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진료를 하는 의사로서 암 산정특례제도는 환자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안다. 고가의 검사와 치료도 5%의 본인부담금만 내면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진료비 할인제도가 유발하는 부작용이다. 대형병원 집중현상과 도덕적 해이는 산정특례제도가 가진 장점을 넘어서고 있다.
최근 이 문제를 체감하게 된 것은 시아버지의 진료비 영수증을 보면서였다. 폐암환자인 시아버지는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고 현재 안정된 상태다. 지난 1월 악화된 호흡곤란에 대한 검사를 위해 입원했고 약 6일의 입원기간동안 5인실에 입원하여 총 15만원이 나왔다. 직원가족할인이 적용된 가격이고 원래 본인부담금은 약 20만원이며, 실제 총 진료비는 그 20배, 약 400만원이었다. 380만원은 건강보험공단이, 환자는 5%인 20만원만 부담하면 되는 것이 산정특례제도다.
호흡곤란의 원인은 암의 악화가 아니었고, 항암치료의 합병증인 갑상선기능저하증이었다. 안정되는가 싶더니 퇴원 후 복통과 변비가 악화되었고, 시아버지는 우리 병원 응급실에 오고 싶어했지만 내가 막았다.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 와야 할 정도의 증상으로는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시아버지는 거주지 근처의 2차 종합병원에 응급실을 거쳐 입원했다.
혹시나 해서 입원지시를 해두긴 했지만, 그 다음주 바로 전공의들이 사직하면서 입원환자 수를 줄여야 했다. 나는 시아버지의 입원예약부터 취소했다. 2차병원에서도 시티, 내시경, 각종 혈액검사를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증상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갑상선기능저하증의 증상일 수도 있어서 치료를 하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으로 보였지만, 시아버지는 ‘곧 죽을 것 같다’며 나에게 우리 병원으로 옮기면 안되겠느냐고 호소했다. 그러나 면회시간에 증상에 대해 여쭤보면 의학적인 ‘위험신호’ 즉 구토, 혈변, 수면이 어려울 정도의 심한 통증, 발열 등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분들은 응급실에 와도 간단한 처치 후 귀가시키는 것이 대부분인데, 교수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상급종합병원에 입원시킬 수는 없었다.
시아버지는 2차병원에 약 2주간 입원 후 퇴원했고, 다행히도 그 후 증상은 호전되어 지금은 잘 지내신다. 그동안의 2차병원 입원비 본인부담금은 줄곧 다인실에 있었는데도 130만원이 나왔다. 오래 있었긴 했지만, 이전 우리 병원에 입원했던 기간의 3배인데 금액은 8배 정도가 나온 것이다. 암 치료를 받던 병원이 아니어서 산정특례가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 진료비는 130만원의 5배, 650만원이었다. 만약 암 치료를 받던 우리 병원에 와서 입원했더라면 전체 진료비의 5%인 30여만원을 내는 것으로 그쳤을 것이며, 직원할인까지 적용되었다면 20여만원만 내도 되었을 것이다. 입원이 길수록, 금액이 클수록 산정특례 적용과 비적용은 엄청난 경제적 차이가 생긴다.
환자들이 왜 굳이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서울로 오는지 알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암 치료를 big5에서 받으면 모든 질병 치료를 big5에서 진료를 받아야 오히려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이다. 암과 관련없는 질환인 당뇨, 고혈압 약제도 모두 종양내과에서 처방받으려는 동기 또한 이것 때문에 생긴다.
암은 중증질환이지만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너무나 흔한 질병이 되었다. 대부분의 암환자가 big5로 몰려들고, 산정특례제도로 인해 다른 질환까지도 모두 big5에서 진료를 받으려는 수요가 추가로 생겨난다. 이를 차단하고 분산시키기 위해서라도 암 산정특례제도는 폐지하고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받을 때 경제적 부담이 덜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잘못된 제도를 그대로 두고 큰 병원만 선호하는 환자들만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