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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Mar 17. 2024

11월의 봄으로부터

너는 어떤 시를 쓰게 될까? 라는 애플의 물음에 답하다

2023년 11월, 지구 건너편의 시드니에서 찬란한 봄을 다시 돌려받았다. 시드니의 벚꽃이라는 선명한 보라색의 자카란다가 거리 곳곳에서 나를 반갑게 맞았다. 2014년 1월부터 6개월을 시드니에서 교환학생으로 살았으니 어떻게 보면 딱 10년 만의 방문이었다. 다시 찾은 그 곳에서, 고스란히 지난 10년과 나에게 일어난 변화들을 마주했다.


대학교 4학년, 원래는 교환학생을 갈 생각이 없었던 나는 주변의 친구들이 대부분 떠나는 걸 보고 떠밀리듯 결정을 내렸다. 지금과는 달리 세상과 여행에 열려 있지 않았던 그 때의 나에게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로 갈지부터가 커다란 고민이었다. 고민을 한 끝에 좁힌 선택지는 딱 3개였다. 미국, 영국, 호주. 눈치챘을 지 모르지만, 이 세 개 국가의 공통점은 그냥 ‘영어권’이라는 점이었다. 그 중 날씨가 가장 좋은 나라로, 신기한 동물들의 나라로 가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이 나를 호주 시드니로 이끌었다. 생애 처음으로 마주한 호주식 영어 발음은 끔찍할 정도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이내 그건 시드니의 풍경 아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뜨거운 태양 아래 몇 시간이고 앉아있을 수 있는 사람들의 생명력과 바다의 무한한 푸르름, 새들의 날갯짓을 사랑하게 되었다. 시드니는 다양한 색깔과 소리, 생명체들을 통해 온 몸으로 자유라는 단어를 이야기했다. 바다와 하늘로 둘러싸인 오페라하우스에 처음 방문한 날, 그 환희에 찬 풍경을 사랑하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것임을 알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있음을 만끽했던 그 때의 나를 사랑했다. 유독 지금까지 대학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 건 그 시절의 나는 꿈과 자유가 넘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온전히 나일 수 있었던 그 시절, 내게는 무언가를 이뤄내고 무엇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결과는 오로지 내 몫의 노력에만 비례하고, 그 과정에서 변수가 끼어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뻔뻔스러운 믿음이 있었다. 배우고, 도전하고, 사랑하려는 갈증은 언제나 해소될 수 있었고, 운 좋게도 하고 싶은 일 역시 뚜렷하게 찾을 수 있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인문학 전공자로서 수많은 고민을 품고 있었던 시절, 한 수업과 그 교수님이 보여주셨던 광고는 지금까지 내가 걸어왔던 8년의 커리어를 만들어냈다.


‘수없이 던지는 질문들.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이 꼬리를 물고,

도시는 어리석은 이들로 가득하다.

아름다움을 어디에서 찾을까, 오 삶이여.

대답은 한 가지,

네가 바로 여기에 있고,

삶이 존재하고,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그럼 너는 어떤 시를 쓰게 될까?’

-왈트 휘트먼의 시를 인용한, iPad Air 광고 中


한때 애플의 수장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기술을 가장 인문학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사람이다. 광고 영상 속에서 각자의 아이패드는 눈 덮인 산에서 한 걸음 한 걸음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기도, 디제잉 씬에서 열기를 더하는 창작 도구가 되기도, 처음 만나는 수중 생태계와 신기한 곤충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카메라가 되기도 했다. 말하자면 ‘나만의 시’를 쓸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의 가장 인간적인 본질. 이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담아 매력적인 브랜드의 서사로 재해석하는 일. 그게 마케팅이고, 인문학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믿게 되었다. 이 한 편의 광고 덕분에 나는 What will your verse be? 라는 광고 속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수많은 노력 끝에 광고 업계의 드림 컴퍼니였던 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브랜드와 컨텐츠를 다루는 사람들 답게, 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가 사무실에 흘렀다. <더 랍스터>를 모든 팀원이 봤다는 걸 알았을 때. 콜드플레이 내한 콘서트에서 입사 동기들을 모조리 다 만났을 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개봉일에 보려고 휴가를 쓰는 사수와 일하게 되었을 때. 과연 이런 조직이 또 있을까 해서 신기했다. 꽤 오랫동안 나는 단순히 돈을 버는 직장인이 아닌,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직업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시드니에 다시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10년 동안 나는 정말 많이 변했구나’였던 이유는 뭐였을까. 지난 10년 사이 세상은 수없이 나를 흔들어 놓았고, 내게는 세상의 때가 많이 묻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사회는 어두운 세상의 모습을 드러냈으며, 회사는 가장 가까운 그 축소판이었다. 그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인생을 보는 눈이 조금 바뀌었다. 최근엔 자꾸만 무력감이 들었다. 조직의 환경이 바뀌면서, 그리고 클라이언트 내부적으로 수립해 놓은 방향성이 너무나도 좁아서,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자아 효능감을 도파민처럼 즐겼던 내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갔나. 마치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어 작년 일 년 내내 일기장 한 권을 빼곡히 채웠다. 니체는 운명과 대결할 때 자신을 보다 강한 존재로 고양시킬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계속 지기만 했다.


김신지 작가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만나게 된 한 문장을 곱씹었다.

‘자신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가지는 당당함. 사전에서는 긍지를 이렇게 말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긍지를 잃어갔던 건 조직이 요구하는 것에 함몰되어 나에 대한 믿음보다 의심을 키워갔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내가 사회의 무게에 눌려 잃어버렸던 건 일에 대한 열정 뿐만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자, 내가 나로 살아가겠다는 결정이었다. 카뮈는 ‘사랑받지 못하는 건 불운이나,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행’이라 했다.* 더 이상 내 일과 일터를 사랑할 수 없게 되니, 복잡한 마음만 끌어안은 채로 살게 되었다. 그런 마음에서 멀어지려고, 외면하려고, 책과 글로 도피하는 날들을 건너왔다.  


시드니의 봄은 그렇게 좌절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나를 건져 올려 다시 한번 기쁜 삶의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 곳에서 지낸 일주일 간 매일 새벽 같이 일어나 하늘과 바다를 눈에 담았다. 오페라하우스, 하이드파크, 달링하버, 본다이비치. 추억이 담긴 곳들을 찾아가 시간을 잊은 채로 안겨 있었다. 하버 브릿지 앞의 야외 테라스에 앉으면 갈매기들이 내 감자튀김을 함께 먹었다. 갈매기가 테이블을 조심스럽게 간택해 맹렬하게 습격하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웃으며 말을 건넨다. 결국 그 유쾌한 찰나의 순간을 수용해 사람들에게 조화롭게 섞여들 수 밖에 없다. 어디로든 떠돌게 만드는 시드니의 밤 풍경은 로맨틱 그 자체였고, 페리에 올라타 바다를 가로지르면 오페라하우스를 360도의 모든 시야에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동양인이 아닌 사람들은 대체로 사진을 못 찍는 편인데 그걸 알면서도 내 운을 시험했다. 수평도 안 맞고 비율도 짜리몽땅한 그 사진들은 그 날 하루치 웃음이 다 쏟아져내리게 만들었다.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UNSW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일을 시작한 이래로 한동안 세계 여행에 미쳐 살았는데, 그래서인지 이상하게도 10년 전 무척 넓어 보였던 대학은 꽤나 작아 보였다. 처음 왔을 때는 강의실을 못 찾아 한참 헤맸던 기억이 나는데. 머리가 커버린 걸까, 그리고 시야가 그만큼 넓어진 걸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많이 보이게 된 건 과연 축복일까 불행일까.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그 시절 갖고 있던 꿈들에 대해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발자국을 남겼다. 10년 전에 그랬듯이 공원의 잔디밭에도 누워 봤다. 다시 만난 시드니의 청명한 하늘이 물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던 2014년의 너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그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 때의 해맑았던 나도 좋아하지만, 지금의 더 깊어진 나도 사랑한다고. 내면은 많이 복잡해졌지만 다룰 줄 아는 지혜도 생겼으니까. 그러자 하늘은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럼 그걸로 됐어,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가능할 거야.


결국, 어떤 환경에 놓여 있더라도 매 순간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아내는 건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11월의 시드니가 내게 봄을 다시 돌려주었듯이, 언제나 봄을 살아내겠다는 의지를 갖고 살아갈 때 내 이야기는 기쁨으로 가득 찰 것이다. 2024년 봄의 시작과 함께 6년간 몸담았던 2번째 회사를 나와 3번째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든 사람들을 남겨두고 나온 건 슬펐지만, 많은 추억을 갖고 함께 자라 온 나와 잘 어울리는 한 브랜드를 맡게 되어 기쁘다. 인생이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와도 유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훌쩍 떠날 수도 있는 것. 그리고 모든 순간에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 이게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이자, 어른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언제나 다시 일어설 봄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이는 내가 견고히 구축한 세계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이다. 바야흐로 완연한 봄이다. 앞으로도, 언제나,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이 세상은 내게 봄을 다시 선물할 것이다. 그렇게 매순간 봄을 살아낼 나는 자유로울 것이다.



*김신지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에서 일부 표현을 인용해 재구성한 문장들입니다.

*인용한 광고 : 애플 아이패드 에어 '시'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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