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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eter 정민 Feb 09. 2024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

갤럭시 탭 S9 광고가 표현한 상상력에 대하여

사람들이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하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펜으로 수학 공식을 쓰며 계속 풀어나가고,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바다와 물고기의 이미지를 스크랩한다. 수많은 페이지를 넘나들며 스케이트보드의 정보를 찾는 사람도,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쓱쓱 그려내는 사람도 있다. 문득, 화면으로 물고기를 보던 사람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자 세상이 바닷속으로 변한다. 노란 열대어 물고기 떼가 헤엄쳐 그에게 다가오고 수면 가까이에는 거대한 고래의 그림자가 보인다. 무언가를 계속 그리고 있던 사람의 앞에는 그녀가 창조한 털보 캐릭터가 나타나 악수를 청한다. 수학을 풀고 있던 학생의 세상은 수학 공식으로 가득 찬다. 프레젠테이션 보드로 스케이트보드 제품을 기획하던 사람의 옆으로 스케이트보더가 쌩하고 달려나간다. 곧 화면은 다시 바닷속으로 이어진다. 바닷속을 유영하던 사람은 곧 신비로운 울음소리를 향해 헤엄치며 그 생명체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찾고. 쓰고. 다시 보고. 저장하고.

FIND YOUR FAVORITE


앞의 이야기는 2024년의 시작과 함께 런칭된 삼성 갤럭시 탭S9의 광고 장면이다. 무언가를 계속 그리고, 찾고, 스크랩하다 보면 결국 그 사람이 찾던 세계가 눈 앞에 나타나고, 빨려 들어가버린다는 표현. 굉장히 실감나는 비주얼의 화면 구성이었다.


최근 3년 사이, 트렌드의 가장 핫한 화두는 메타버스와 멀티버스였다. 이처럼 모든 이들이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현대사회에서 상상력과 이를 실제 표현할 수 있는 감각은 단연 능력이다. 최근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보더라도 ‘자기 세계가 있는가’가 롱-런하고, 인기를 끌 수 있는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상상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닮았지만 조금은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그 속에 자신의 꿈을 담아낸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그 세계를 엿보며 그 속에 담긴 희망을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생각이 자꾸만 뻗어 나가게 하는 매력적인 세계들, 그 중 2024년 1월에 접한 두 가지 콘텐츠를 소개하려고 한다.


'Dearest, Darling, My universe, 날 데려가줄래, 나의 이 가난한 상상력으론 떠올릴 수 없는 곳으로'

아이유의 <Love Wins All> 뮤직비디오 장면이다. 아이유와 방탄소년단의 뷔는 무언가에 쫓긴다. 아이유는 말을 하지 못하고, 뷔는 눈이 먼 모습으로, 둘에게는 아픔이 가득하다. 피난처에 몸을 숨겨 숨을 돌리는 사이, 뷔는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아이유를 촬영한다. 화면 상에 보이는 그녀는 조금 전과 달리 상처가 없는 밝은 모습이다. 곧, 폐허는 아름다운 미장센의 공간이 되고, 식탁 위에는 고급스러운 만찬이 놓인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이 창조한 환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꿈일 뿐. 세상 모든 형태의 편견을 의미하는 네모 형태의 상자는 저항하는 두 사람을 결국 소멸시켜 버린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는 제목과 달리 비극적인 결말로 맺어졌지만, 그럼에도 이 영상은 ‘사랑하기를 방해하는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하려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어떤 실수로 이토록 우리는 함께일까’

‘산산히 나를 더 망쳐 Ruiner, 너와 슬퍼지고 싶어 My lover’

‘나와 함께 겁 없이 저물어 줄래’


직접 이 곡의 가사를 썼다는 아이유. 왜 사랑을 ‘실수’라고 표현했을까. 왜 사랑으로 인해 ‘슬퍼지고 싶다’고 했을까. 왜 '나를 망치고 함께 저무는' 사랑을 원한다고 했을까. 비록 실수이자 슬픔 뿐인 사랑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그 간절한 마음. 노래 가사가 머릿속에서 한동안 맴돌았다.


김연수 작가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심연이 있다. 그 깊고 어두운 심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아티스트로서 이미 독보적인 장르가 되어버린 아이유는 한 뼘 더 나아간 사랑의 세계를 노래한다. 그녀의 애정어린 꿈을 담아낸 세계 속에서 나는 새로운 메시지를 발견한다. 서로의 결핍까지 들여다보고, 끌어안고, 치유해주는 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그렇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있기에 사랑은 기필코 이길 수 있다. 마침내 완벽한 사람을 찾아냈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을 포용하고, 그의 곁에 남기를 선택함으로써 사랑을 지키는 것. 그런 마음은 삶을 마주하는 성장인 것 같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서로를 놓지 않고 상처까지, 슬픔까지, 사랑할 수 있는 힘. 아이유가 그려낸 사랑의 세계는 기꺼이, 그런 힘을 갖고 싶게 한다.


두 번째 소개하고 싶은 세계는 하루키의 세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한 소년과 소녀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상 속의 세계를 그려낸다. 소녀는 현실세계에서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재혼이라는 아픔을 끌어안고 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 어두움 없이 살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를 열망한다.

‘가끔 내가 무언가의,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여기 있는 나한테는 실체 같은 게 없고, 내 실체는 다른 어딘가에 있어.’*

벽으로 둘러싸인 상상 속의 도시 안으로 들어가려면, 인생의 슬픔, 두려움, 고뇌, 절망, 미움, 자기연민 등 인생의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 벽 밖에 남겨두고 가야 한다. 그렇게 들어간 그 곳에서는 시간이 정지되어 있고, 해로운 감정들은 은폐된 채로 봉인되어 있다.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불확실한, 그림자 없는 도시는 그렇게 수많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녀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후 소년은 수십 년 간 허무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적으로 그 상상 속의 도시를 발견하고 들어가는 데에 성공한다. 한편, 그가 도시의 벽 밖에 남기고 간 그림자는 주인공에게 생의 어두운 면을 회피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말고,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당신은 바깥세계에 있던 것이 그녀의 그림자고, 이 도시에 있는 것이 본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실은 반대일지도 모르거든요. 내가 보기엔 저쪽이야말로 진짜 세계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고생하며 나이 들고 쇠약해져 죽어가요. 물론 썩 재미있는 일은 아니죠. 하지만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요.’*


아픔이 없는 인생은 진짜가 아니라는 그림자의 말은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도시 밖으로 나오느냐, 그 안에서 살아가느냐는 결국 생의 어두운 면까지 직면하느냐 외면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마침내 주인공은 온전히 자신을 마주할 것을 결심한 채로,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런 그에게 있어 세상의 모습은 더 이상 어둡고 차갑지만은 않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채 돌아온 그의 앞에는 한없이 깊고, 부드러운 어둠이 펼쳐진다. 나 역시 이런 성장의 과정을 거쳐왔기에, 그 도시 속에 숨어버린 주인공은 나였고, 그 도시 밖으로 담담히 걸어나오는 주인공 역시 나였다.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는 아픔, 실패 하나 없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가끔 휘몰아치는 세상에서 커다란 슬픔에 마주할 때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수많은 책을 읽으며 내 세계를 견고히 쌓았다. 그러면서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세상의 다양한 슬픔과 상처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세상과 상상력은 더 넓어졌다. 그림자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려는 노력들은 단단한 내면의 밑바닥이 되었다. 생의 시련들은 한동안 나를 멈춰 있게 했지만, 이에 매몰되지 않고 더 나아가기로 결정한 이후, 나는 아파했던 날들을 마주하고 털어내 버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세계는 계속해서 태어나고 있다. 새로운 세계들은 결국 이 세상을 향한 은유와 메시지로 수렴되기에, 사람들은 이를 마주하면서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인생의 다양한 희로애락과 상처, 그리고 성장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석을 나누며 세계관의 몸집을 불려간다. 그러다가 용량이 가득 차면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상에 꺼내 놓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계속 이런 다른 세계들에 눈을 돌려 건너갔다 올 것이다. 그 수많은 세계들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자라게 하니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일부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인용한 광고 : 삼성전자 갤럭시 탭 S9 FE | 탭 S9 FE+ <Find Your Favorite> 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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