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일 때 더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눈에 보이는 상황에 곧바로 반응하는 사람을 두고, 아이 같다고 말한다. 억울하고, 화나고, 즐거울 때 곧바로 감정을 얼굴에 보이는 사람에겐 "아이처럼" 행동한다는 수식이 자연스럽다.
언제 어른될래?라는 말을 주변 어른들에게 듣지 않는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요즘은 이 말이 그립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본인이 어른스럽다는 말을 하려는 거냐고 묻는다면, 아니요라고 답하겠다. 나는 단지 바로 떠오르는 감정의 표현을 한 템포 뒤로 숨기는 행동을 하면서부터 '어른'의 대열로 합류하게 되었으므로, 어른의 자격이 뭔지 궁금해졌다.
결혼도 했고, 30대 삶을 사는 내가 어린이집에서 만난 아이에게 "어른이 뭘까?"라고 묻는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답할까? 아이의 앞에 서있는 나는 이미 성장을 끝낸 어른이다. 어른이란 성장통이 끝나 더 이상 팔다리 길이를 늘여가며 옷을 고르거나, 성장을 돕는 영양을 위한 왕성한 식욕을 채우지 않는 사람. 성장을 위한 영양소보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극적인 맛을 쫒는 어른.
어른답게 생각하는 것이 뭘까? 하루 살았던 경험들을 종이에 적어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업무를 보고, 점심을 먹고, 잠깐 유튜브 보다가 다시 업무를 본 다음, 저녁을 먹은 다음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다 넷플릭스 한편 보고 다음날도 같은 패턴으로 하루를 보낸다. 업무와 작업을 균형감 있게 바꾸며 하루에 주어진 깨어있는 시간을 쓴다. 과연 나는 어른처럼 성숙하게 시간을 보냈는가?
아이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어린이집에 간다. 노래도 부르고 선생님이 보여주는 글자 공부에 잠깐 관심을 두고 점심을 먹고 낮잠도 잔다. 여기서 낮잠은 어제보다 0.1cm 더 크기 위한 시간이다. 그리고 또 한 번 소근육과 대근육을 위해 놀이를 한다. 여기서 놀이란 무리 생활을 배우고, 성장을 위한 것이겠지.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저녁을 먹고 씻고 또 논다. 하지만 부모와 선생님이 제시하는 놀이엔 '학습'의 향이 배어 있다.
나는 아이일 때보다 열심히 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앞에 써둔 열심히 산다는 말이 굉장히 거슬린다.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 약간 대충 사는 느낌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술을 마시지도 않고 게임을 하지도 않고, 시간을 허투루 쓸 바엔 드라마나 영화 한 편 보면서 하루에 쉼이란 틈을 만드는 게 나쁜가? 생각한다.
아이들은 열심히 산다.
어른인 나도 하지 못하는 열심한 삶을 산다. 개미굴을 팔 때도 열심히 판다. 여왕개미의 방까지 빠고 들었어도 더 판다. 아이들은 하늘도 열심히 본다. 그러다 눈앞에 날아가는 벌레를 따라 시선을 옮긴다. 아이들은 뭘 해도 정신 팔려 열심히 뭔가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른 앞에서 그날의 놀이를 이야기할 때, "열심히 놀았어요"라고 하지 않는다. "재밌게 놀았어요"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열심히... 아니, 재밌게 산다.
"열심히"
열심히 뭔가 해야 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 매번 느끼는 죄책감 같은 것들, 오늘 하루는 누군가가 그토록 원하던 하루일 텐데!!! 내가 허투루 살 수 없다며, 하루를 열심히 살고 마치려는 행동이 한 겹씩 쌓인다. 그리 두껍지도 않다. 그 한 겹은 내가 만든 그 얇은 막은 365일 쌓아 12월 연말 정산 시즌에 마주하게 된다. 이때는 꽤 두껍고 불투명한 365개의 겹 앞에 서는 게 두렵기도 하다.
12월은 이런 달이다. 1일부터 31일까지 지난달을 돌아보며 후화하기도 자책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르게, 쌓아온 겹 중 하나를 떼어 본다. 아등바등 열심히라는 택이 달려 있다. 앞에 겹에도 열심히 혹은 치열하게 택이 달려있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택을 달은 한 겹을 남겼을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뭣하러 하루를 재밌게 보내는데 죄책감이 들었나.
토닥토닥. 하지만 모두가 오늘도 파이팅!이라는 인사를 남기는 우리 민족이기에 열심히 살지 마라 할 순 없다.
할 수 있는 건 유쾌하게 손을 들어 올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
오늘은 12월 10일, "재밌게" 하루를 보냈다는 택을 남기려 한다.
당신도 오늘의 택을 어제와 다르게 남겨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