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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Sep 16. 2017

연명의료법 유감

주말이 되니 대부분 환자분들이 퇴원하였고 한 분이 남았습니다. 암 전이로 인한 통증과 척수압박에 이은 하지 마비로 방사선치료를 하고 있는 분입니다. 방사선치료를 하여도 사실 보행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통증완화와 더 이상의 마비증상 진행을 늦추는 정도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암 진단 이후 8년을 사셨고 첫 번째 재발 이후 수술, 두 번째 재발이 되어 수술, 방사선치료, 항암치료를 이어 온 지도 3년이 다 되어 가는 상황이니, 이제는 한계가 온 것 같습니다.

어제는 DNR (Do Not Resuscitate) 동의서를 출력해서 회진을 갔었습니다. 가족들을 모두 모이라고 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국 죽음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 전에 하고 있던 항암치료를 중단할 지부터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한꺼번에 여러가지 결정을 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가족들이 항암치료를 계속 할 지 상의를 해보고 다시 얘기하자고 말씀드리고 난 후 아드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와서 묻습니다.

"얼마나 사실 수 있을까요?" 

"항암치료 반응이 만약 있으면 5-6개월 정도이겠지만.... 도움이 안될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습니다. 기대여명은 아마 2-3개월 정도로 생각합니다.워낙 진행이 많이 되셔서.... 이전에도 호스피스 전원에 관해 말씀을 드렸었잖아요?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항암치료를 시작하신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많은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방사선치료가 끝나려면 아직 며칠이 남았으니 조금씩 더 두고보면서 이야기를 진척시켜볼 생각입니다. 


DNR은 치료가 어려운 말기암 같은 질병으로 인해 임종이 다가올 때, 기도삽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나 체외막산소화장치(ECMO) 등을 사용해서 호흡과 심장박동을 유지하기 위한 치료(주로 "연명치료"라고 부릅니다)를 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합의서입니다. 그러한 치료는 주로 기저 질환이 회복이 가능할 때 합니다. 주로 외상이나 감염 등의 급성질환에서 사용하며, 심폐부전 환자에서는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동안 적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기암은 더 이상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상황이라, 대개 이런 치료를 시작해도 소생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일단 시작한 치료를 멈추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호흡과 심장박동은 그것을 유지하는 치료를 멈춤과 동시에 중단되며, 그러한 행위는 살인미수라는 유명한 보라매병원 판결이 있었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04/2014090400346.html?Dep0=twitter&d=2014090400346)

결국 중환자실에서 기계에 의존한 채 수십개의 관이 삽입된 상태로 임종하게 되는 참담한 상황을 맞게 될 뿐입니다. 하여 존엄한 죽음을 원한다면, 이런 것을 하지 않겠다는 상의를 미리 담당 의사와 해놓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DNR 동의서를 환자가 직접 작성하는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 임종이 가까워져서 가족들이 작성합니다. 가족들은 환자의 편안한 죽음을 바라고, 이러한 연명치료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것을 본인이 대신 작성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심적인 부담을 느낍니다. 그러나 많은 가족들이 또한 의사가 환자 본인과 죽음에 대해 상의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병명이나 예후를 숨겨달라고 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짧은 외래진료시간에 이러한 부분에 대해 상의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동안 불편했던 신체증상과 그 대책에 대해 상의하는 것만 해도 3-5분의 외래시간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결국 DNR 동의서는 병이 진행되고 막바지에 다다라서 입원하고, 환자가 의식이 없어질 정도가 된 임종 임박 상태가 되어서야 전공의들이 보호자들을 닥달해서 받아내는 서류가 되어버렸습니다.


내년 2월이 되면 "연명의료법"이 시행됩니다. 환자는 물론 건강인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것을 미리 작성해둘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회복이 어려운 말기 질환을 진단받았을 때 연명의료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 미리 본인의 의사를 밝혀두고 국가 시스템에 등록해둘 수 있습니다. 말기 질환을 진단받으면 담당의사와 상의하여 현재의 DNR 동의서에 해당하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고 그 내용이 환자의 뜻에 따라 진행됩니다. 취지는 매우 좋은 법입니다.

그러나.... 현장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단 이 법의 구체적인 시행방안에 대해 의료인들도 전혀 모르는 이들이 태반입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것을 미리 작성하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은 적어도 환자들 중에는 극소수입니다. 중증질환 환자가 되면 마음이 매우 약해져서 의사의 표정 하나에도 마음이 수십가지 방향으로 흔들리게 됩니다. 어떻게든 본인이 치료를 받고 나아지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하지요.

더 이상 회복되기 어려운 말기 상황이 되어도 죽음에 대해 환자 본인과 미리 상의하는 것은 아직 금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낼 경우 "의사가 나를 포기하는 구나"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치료는 계속 할 것이며, 연명치료와 관련한 결정은 당장 지금이 아니고 만약을 위해 상의하는 것이라고 반복하여 말씀드려도 "그만큼 내가 안좋다는 얘기인거죠"라며 눈물짓기도 합니다. 종종 환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가 나중에 가족의 거센 항의를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금기를 뚫고 환자와 가족이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는 자리를 가지려면 환자 한명당 한시간 이상의 상담, 독립된 조용한 방, 눈물을 닦을 휴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박리다매식 의료현장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종양내과병동의 일상을 들여다볼까요? 전공의들은 자신이 담당하는 30-40명의 환자들의 통증, 혈당, 설사, 변비, 호흡곤란과 관련한 콜을 받아서 조치를 취하고 각종 검사와 시술을 예약하며 종종 흉수천자, 뇌척수액검사, 골수검사 등 병동에서의 시술을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간호사들?  선진국에서는 간호사 일인당 2-5명의 환자를 본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15-20명은 보통입니다. 보통 근무시간에는 밥 먹을 시간도 없습니다. 전문의들은 외래에서 시간당 10-20명의 환자들을 '처리'하고 남는 시간에는 논문과 연구계획서와 보고서, 학생과 전공의 교육 준비, 각종 강의슬라이드를 만드느라 밤낮없이 일합니다. 편안하고 존엄한 임종? 살 수 있는 환자를 살려놓기에도 바쁜 이 현장에서 이에 관심있는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어제 바글거리는 5인실 한구석에 있는 환자 앞에 섰을 때, 이미 저는 DNR 동의서를 들이밀 용기를 상실하였습니다. 그의 눈동자는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차근차근, 하나씩 이야기해야했습니다. 또한 이 정신없는 가운데 다른 환자들도 다 듣는 앞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동에는 하지마비가 된 이 환자를 오로지 상담을 위해 침대째 모시고 와서 얘기할 독립된 공간도 없습니다. 막막하기만 합니다.


새로 시행될 연명의료법은 임종을 앞둔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야 함을 못박아두고 있습니다. 본인이 서명을 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녹취나 촬영이라도 해두라고 하네요. 연명의료법은 벌칙조항이 3년이하의 징역, 3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의료인의 면피를 위해서라면 힘든 환자에게 녹취를 해가며 괴롭힐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연명의료계획서를 받아두지 못하고 환자가 의식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라면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해집니다. 서면으로 작성하지 못한 경우 평소 연명의료에 대한 생각을 밝혀둔 환자라면 가족 중 2인 이상이 이에 대해 증언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환자가 얼마나 되겠어요. 환자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럴 때 배우자, 직계존비속 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외국에 있거나 연락이 안되는 가족이 있으면 그 환자는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숨만 붙들어놓기 위한 목적의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죽음을 맞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여러가지로 갑갑한 상황입니다. 좋은 취지의 법이지만 현장에서 좀더 준비할 시간을 주고 시행했으면 좋겠습니다. 벌칙조항이라도 완화하고 시범사업부터 한다면, 일부 가능한 환자들부터 상담하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조금씩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환경이 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명의료법과 관련된 언론보도는 많이 되었지만, 실제 자신이나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기사를 읽는 분들이 그리 많았을까요? 병원에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홍보하지 않으면 막상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야 할 분들은 전혀 모릅니다. 

일부 학회단체와 의료인들이 시범사업과 벌칙조항 완화에 대한 제안을 계속 해왔지만 거의 먹혀들지 않았고 결국은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와버렸습니다. 많이 늦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연명의료법을 정말 취지에 맞게 시행할 수 있을지 정부에서 다시 검토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논의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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