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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an 02. 2018

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침대

프로크루스테스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요 

네, 사람을 침대에 맞춰서 자르고 늘였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세우스에게 처치된 그 강도의 이름이 처음엔 생각이 안났어요. 역시 구글신이더라구요. '침대' '그리스신화'라고 넣으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위키백과 링크가 딱 나와요. 사실은 처음엔 기억이 안나서 '프로스타크루스의 침대'라고 입력했는데 그랬는데도 딱 찾아주더라니까요? 

아무튼. 

오늘 그 프로 뭐시기의 침대가 생각난 것은 한 환자 때문이었어요. 60대 후반의 그 남자분은 대장암 4기로, 복막에 전이가 되어 항암치료를 받던 분이었어요. 처음 몇 주기 (항암치료는 2주-3주마다 반복적으로 투여가 되는데, 한번 투여되는 것을 한 cycle,  즉 주기라고 한답니다) 는 잘 견뎌내었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어요. 약을 바꿨죠. 부작용이 그전 약에 비해 더 심한 약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1주기를 마치고 온 환자분은 눈은 퀭하니 초점이 없고 수염도 덥수룩했어요.  몸무게도 3kg인가 빠졌구요. 


나: 많이 힘드셨어요?

딸: 입맛이 통 없어하세요

나: 구토나 설사 (항암치료의 대표적인 부작용)가 심했나요?

딸: 아뇨, 그런건 별로 없었어요. 그냥 식사를 안드세요..

나:  환자분, 입맛이 없어서 그러셨어요?

환자: .....

딸: 항암 하면 기억력도 떨어지고 그러나요?

나: 그럴 수는 있는데 대체로 부작용 때문에 신체기능이 떨어지면 같이 일어나는 현상이기는 합니다. 

딸: 아까 전 일도 기억을 잘 못하시고...몇년 지난 얘기를 갑자기 꺼낼 때도 있어요. 깔끔하시던 분인데 요즘은 면도도 안하시고 방 안에서만 있으려고 하시더라구요. 식사도 방안으로 가져가서 드려야 드시고... 

나: 환자분, 기력이 많이 떨어지시나봐요? 다 귀찮고 그런 생각이 드시나요? 

환자: 네.... 만사에 의욕이 없어요... 


이쯤 되면 일반적인 항암요법의 부작용이라고 하기엔 조금 이상하죠. 대개는 초반에 오심, 구토때문에 못드시다가 중간에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셔서 오시거든요. 부작용이 너무 심하면 계속 힘들 수도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이상해요. 방안에 칩거하고, 위생이 불량해지고, 기억력이 떨어지는 등 인지기능저하까지 같이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항암치료를 해서 힘든 것만은 아닌 것 같았어요. 


나: 환자분, 아무래도 항암때문에만 힘든 것은 아니신 것 같아요. 이전에 제가 봐왔던 때와는 조금 다르시거든요. 암을 진단받고 치료도 힘드니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서일 수도 있는데, 암이 아니더라도 인생에 한번은 생길 수 있는게 우울증이에요. 노인분들이 우울증을 앓으시는 경우가 사실 드물지는 않거든요. 한번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시는 것이 좋겠어요. 


그래서 환자분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항우울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답니다. 그 이후 오늘 처음으로 뵈었어요. 


나: 이전보단 표정이 좋아보이세요. (실제 눈빛이 좀 생기가 돌았어요. 면도도 하셨구요)

딸: 네, 요즘은 조금 더 드세요. 세끼 챙겨드시고 간식도 조금 드시고.... 정신과 선생님도 좋아졌다고 하시네요. 그래도 거의 누워지내시는 시간이 더 많아요. 

아직 충분치는 않은데 조금더 약 드시면서 경과보자고 하세요. 

나: 네, 우울증약은 계속 드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이제 항암 하실 수 있을까요? 

딸: 그게... 정신과선생님은 조금 더 보는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시는데 여기서 상의해보라고 하시던데요. 아직 충분히 회복은 안되서.... 

나: 그렇군요. 잠깐 누워보실까요? 


환자의 복막전이는 배꼽 주변의 피부 아래로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 있어서 딱딱하게 만져집니다. 다행히 그 곳은 전에 비해 많이 커진 것 같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11월 이후 거의 한달 반 가까이 치료를 안해서 조금 걱정은 되었지요. 아마 뱃속에서는 약간씩은 커지고는 있을거에요. 급격히 나빠지지 않는다 뿐이지 치료를 하지 않는 이상 암의 성장을 억제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항암치료도 다 환자가 몸이 편하자고 하는건데.... 항암치료를 하면 암을 줄이거나 더 진행하지 않도록 조절할 수는 있겠지만, 정상조직도 손상을 입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부작용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완치가 목표가 아닌 완화적 항암요법은 몸 상태에 따라 전략을 달리 해야 해요. 완치가 목표라면 당장 몸이 상하더라도 치료를 가능하면 하는 쪽으로 방점을 찍어야겠지만, 완화적 항암요법은 치료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과 손해를 끊임없이 저울질하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항암치료를 진행하지 않는 것이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어 보였어요. 복막전이로 인한 통증은 진통제로 조절이 되고 있고, 항암치료를 당장 하지 않아도 적어도 몇 주동안은 암의 합병증 때문에 고생을 할 확률은 높지는 않아보였어요. 하지만 항암치료를 다시 할 경우 신체기능이 일시적으로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겨우 회복되고 있는 우울증 치료에 악역향을 미칠 가능성은 훨씬 더 높지요. 


문제는.... 삭감이에요. 

11월에 항암치료 첫 주기를 시작했고...지금까지 2주기 치료를 못했으니 아마 암은 조금 진행을 했을거에요. 만약 우울증이 좀더 호전되고 다시 CT를 찍는다면... 11월보다는 암이 커져있을 확률이 매우 높아요. 그러면 '그동안은 우울증때문에 이 약을 못썼고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을 만큼 투여하지 못하였으므로 다시 투여하겠다'고 하면.... 

삭감될거에요. 국민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서는 항암제를 일단 시작한 이후 찍은 CT에서 암이 진행된 소견이 있다면, 무조건 내성이 생긴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그 약을 다시 쓰면 거의 무조건 삭감을 해요. '그동안 다른 사정 때문에 투약을 못했다'고 해도 통하지 않아요. 

그러면 CT를 안찍고 나중에 다시 치료 시작해서 좋아졌을 즈음에 찍으면 되지 않냐? 그것도 안돼요. 3개월마다 무조건  CT를 찍지 않으면 삭감돼요. 환자는 2월 중에는 무조건 CT를 찍어서 확인을 해야 하는데, 저의 목표는그 전까지는 어떻게든 3-4회 치료를 해서 적어도 11월보다는 좋아진 소견을 만들어야 보험기준에 맞춰서 치료를 할 수가 있어요. 이 약도 못쓰면 이 분은 더 쓸 항암제가 없는 분이라 치료기회를 놓치게 하고 싶지가 않은거죠.  그런데 치료를 오래 쉴수록 그럴 수 있을 가능성이 떨어져요. 

그렇다고 우울증을 외면하고 일단 항암제를 투여하는 것은, 

프로스타크루스, 아니 프로크루스테스 (아 또 기억이 퍼뜩 안나네요^^)가 하는 짓인거에요. 보험기준에 맞춰서 항암치료를 한다는 것은요.  


보험기준, 정확하게는 건강보험급여기준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은 약제의 남용 등 불필요하고 해로운 진료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항암제치료의 대 원칙은 "치료 중 암이 진행하면 내성이 생긴 것이니 중단한다/ 정기적으로 영상검사를 통해 종양의 크기를 측정하여 효과 여부를 확인한다"는 것이에요. 항암치료를 하면서 그런 원칙을 지키지 않고 마구잡이로 투여하는 의사들도, 부끄럽지만 있었고, 지금도 놀랍지만 있어요. 그런 원칙에 어긋난 진료를 막아야 불필요한 치료와 그로 인한 부작용과 비용을 줄일 수 있겠죠. 건강보험은 공보험이기 때문에 낭비해서는 안돼요. 그래서 의학적 근거가 있고 원칙에 맞는 치료를 하는 경우에만 보상을 해주는 거에요. 그것이 양질의 진료를 제공하도록 하려는 금전적 유인책도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급여기준이라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없이는 공보험을 운영할 수가 없죠. 문제는 그것을 적용하는 방법입니다. 모든 법과 규범이 그렇듯이, 그 적용이 기계적이어서는 안돼요. 

우리가 치료를 하다보면 얼마던지 돌발적인 변수가 있게 마련이거든요. 치료 중 암이 진행하였지만 위와 같이 투약이 제대로 안된 상황이었을 수 있어요. 정기적으로 영상검사를 해야 하지만 질병이나 환자의 상황에 따라서는 검사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요. 조영제 부작용이 심하거나 혈관상태가 좋지 않으면  CT를 못찍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기거든요.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모두 감안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심사를 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서는 그러지 않아요. 의사를 믿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타당한 지 여부를 판단할 전문성이 없어서일수도 있어요. 또는 그냥 행정편의주의 일 수도 있죠. 현실적으로는 자율성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구체적인 사안별로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단히 골치아프고 삭감도 많이 못하게 되니 그런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위 환자의 이야기는 에크모 (ECMO; 체외막산소화장치)에 비해서는 아주 사소한 얘기일 수도 있어요.  환자를 살리면 심평원에서 돈을 주고 죽으면 돈을 안줘서, 죽을 위험이 높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쓰는 이 장치를 자꾸 쓰면 병원이 거덜나게 된다지요. 

그래도 이런 얘기를 자꾸 하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환자가 최선의 치료를 제대로 못받는 상황이 생기니 그러는거에요. 지난번 한겨레 기사에서 인용된, 비급여의 급여화에 대한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의 말씀과는 다르거든요. 이건 단순한 '불편'이 아니에요. 

"진료비를 청구하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진료내역을 제시하는 게, 같은 전문가가 들여다보는 게 불편한 거다.불편할 수 있다. 지금은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았으니. 하지만 의학적 성격의 진료라면 모두 국민건강보험 체계로 들어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822940.html#csidxc49fb305a0262ac982745e1844376b9 

프로크루스테스, 아니 심평원의 침대에 눕는게 단순한 불편함일까요? 죽음의 공포가 아닐까요? 침대에 사람의 키를 맞추는 것이나, 급여기준에 환자를 맞춰서 치료하라는 것이나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적과 수단, 본질과 표면이 뒤바뀐 상황 말입니다. 

급여기준이 존재하고 심평원이 심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아요. 급여기준은 비용효과적이고 양질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함이지 급여기준에 맞추느라 환자에게 위해가 가해질 수도 있는 상황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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