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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생활 20년차

2025년 추석날 돌아보는 20년간의 며느리생활

by OncoAzim



여느 명절처럼 며느리의 명절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만 날이 갈수록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는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다행한 일이다.


2005년 결혼한 나의 20년간의 며느리 생활은 돌이켜보면 3단계로 나뉘어진다. 1단계는 시댁이 부산이 있던 첫 5년간이다. KTX 타고 부산 갈 때마다 싸웠다. 나는 아직도 부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The City of 시댁. 그 시끄럽고 억센 사투리도 싫고 세제냄새 나는 방아가 든 매운탕도 싫고 경상도식 토란국도 싫었다. 바다? 바다는 제주도지. 감히 해운대나 광안리 따위가. 아 돼지국밥은 좋은데. 암튼 KTX에서 우는 큰애를 아기띠에 안고 달래러 열차 칸 사이공간으로 나갔을 때 별로 친하지 않던 의국후배를 마주쳤던 기억이 난다. 서로 모르는 척 했다. 의사에서 며느리로 신분이 격하되었다고 느꼈던 5년이었다. 기분이 나쁜 나를 달래러 남편은 시댁이 가깝던 부산대 근처로 데이트를 나갔다. 평소 내가 일이 바쁘다는 것도 알고 집안일에 어설프다는 것도 알게 된 시어머니는 거의 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냥 상 치우는 정도만 하는 루틴이 그때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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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는 시댁이 둘째를 돌보러 일산의 우리집 근처로 이사를 오시면서 시작되었다. 그때는 명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은 안난다. 명절이던 평소이던 거의 이웃처럼 지낸 양가 살림을 시어머니가 대부분 도맡아 하셨는데 감사하면서도 별로 달갑지는 않았다. 분에 넘쳤던 시절이었지만 내 공간의 자유가 별로 없었다.


3단계는 서울로 이사오면서다. 시부모님은 일산에 아직 계신다. 어찌보면 부산에서 60년 이상 살던 시부모의 생활기반의 뿌리를 뽑아 옮겨다 놓고 우리는 다시 멀리 떨어져온 것이 정말 큰 불효이기는 하다. 그것을 생각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시부모님도 이사를 또 하기는 원하시진 않았고 무엇보다 서울 집값이 너무 비쌌다. 어느 정도 거리를 (그렇다고 너무 멀지 않고 당일 다녀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사는게 서로 좋은 상황이 되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2020년의 의정갈등, 2020-2021년의 해외연수, 2024-25년의 두번째 의정갈등으로 인한 당직생활은 명절의 며느리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핑... 아니 근거가 되어주었다. 명절 당일날 가서 인사드리고 밥 같이 먹고 상 치우고 설거지 정도 하고 나오는 것이 며느리 노릇의 전부다. 최근 여둘톡 팟캐스트에서 명랏젓 광고를 하도 찰지게 하길래 명란젓 좋아하는 시어머니가 생각나서 보내드렸다. 좋아하시면 또 보내드려야지.


35796962-seasoned-cod-roe.jpg 시어머니에게 보내드린 명란젓이 맛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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