환자를 봅니다. 의사를 늘려도 진료를 볼 공간이 없습니다. 이 병원은 꽤 큰 병원입니다. 진료공간을 더 확대할 여력이 없지요. 의사를 늘리지 않은 것보다 환자를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닐까요? 지역의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분들도, 암 치료가 끝나 검진만 하시는 분들도, 항암치료가 듣지 않아 호스피스로 옮기셔야 하는 분들도 모두 큰 병원만 안심이 된다며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환자 개개인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쪼그라들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입원진료까지 생각한다면 의사가 적은 것이 맞습니다. 외래를 보는 20여명의 의사는 모두 전문의이며, 입원진료는 전공의와 펠로우들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하루 한 번 회진을 돌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주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처방과 각종 시술, 당직근무는 전공의에게 맡겨져 있었지요. 이제는 그것을 하던 의사들이 다 없어졌으니 전문의들이 그 빈 자리를 채워야 하지요. 실제 입원진료를 담당하는 전문의들이 많이 있었다면 전공의의 공백이 이토록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 과에서는 입원전담전문의를 고용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왔지만 지난 수 년간 성과는 없었습니다. 일반병원의 입원전담전문의를 고용하기도 어려운데, 중증도가 높은 상급종합병원의 암환자 입원진료를 하겠다고 자원하는 이가 있을 리 만무한 거죠. 

의사 수를 늘리면 이런 일을 하겠다는 의사들도 늘어날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러리라는 희망은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필수의료와 비필수의료 사이의 불균형을 해결한다는 "필수의료패키지"라는 장미빛 대안이 얼마나 작용할지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사 수를 조금씩 늘려가면서 (2000명은 너무 많습니다) 필수의료패키지가 잘 작동하는지 모니터링하고 그에 따라 증원규모를 늘려가는 섬세한 정책은 정말 불가능한 걸까요? 


다시 당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여기까지 쓰는데도 몇 번의 당직콜을 해결하느라 오래 걸렸습니다. 

3월 한달동안 7번의 당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이 그 시작이구요. 

교수 단톡방에서는 당직선 다음날 외래진료를 어찌 해야 하느냐는 것이 오늘의 화두였습니다. 

다른 교수가 대신 봐주거나, 미리 외래진료를 취소하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경우는 줄이거나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도 어려운 분들이 많았습니다. 

밤샘 당직 후 하루에 적게는 40명, 많게는 100명에 이르는 외래 환자를 봐야 하는 상황이 

과연 지속가능한 것일까 싶습니다. 


상황이 어찌 풀릴지, 답답한 마음입니다만 일단은 오늘을 무사히 넘기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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