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 Feb 29. 2024

너의 감정에 따른다면 틀린 선택은 없어

틴더 광고를 보고 떠오른, 사랑하는 태도에 대한 생각

한 여성이 냉장고에서 당근이 담긴 통을 꺼내며 표정을 찌푸린다. 바닥에 통을 떨어트린 채로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낸다. 핸드폰 앱의 UI에서 왼쪽으로 스와이프하니, Nope이라는 글자가 화면에 나타난다.

‘지금부터 마음껏 무언가를 싫어합시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게 뭐 어때요.’


사람들의 사진을 둘러보다가 이번엔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한다. 그러자 여러 개의 하트가 그녀를 둘러싼다.

‘친구들. 실컷 누군가를 사랑합시다.’


화면이 전환되어 한 여성이 인형 뽑기 기계 앞에서 유리창 너머로 뽑고 싶은 아이템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러다가 당당하게 원하는 걸 콕 찝어서 가리킨다. 잔디 밭 위,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에 올라탄 커플의 발치에는 SUPER LIKE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다. 한 사람은 앱의 UI에서 위를 가리키는 방향으로 스와이프한다. 그러자 경쾌한 알람음이 울리며 IT’S A MATCH! 라는 글자가 화면에 나타난다.


‘틀린 선택은 없어. 틴더.’


이성을 만날 수 있는 데이팅 앱인 동시에, 취향과 결이 잘 맞는 동성의 친구들까지 만들 수 있는 소셜 데이팅 앱 틴더(tinder)의 2022년 광고 캠페인이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즉각적으로 첫 느낌에 따라 선택을 하는 영 타겟의 특성을 잘 캐치한 듯 보였다. 그리고 이는 이들이 틴더 앱을 사용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왼쪽으로 스와이프하느냐(DISLIKE),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하느냐(LIKE)는 불과 몇 초 만에 결정된다. 재미있는 건 이들에게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대단한 이유’는 딱히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게 더 힙해 보였다. 이 광고는 그러한 애티튜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람과의 교류에 활짝 열려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유저 페르소나를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이 광고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부럽다’는 것이었다. 왜 부럽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냐 하면,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겁내지 않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고, 싫으면 싫다고 예의나 가식에 얽매이지 않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정말이지 부럽다. 반면, 나의 경우 예전부터 생각이 많아 무언가를 잘 시작하지 못했다. 내게는 시작해보기도 전에 끝을 재단해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을 시작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석사, 박사 과정을 밟는 중이라 군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 문화적 감수성이 없어 깊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것, 술을 너무 자주 마시는 것 등등.


놀랍게도 언급한 모든 케이스들은 바로 그 한 가지 단점을 제외하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가끔은 내가 놓쳐버린 그들을 생각하면 아쉽기도 했다. 이로써, 그들이 아니라 내 태도가 문제였던 게 판명된다. 사랑에 빠지는 느낌을 따르지 못하고, 마치 면접관이 된 것 마냥 이성적으로 재단하고, 시작해보지 못했던 것. 예전에 친구와 대화하다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적이 있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내가 ‘소거법’을 쓴다고 했다. 이는 어떤 사람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만나는 게 아니라, 수많은 결격 사유를 만들어놓고 해당되는 부분을 찾아내 연인 후보 리스트에서 제외해버리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냐 되겠는가. 거기다 나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미어캣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속도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눈치가 빨랐고, 빠른 시간 내에 사람을 잘 파악했던 편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예전에 사랑을 시작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은 현재의 감정을 충실히 따르지 못하고, 미래 만을 따지며 걱정하려 했던 태도 때문인 것 같다.


이 글의 시작에서 언급한 틴더 광고에서도 그렇지만, 가끔은 문학 작품에서도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때마다 나는 그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의 매력에 푹 빠지곤 한다. 최근에 읽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패배의 신호>에서는 생각이 어리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여성, 루실이 등장한다. 그녀는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영원히 청소년기에 머물겠다는 결정을 내린 채로’, 조금은 무책임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루실에게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연상의 연인이 있지만, 파티에서 만난 또래의 매력적인 남성, 앙투안에게도 눈길을 보낸다. 그리고 곧 그와 밀회를 감행할 정도로 감정에 충실하게 젊음을 불태워버린다. 마침내 그들은 당시 만나던 연인과도 헤어지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동거를 시작한다. 연상의 연인이 제공해주던 경제적 지원과 세련된 문화적 네트워크 등, 그 모든 안락함을 포기한 상태로 말이다. 비록 마지막에 그들의 관계는 난관에 봉착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다 누리는 듯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첫 만남이며 그들이 맺어지게 된 내력의 세부사항들을 끝도 없이 되새김질했고, 그들이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자기들의 진짜 감정을 모를 수 있었는지 매우 고전적이게도 경악하며 의아해했다. 두 사람은 평화롭고 영구적일 수 있을 공동의 미래를 꿈꾸지는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홀린 사람들처럼, 펼쳐지는 현재를 바라볼 뿐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채로, 현재만을 바라보는 것은 참 어렵다. 또, 그런 삶의 방식은 모든 이들에게 받아들여질 수도 없다.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에서 유년의 동심과 이별한 이후로는 감정보다는 이성에 따르라고 우린 철저히 교육받아 왔으니까. 나이가 들수록 책임에 대한 인식 역시 높아지기 때문에, 책임질 수 있는 관계와 환경을 찾는 건 어느 정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요즘 드는 생각은 올바른 삶의 모습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포기하는 삶에서 오는 회의감을 느낄 때마다, 그 반대편에서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초라하지 않다. 오히려 용감하다. 이처럼 ‘욕망의 해방’이라는 솔직한 삶의 태도는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 느껴질 때 가끔 가벼운 악동의 세계로 건너갔다 오지 않으면 지치니까. 그래서 나 역시 가끔은 유년 시절을 꺼내 먹으며 꽁꽁 숨겨놓았던 마음과 마주하려 한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 바로 그 순간만큼은 그게 틀린 선택일 리 없으니까.  



*프랑수아즈 사강의 <패배의 신호>에서 일부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인용한 광고 : 틴더, ‘틀린 선택은 없어’ 풀버전 (2022)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의 거리에서는 매일 공연이 펼쳐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