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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ug 17. 2017

<사적인 서점> 방문기

책을 처방받다

“나에게 맞는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라는 기사 제목에, 홀린듯 <사적인 서점>에 예약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4월이었다. 시사인에 난 기사를 뒤늦게 보고서였고, 블로그를 보니 내가 가능한 얼마 안되는 시간은 다 예약이 찬 이후였다. 6월에 학회가 있으니 거기 참석했다가 조금 일찍 나와서 가보면 휴가를 따로 안내도 되지. 일정을 체크해두었다가 6월 예약창이 열리자마자 예약했다.

그러나 막상 6월이 되니 그리 여의치는 않았고, 그 전날 학회에서 영어로 어설프게 프리젠테이션을 하느라 얼마 안되는 에너지를 소진한 후라 오전외래진료를 보고선 파김치가 되었다. 그러나 미리 지불한 5만원은 결국 학회에 들렀다 가는 것은 포기하고 바로 서울 한복판을 가로질러 서점으로 가는 택시에 몸을 싣게 만들었다.

꽂힌 책들 중 읽고싶은 것을 골라보라는 주인장의 말씀에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가만한 당신’ 그리고 잘 기억이 나지 않는 한권 (꽤 끌렸던 책 같기도 한데 슬프게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을 골랐다. 상담을 신청할 때 적어냈던 책들은 ‘밤이 선생이다(황현산)’ ‘ ‘모든 삶이 기적이다(이사벨 아옌데)’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세 권.
“진열된 책들 중 읽어보신 다른 책들이 있으세요?”
“정혜윤의 ‘사생활의 천재들’을 읽어본 적은 있네요. 하지만 그리 좋아하는 책이라고 볼 순 없어요. 문장이 좀…금방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정혜윤씨의 문장이 여러 번 읽어야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긴 하죠. 좀더 쉬운 문장으로 쓰여진 책을 선호하시나봐요.”
“그…그렇죠?”
마지못해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을 했다. 어려운 책을 읽는 사려깊은 사람인 척 하고 싶어하던 인생이 까발려지는 느낌? 중고등학생 때 데미안이나 말테의 수기 같은 것들을 읽으며 독서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이야기, 대학에 들어와서 사회과학서적 강독 따위를 하며 역시 독서로부터 멀어졌던 이야기를 하며 스스로가 새삼 불쌍해졌다. 난 책을 읽고싶은 것일까, 아니면 책을 읽는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일까?
“소설은 많이 안읽으세요?”
“네 소설은…그리 안 당기더라고요. 그래도 ‘잠실동사람들’이나 ‘한국이 싫어서’ 같은 비교적 가볍고 일상에 가까운 내용들은 즐겁게 읽었는데 최근에 읽었던’ 채식주의자’은 너무 그로테스크하다는 느낌도 들고….싫었어요. 암튼 한국소설의 비일상적이거나 다소 형이상학적 느낌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잘 안읽게 돼요.”
“‘채식주의자’는 사실 상을 받아 유명해져서 그렇지 그리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에요. ‘소년이 간다’ 읽어보셨어요? 그건 좀 달라요. 그건 좀더 따뜻하고 ….눈물이 나는 그런 느낌이에요.”
“네 그건 한강 작가님이 스웨덴에서 한 강연에서  어린시절 읽었던 ‘사자왕형제의 모험’과 5.18에 대한 기억을 얘기한 기사를 보아서, 한번 읽어보고 싶었어요. '사자왕형제의 모험'은 저도 정말 좋아했던 책이거든요. ”
“고르신 책들 중‘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최근 많이 화제가 되었던 책인데 사실 전 아직 안읽어봤어요. “숨결이 바람될 때”를 읽어보셨어요?”
 “네 그건 영문판과 국문판을 다 읽었어요. 의사작가들이 쓴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저도 글쓰기를 좋아하기도하고…. ”
 “의학과 삶,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읽으시나봐요.”
“일상이니까 자꾸 손이 가나봐요.”
“죽는 환자들을 많이 보세요?”
“많이…. 보죠. 익숙해지면서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있는데… 한편으론 그러는 내가 황당하기도 하고…. 그 속에 들어가보면, 한 명 한 명의 죽음을 직면하다보면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있고. 자주 우는데 그렇게 우는 자신이 한심하고 싫고.”
“힘드시죠.”
“더 힘든 사람들도 많은데요. 저의 업무부담은 상대적으론 그리 큰 것은 아니긴 해요.”
“자신이 힘든 걸 스스로 잘 모를 수도 있다고 해요.”
그러면서 주인장은 자신이 <사적인 서점>을 운영하며 겪었던 힘듦을 이야기해주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걸었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하는 것도 힘든 일이더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힘들다는 자각을 하지 못했고, 그건 어디 가는게 아니라 쌓이며, 누군가가 들어주고 인정해줄 때 풀리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후에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병원, 환자, 가족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며 엄청 울었다. 아 내가 힘들었구나. 그리고 그게 저절로 풀리는게 아니구나. 힘들다고 말해야 풀리는구나.
뭐든지 척척 아무렇지도 않게 잘 해치우는 것 같은 동료 선후배들도 사실 엄청 힘들겠구나. 그들도 어디선가 실컷 울 장소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지도 몰라. 그런데 왜 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러와서 이러고 있지. 아니 책이 삶인가. 읽은 책과 읽고 싶은 책은 그 사람의 삶일 수도 있겠다.
직관적인 문장을 좋아하고, 만들어낸 이야기보다는 실재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동료들이 쓴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 어찌 보면 군더더기 없고 간결한, 아니 부딪치고 있는 현실의 무게만으로도 압도되어 더 이상의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여기던, 사실은 메마른 삶.
나의 이야기와 공명하는 글들을 읽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낯선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려보고 색깔을 입혀보는 마음과 시간의 여유를 조금씩은 더 내보아도 좋지 않을까. 그러면서 오히려,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며칠 후 집에 도착한, 나에게 맞추어 추천된 단 한권의 책은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이었다. 처음 들어본 작가, 안 끌리는 비장한 제목, 안 예쁜 표지디자인, 서점에서 보았더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책이었다. 하지만 나의 제한된 안목만으로는 고를 수 없는 책을 추천받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받는 순간 만족했다. 곱게 싸여진 포장지에 적혀있는,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해요”라는 말부터, “슬픔에게 언어를 주기 위해” 라는 추천의 이유까지. 즐겁기 위해 책을 읽고, 순간순간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글을 쓸 것이며, 그럼으로써 내 안의 슬픔이 언어가 되어 치유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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