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The Pitt>에서의 임종돌봄

The Pitt Season 1

by OncoAzim

요즘 <The Pitt>를 뒤늦게 보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쿠팡을 탈퇴했었고 쿠팡플레이 시청도 삼가하고 있었는데, 최근 종영된 시즌2가 너무 보고싶어져서 결국은 쿠팡와우멤버십에 가입해버리고 말았어요. 딱 한달동안 몰아서 보고 다시 탈팡할 생각입니다. 원래 계획은 5월 연휴동안 시즌 1부터 정주행해서 몰아서 보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미 시즌1을 다 봐버렸어요. 그동안은 영어공부할 겸 자막없이 틈틈이 시즌1 복습하고 연휴에 시즌2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 일화가 인상깊었으나 아무래도 저의 일과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폐렴으로 죽음을 맞이한 노인과 그 자녀들의 이야기였죠. 실제 병원에서 흔히 보는 케이스이기도 하고요.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다고 미리 밝혀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요구로 인공호흡기를 달게 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게 일어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환자가 임종기로 판단될 경우 “즉시 연명의료중단등결정을 이행하여야 (연명의료결정법 제 19조)” 하므로, 가족들의 의사에 따라 환자의 의지에 반하여 연명의료를 시행하는 것은 법에 어긋납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임종기의 의료결정을 가족 등 타인이 대리할 수 있도록 미리 지정 (Durable Power of Attorney; DPOA라고 합니다)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에서처럼 DPOA 대리인의 결정과 living will이 상충하는 경우에는 병원윤리위원회에서 상의하여야 하는데 닥터 로비는 그렇게 하지 않죠. (실제 병원윤리위원회가 소집되어 회의를 하기 전에 환자는 넘어갈테니까요) 닥터 로비는 자녀들의 뜻에 따라 기관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답니다. 이런 경우 가족이 납득하지 못하면 충돌이 커지고, 결국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달고 고생하는 것을 직접 목격해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의료진들이 그렇게 합니다. DPOA 제도 자체가 우리나라에 없고 일단은 환자본인의 의사를 따르라는 것이 현 연명의료결정법의 취지입니다만, 환자는 의식이 없고 가족들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결국 가족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뭔가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과연 환자를 위하는 일일까 싶고 법적으로도 안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기관삽관을 하고 심폐소생술을 합니다. 대표적인 의료현장에서의 윤리적 갈등인데, 의사라면 누구나 고민을 한번쯤은 해보는 일이고 계속 맞닥뜨릴 때마다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만, 아마 대부분은 가족이 원하는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답할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제가 요즘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인간은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그게 누군가를 비하하기 위한게 아니라 그냥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일들은 말로만 듣고 책이나 영화로 간접경험한 것으로는 절대 알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갈 때 그를 대신하여 결정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가깝고 아무리 사랑해도, 평소에 임종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충분히 얘기를 하지 않으면 그의 뜻을 알 수가 없고 대신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연명치료가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두려움과 혼란에 빠진 가족들은 잘 이해를 못합니다. 일단 무조건 살려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환자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서야 마음을 바꾸게 되지요.


드라마를 보며 조금 의외였던 것은 응급실에서 임종과정을 맞이하도록 둔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라마의 설정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병원에서 비용문제로 간호사들을 충분히 고용하지 않기 때문에 입원을 시키기 어렵고, 결국 응급실에서 감당해야 하는 환자가 많아진다는 것이 닥터 로비와 병원 행정담당자의 갈등에서 드러납니다. 한국의 상황도 솔직히 다르지는 않은데, 비용 문제 외에도 상급병원 쏠림현상과 저수가라는 문제가 겹쳐있다는 점은 차이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과를 기준으로 말씀드린다면 한달에 2만건 이상의 외래진료를 보는데 과에 할당된 병상은 200개 정도입니다. 응급실로 오는 암환자를 입원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병실 수이고 입원환자 진료를 할 의료진은 더욱 부족하니, 상당수의 환자들은 응급처치만 받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곧 임종하게 될 것 같은 환자를 응급실에 두는 경우는 드뭅니다. 죽어가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조용한 환경이 필요한데, 응급실은 그것과 가장 거리가 먼 곳이죠. 또한 응급실 의료진은 빠른 결정으로 가능한 최선의 의료를 제공하는 데 특화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가족들의 긴 시간의 망설임과 복잡한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임종돌봄을 위해 입원을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The Pitt>에서 응급실 의료진이 임종돌봄까지 다 소화를 하는 부분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물론 독립된 조용한 공간이 없으니 임종환자를 벽에 동물그림이 있는 어린이병실에 두는 것으로 그려지고, 방송국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환자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걸맞는 임종장소가 되었다는 것은 극적인 설정입니다.


드라마에서 임종과정에서 모니터를 끄고 환자를 지켜보는 것도 보통의 종합병원의 진료와는 다른 점입니다. 사실 모니터링을 하는 것은 악화시 빠른 대처를 하기 위함인데, 그럴 계획이 없는 환자에서 모니터를 하는 것은 모순된 것이며, 따라서 임종환자에서는 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임종환자는 생체징후가 불안정할수밖에 없기 때문에 늘 경고알람이 울리고, 이는 환자와 가족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많은 호스피스전문기관에서는 임종환자에서 모니터를 달지 않습니다.

그러나 호스피스기관이 아닌 일반적인 종합병원에서는 임종을 기다리는 환자여도 심전도, 심박수, 산소포화도 등의 생체징후를 감시하는 모니터를 끄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니터를 끄는 것이 환자를 방치하는 것으로 가족들에게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 일반적인 급성기 환자 간호에 익숙한 의료진들은 모니터 없이 생체징후가 불안정한 환자를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저만 해도 심장의 전기활동이 완전히 멈추었음을 나타내는 "EKG flat"을 모니터에서 확인하지 못한다면 사망선언을 하는 데 상당히 망설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닥터 로비는 모니터 없이 환자의 호흡과 맥박을 확인하고 사망선언을 하더군요. 생경한 풍경이었으나 응급실 의료진이 임종돌봄의 원칙 및 완화의료의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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