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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ug 01. 2017

그녀가 바라는 것  

젊은 환자.

질문이 많은 환자. 

치료에 대한 기대가 많은 환자. 

그러나 항암제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은 환자. 

종양내과의사가 힘들어하는, 어려운 환자들의 특성이다. 이런 분들이 진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어찌보면 당연하지 않나. 살 날이 많은데 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불안하다. 의사에게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다. 어떻게든 살고 싶다. 온 힘을 다해서 살아남아, 남은 생을 누리고 싶다. 그러한 강렬한 희망을 안고 병원에 온다. 쉽게 포기가 되지 않는다. 

의사도 그걸 안다. 아는데 그만큼 의사에게도 마음의 짐이 된다. 해줄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름이 대기명단에 뜰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2차 항암치료에 반응이 좋지 않은, 한 젊은 여자 환자가 그랬다. 올 때마다 다른 분들보다 진료시간이 2-3배는 더 걸렸다. 질문이 많았고, 종양반응이 썩 좋지는 않아서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아주 안듣는건 아닌데, 그렇다고 줄어드는 기미도 안보이고, 그렇다고 치료를 중단하면 나빠질 것 같은, 진퇴양난의 상태. 그러나 어떻게든 그녀의 수명을 연장시키려면 계속 독려해서 치료를 지속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힘들죠"

"네 힘들어요. 주사 맞으면 일주일은 꼼짝도 못해요..." 

그녀는 외래 진료실을 방문한 지금 당장은 괜찮아보인다.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치료 후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다음 사이클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오기 때문에, 의사는 환자의 상태가 가장 좋을 때 보게 된다. "독성 회복되어 다음 치료 진행함"이라고 적어놓고 항암제를 처방한다. 어떤 이는 그런 것들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힘든 시기만 견뎌내면 그럭저럭 살아낼 수는 있으니까. 

그러나 어떤 이에게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일 것이다. 그녀의 아기는 네살이라고 했다. 아기는 끊임없이 돌보고 안아주어야 하는 존재다. 아기 엄마에게 아기와 놀아주지 못하고 2주마다 한주씩은 누워만 있어야 한다는 것. 아마 계속 되는 죄책감을 마음에 지우고 있을 터였다. 
"지금 치료가 힘들고.. 효과도 아주 크진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네요."

"..."

"임상시험에 참여해보는 방법도 있어요."

"그건.. 위험하지 않나요?"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있을 수도 있죠.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면 임상시험 참여가 최선이기는 합니다. 새로운 약제를 먼저 투여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예상 외로 치료효과가 좋은 경우도 있고요."

영 내켜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쩌라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최선인데. 당신은 내가 어렵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아직 완치를 원하고 있겠지. 그리고 부작용이 없는 걸 원할 거고. 그러면서도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충분히 검증된 치료를 원하지. 그런 것은 없어. 없다고. 

" 힘들면... 항암제 중 일부를 빼고 나머지를 투여하는 쪽으로 해볼 수도 있어요. 적어도 치료를 중단하는 것보다는 진행은 더딜 거에요. 부작용도 좀 덜할거고.... 좀 쉬었다가 다음주에 시작해볼까요?"

마지못해 대답을 하고 진료실을 나섰던 그녀는 몇 분 후 다시 들어왔다.

"두달 정도 있다가 다시 와서 CT 찍어도 될까요?"

"쉬고 싶어요?"

"....."

"많이 힘들죠."

어떤 뜻인지 알기에 더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좋은 , 현실에 없는 치료를 요구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라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일텐데. 왜 몰랐을까. 

아기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항암 해야 한다고 절대 재촉하지 않으니까...  몇달씩 발길 끊지 말고 계속 꼭 오세요." 

 "네 꼭 올께요 선생님."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눈망울로 그녀는 진료실을 나갔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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