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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Oct 06. 2017

굼벵이

굼벵이. 대체요법이라고 하면 저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굼벵이입니다. 

부엌 바닥을 꿈틀꿈틀 기어다니는 하얗고 윤기나는 통통한 벌레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달여주려고 오일마다 열리는 시골장터에서 사온 굼벵이였습니다. 굼벵이를 넣어두었던 상자가 엎어지는 바람에 바닥에 펼쳐진 끔찍한 생물체들의 향연을 보면서 열다섯의 소녀는 역겨움과 슬픔에 몸서리쳤습니다. 아픈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보다 그런 것을 사다 먹으며 병이 나을 거라고 믿는 부모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큰 나이였습니다. 

굼벵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은 더 역하고 부끄러운 것도 마다않고 하셨습니다. 요료법이라는 것이었지요. 그것은 자신의 아침 첫 소변을 받아서 마시는 것입니다. 소변으로 빠져나가버리는 것들 중에, 항암물질이 있을거라는 믿음때문일 것입니다. 9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대체요법인 스쿠알렌, 알콕시, 각종 녹즙, 삼백초...그리고 정체모를 중국약 등등.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꼼꼼히 기록해둔 부모님의 일기장에는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방법들로  전이성 담낭암이 치료될 것이라 믿고 따른 것은, 그분들이 교육수준이 낮아서, 또는 장사치들에 쉽게 속아넘어가는 순진한 성격이어서, 나이가 많아 판단능력이 흐려져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40대 중반의 지방 국립대의 교수이자 경제학자였고 어머니는 전직간호사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정체모를 식품들을 권유하고 기꺼이 자비를 들여 구해와주신 고마운 지인분들 역시 훌륭한 인격에 높은 학식을 갖춘 분들이었습니다. 


이번 추석 연휴동안 읽은 책 <대체요법을 믿으시나요? (폴 A. 오핏 저, 서민아 옮김, 필로소픽)>은 미국의 소아과의사이자 백신연구자인 저자가 미국사회에서 대체요법산업이 성장해온 궤적을 추적한 역작입니다. 대체요법이 기승을 부리는 질병 중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암과 자폐증입니다. 아마 저자가 대체요법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게 된 이유도 아마 본인이 백신 연구자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근거없는 불신이 대체요법의 성장의 발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책 149페이지에서 저자는 자폐아의 부모들이 대체요법에 매달리는 이유에 대해 한 부모의 입을 빌어 이야기합니다. 


폐증 연구재단 (Autism Science Foundation) 설립자이며 예일대학교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앨리슨 싱어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부모들이 어떻게 이처럼 쉽게 속을 수 있는지 설명한다. 

“제 딸 조디가 자폐증 진단을 받았을 때, 저는 조디를 고치고 싶었습니다. 조디가 건강해지기만 한다면 무슨 짓이든 하고싶었습니다….우리는 글루텐과 카세인을 함유하지 않은 식단을 시도했습니다. 디메틸글리신도 시도했지요….. 한번은 조디를 척추지압사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밤에 매트리스 밑에 커다란 전자석을 깔아놓으면 조디의 뇌 속 이온이 재배열되어 조디를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 당시 저는 이미 멍청해진 지 오래였답니다. 그때 남편이 저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하더군요. ‘당신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 당신이 뭐라고 말하는지 들려?’ 바로 그때 제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깨달았습니다. 그건 제가 아둔해서가 아니라 제 슬픔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어요. 마음속에 슬픔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성은 생각하기 싫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폐아의 부모가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의 삶, 그리고 그를  평생 보살피며 사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진행암환자와 그 가족이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수개월 또는 수년 안에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죠. 대체요법에 집착하는 것은 이성적인 사고로부터 오는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인 것 같습니다. 매트리스 밑에 전자석을 깔면, 굼벵이를 달여마시면, 자신의 소변을 받아마시면 혹시 병이 나아질 지도 모른다는 희망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어쩌면 말이 안된다는 것 자체가 이성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마약과도 같은 힘을 지닌 것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십여년의 종양내과전문의로서 살아오며 대체요법을 받아들이는 많은 환자들을 보아왔습니다. 대체요법에 대해 의사에게 물어보는 분들은 그래도 의사를 신뢰하는 이들이라는 것을 압니다. 얘기해보아야 달리 좋은 대답을 듣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물어보는 것이니까요. 사실 환자들은 의사에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대체요법을 하고 있지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병상기록을 보며 찾아낸 대체요법들을 아버지의 담당의사가 알았더라면 까무러쳤을 것입니다. 황달이 있는 암환자가 그 많은 정체불명의 약품들을 먹어왔다는 것을 제가 알았더라면 깜짝 놀라며 환자를 혼냈을 것입니다. 

대체요법도 유행이 있습니다. 개똥쑥이 한동안 대 유행이었고 글라비올라, 와송, 영지버섯, 상황버섯, 차가버섯, 야채스프, 셀 수도 없습니다. 상당수 요양병원과 종합병원에서 하고 있는 겨우살이추출물 주사, 태반주사, 자닥신, 온열치료 등은 너무나도 만연한 나머지 많은 환자분들이 제도권의학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을 정도입니다. 저에게는 왜 이 병원에서는 온열치료를 안해주느냐고 따지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항암효과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해서라고 하면 대형병원의 오만이나 기득권의 횡포인 양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대체요법이 오히려 해로울 수 있고 반면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환자들에게 경고를 하였을 때에도 그들은 말은 안했지만 타성에 젖은 제도권 의사의 오만으로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대체의학을 믿으시나요>에서는 그러한 음모론 자체가 대체요법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자들이 기생하는 토양임을 드러냅니다. 


“대체의학의 또 하나의 유혹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현대의학을 공부한 의사들은 냉담하고 무심해보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자기가 한 사람의 개인이기보다 숫자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바로 이 틈새를 대체의학 치료사들이 파고들어 온 것이다. “의사들은 시스템 안에서 꼼짝을 못합니다. 탐욕스럽게 영리를 추구하는 시스템 안에서 말이지요.”  (책 51페이지) 


저는 이제까지 그런 환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 대한 불신, 특히 컨베이어처럼 돌아가는 대형병원의 현실과 설명의 부족, 병에 대한 불안 때문에 그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 는 것이 제가 그들을 이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과학적 사고의 결여와 무지가 그러한 사고에 한몫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책에서 자폐아 부모의 이야기, 그리고 부모님의 일기를 읽었을 때, 그러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더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킵니다. 빛나던 지성도 슬픔 앞에서는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 틈새로 흘러들어 채워지는 것은 신비, 천연, 초자연 따위에 대한 절실한 믿음. 슬픔을 잊게 해주는 맹목적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미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장사꾼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정한 인술을 펼치는 재야의 실력자인 양 환자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 뒤에는 슬픔이 있습니다. 그들이 슬픔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되 현실을 직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의무가 의료인들에게 있습니다. 그들이 한심하게 여겨지거나 짜증이 날 때면, 부엌바닥을 기어다니는 굼벵이들을 떨리는 손으로 주워담던 어머니를 기억하려 합니다. 하얀 굼벵이만큼이나 무겁고 굵은 눈물을 속으로 흘려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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