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확신을 사랑했다. 망설이지 않는 태도, 단단해 보이는 말투,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보증수표 같은 사람들. 그것이 곧 ‘선’의 세계이자 ‘승자’의 세계라고 믿었다.
그 시절의 내게 있어서 ‘성실함’과 ‘성공’은 같은 방향으로 자라는 줄기였다. 그 길 위에서 달리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승과 패, 그 사이에는 넘어갈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있었고, 그 질서는 뒤집히지 않는 진실처럼 보였다. 우아한지 천박한지 알 수 없는 성 안에 스스로를 가둔 나. 그런 나를 꺼내 세상의 다른 모습들을 가르쳐준 건 대학시절에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된 아이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신문방송학을 복수 전공했다. 그중 신문방송학 수업들은 한 학기에 한 수업당 세 번의 조발표가 기본처럼 따라붙었다. 대학시절의 조모임은 팀원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 굉장한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도망간 자들을 쫓는 ‘추노’ 역할을 반복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신뢰는 빠르게 마모되어 갔다.
바로 그 시점에 처음 알게 된 영인은, 내가 살아오며 본 사람들 중 가장 눈에 띄게 예뻤다. 그 시절 가장 인기 있던 아이돌 그룹에서도 가장 예쁘다고 인정받던 멤버를 닮은 외모, 과감하게 탈색한 생머리, 어떤 스타일이든 잘 소화했지만 대학 과잠바만 대충 걸친 모습조차 묘하게 남았던 기억. 그녀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같은 조에 배정되어 그녀를 처음 마주한 몇 초 동안, 나는 상상했다. 저렇게 눈부신 아이를 친구로 두면 어떤 기분일까.
그 이후 나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어떤 유형’에 먼저 끼워 맞추고 있었다. 외모와 애교를 무기로, 유능한 선배들 곁에 머무르며 필요한 것을 영리하게 얻어내는 아이. 그건 성실이라기보다 ‘꼼수’에 가까워 보였다. 그녀가 과에서 절친했던 여자 동기들과 관계가 틀어졌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도, 그 복잡한 맥락을 충분히 상상하려 하지 않았다. 몇 주간의 관찰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꽤 그럴듯했다. ‘예쁜 아이는 애정의 대상이자 동시에 미움의 표적이 되기 마련이라는 것.’ 학기가 끝나고 나서는 더 깊이 알 필요가 없다는 판단 아래 그녀와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었다. 그 선택이 옳다고 믿을 수 있었던 건 오직 그때의 내가 가진 편협함 때문이었다.
나는 가고 싶었던 업계, 특히 내 드림 컴퍼니였던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나름대로 철저한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각종 공모전 수상과 높은 학점, 꽤 괜찮은 영어 점수, 정보성 블로그 운영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이 온전히 의미 있는 노력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시절엔 그런 것들이 내 가치를 증명해줄 거라 믿고 있었다.
졸업 전에 취업이 확정되어 수업에 나가지 않게 되었을 무렵, 영인은 자기가 쓴 자소서를 첨삭해달라며 내게 연락을 해왔다. 우습게도 그 때 내가 느꼈던 건 거부감이 아니었다. 대신 ‘저렇게 예쁜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감각이 나를 잠시 다른 높이에 올려두었다. 누군가의 아름다움은 타인의 능력을 드러내는 거울처럼 작동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체감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감정은 나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에 가까웠다. 나는 이미 어느 정도 성공의 궤도에 올라섰다고 믿고 있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에서 묘한 우월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녀의 자소서를 봐주겠다고 한 건, 순수한 호의라기보다는, ‘잘 나가는’ 그녀의 세계에 슬쩍 발을 들여놓아 보고 싶다는 호기심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영인은 결국 원하는 회사들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후 우리는 급격하게 친해졌다. 취업 결과를 두고 길게 위로를 건넨 것도 아니었고, 극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고, 별다를 것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그녀와 가까워질수록, 내가 그녀에 대해 준비해 두었던 설명들은 자주 빗나갔다. 그녀는 나를 따라다니고 싶다며 여름 휴가 때의 유럽 여행에 2년 연속으로 동행했는데 함께 있는 시간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 평온함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왜 나는 이 애를 이렇게 오래 오해하고 있었을까.
“너랑 만나고 있으면 마음이 진짜 편해.”
영인에게는 순수하게 사람을 믿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보다 훨씬 더 솔직하고 연약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인이 중학교 시절 왕따를 당했다는 무거운 고백, 어머니가 그 시절 그런 그녀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셨다며 내 앞에서 울었을 때. 대학시절, 헤어진 남자친구의 스토킹 때문에 휴학을 해야만 했던 속사정을 털어놓았을 때. 그리고 그런 아픈 일들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고 똑바로 서 있는 지금의 모습이 내 눈앞에 겹쳐졌을 때. 그제서야 이해했다. 그녀가 지나온 시간들이 단순히 ‘구설수에 오를 만큼 화려했던 시절’이 아니라, 부서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무엇보다 그 이야기들은 단순히 그녀가 공감받기 위해서 꺼낸 게 아니라, 내 실패를 감싸 안아주기 위해 나온 것들이라 나를 울게 했다. 내 세계는 그때 처음으로 뒤집어졌다. 나는 늘 넘어지지 않는 쪽을 택하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넘어져본 사람만의 성숙하고 단단한 균형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 내가 믿어왔던 승자와 패자의 경계는 더 이상 또렷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렇게 분명한 선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영인은 자신의 외모가 만들어내는 시선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세계가 궁금해졌던 나는, 어느 시기 그녀와 함께 어두운 유흥의 공간들을 오갔다. 주말마다 클럽이나 라운지 바에 가서 비트가 강한 음악을 들으며 춤추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 시간들. 내게 그것은 어디까지나 허영에 가까운 체험이었다. 잠시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놀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반면, 영인이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은 조금 달랐다. 그것은 단순히 떠들고 노는 사교 생활이 아니라, 세상의 규칙을 먼저 읽어낸 사람의 태도에 가까웠다. 대학 시절에도, 사회에 나와서도, 그녀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우호적인 얼굴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갈 줄 알았다. 영인은 회사에서도 자신의 상사가 담배를 피러 나갈 때 따라가서 말동무가 되어줬고, 스쳐 지나갔던 대학 선배를 붙잡고 이직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때 나는 그런 태도를 ‘정치적’이라고 생각했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마음이 먼저였다.
지금의 나는 그것이 일종의 생존 언어였다는 걸 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자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았다. 사회가 가끔 여성에게 요구하는 모순된 두 가지- 눈에 띄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지나치게 눈에 띄면 그 품위를 의심받는 것- 영인은 영리하게 딱 그 중간에서 균형을 지킬 줄 알았다. 영인의 태도는 누군가를 속이거나 이용하는 방식이라기보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살아남기 위한 세련된 감각에 가까웠다.
“져주는 게 이기는 거야, 정민아.”
무엇보다 내가 닮고 싶었던 건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였다. 그녀는 만나고 있는 사람이나, 전에 만났던 그 누구에 대해서도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가끔 내게도 쓴소리를 하며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줬다. 돌이켜보면 그 쓴소리들은 친구에 대한 애정에 가장 가까운 언어였다.
지금 영인은 꽤 영향력 있는 스타트업의 대표와 결혼해,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들의 연애 시절 6년을 지켜봤다. 그녀의 연인은 20대 중반에 회사를 창업한 뒤, 삶의 대부분을 일에만 쏟아붓는 사람이었다. 때때로 나는 주말에도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내지 않고 일만 하는 그를, 혹은 외로움을 내색하지 않으며 그의 곁을 지키는 내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곧 그녀가 관계 안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인은 상대를 신뢰하며 전적으로 그의 편이 되어주는 동시에, 생각의 방향이 다를 때면 분명한 언어로 이야기하며 타협점을 이끌어낼 줄 알았다. 그녀에게는 원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이끄는 부드러운 힘이 있었다. 모두 내가 30대가 되어서야 몸으로 배운 삶의 기술과 지혜들을 그녀는 20대 때부터 이미 갖고 있었다.
영인은 늘 나의 기준 밖에서 이미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불안정한 세상을 지혜롭게 통과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완벽해지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조건과 상처를 인식하고 필요할 때는 밖에서 부족한 걸 채워가며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그런 그녀를 존경한다.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기까지 이렇게 많은 단순함을 버려야 했다는 사실이 나를 이전과는 조금 다른 세계로 데려왔다. 서서히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덜 조급하게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승자’의 성 안에 머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곳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밀어내야만 유지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먼저 내 기준부터 의심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게 내가 늦게서야 배운 진정한 어른의 의미다.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캐릭터 설정의 레퍼런스로 삼았습니다.
*친구의 이름은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