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교복을 입고 싶어서, 집에서 1시간이나 멀리 떨어진 외고에 진학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해할까. 그 시절 대부분의 교복은 남색과 회색이었다. 그중 브라운 자켓과 베이지와 진갈색이 교차하는 체크 패턴의 치마는 단연 돋보였다. 그 패턴은 마치 버버리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세련되어 보였다. 흑갈색의 니트 조끼에는 두 가지 톤의 아가일 무늬가 입혀져 감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복으로는 흰 셔츠에 빨간 체크 리본을 달아 채도 높은 버건디색의 체크 치마와 함께 입었다. 정식 입학 전에 비비크림과 맑은 틴트까지 살짝 바르고 그 교복을 입어봤는데 마치 내가 하이틴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아 기대감에 부풀었다. 사실 특목고라는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싶다거나, 남들은 글자도 잘 읽지 못하는 유니크한 외국어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은 전혀 없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절이겠지만, 교복의 생동감 있는 색깔들로 팔레트를 채우면 비비드한 원색은 아니더라도 맑은 파스텔 컬러까지는 덧칠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내가 입은 교복의 풍성한 색깔들과 달리, 나라는 아이는 여전히 무채색이었다. 중학교에서 공부로 날고 기었던 아이들 사이에서 내 존재감은 닭 떼 속에 섞여 있는 학은커녕, 날아보지도 못한 채로 땅에만 붙어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공부로 주인공이 되어 보지도 못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표류했던 그 시절의 나를 사랑하지도 못했다. 나는 인기 많고 잘 나가는 예쁜 아이들 측에도, 주도적으로 자기 진로를 개척했던 진취적인 아이들 틈에도 끼지 못하는 어중간한 아이였다. 여름 방학 때 영국 어학연수를 같이 가서 백인들 앞에서 화려한 노래 실력을 뽐냈던 친구. 영자 신문 동아리 편집장이 되어 청춘의 열정을 불태웠던 친구. 그런 기억들은 아직까지도 유독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건 그 시절 반짝반짝 빛을 발했던 아이들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내 날갯짓을 자꾸만 일깨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미성년 시절의 나는 반골 기질이 가득했다. 수업을 잘 듣지 않고 뒤에 있는 스탠딩 책상으로 나가 머리카락 사이로 유선 이어폰을 몰래 낀 채 다른 공부를 했다. 하교 길엔 운동화로 갈아 신기가 싫어서 종종 핑크색의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고 운동장에 나가다 선생님한테 걸려 혼났던 반면, 친구와 함께 야간자율학습은 1등으로 튀어 PC방이나 노래방에 갔다. 그러던 고3의 어느 날, 시험 공포증과 함께 지독한 불면증이 찾아왔다.
아이들은 조금 더 쉽게 용서하고 잊어버린다는 말은 내게는 성립되지 않았다. 거의 일 년 내내 편두통을 겪었고 자주 결석했다. 담임 선생이라는 남자는 고3이라는 특수한 시기에 잘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을 공개적으로 희화화해 바보로 만들어버렸다. 첫 번째 수능 시험을 완전히 망쳐버렸던 해의 성적 발표일에, 담임은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성적표를 펼쳐 놓고 얘는 재수해야 한다며 신나게 비웃었다고 한다. 그건 누군가의 실패를 즐기는 듯한 웃음이었을까. 아름답게 비행하지 못했던 나와 대조되게 그의 입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엄마는 일을 하는 바쁜 와중에도 몰래 그를 찾아가 내 사례를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며 정중히 부탁했다고 한다. 이제는 나 역시 그 시절 그의 나이에 가까워졌고 두꺼운 시간의 겹이 완충제로 쌓였지만, 내 머릿속에서 그는 더더욱 용서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우리들은 A부터 E까지 알파벳으로 등급이 매겨진 닭장 같은 자습실에 성적순으로 나뉘어 야간 자습을 했다. 그 시절, 자습실 배정 하나로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흔들렸던 우리들을 떠올리면 우리나라 입시가 얼마나 잔인했던가 싶다. 나는 아직까지도 가끔 수능을 망치는 꿈을 꾸다가 깬다. 아직도 무의식에서는 그 시절을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했나 보다.
허락된다면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초여름 천변
흔들리는 커다란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면서
그 영혼의 주파수에 맞출
내 영혼이 부서졌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에 대해서*
2.
집 앞의 공원에서 지하철 역사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어떤 새가 그 앞의 유리창에 부딪혀 추락하는 걸 본 적이 있어. 날이 좋은 날 볕에 취해 제대로 보지 못한 걸까, 아니면 표면적인 투명함을 그대로 믿을 만큼 순진했던 걸까. 기절한 새는 내 발 바로 밑의 에스컬레이터에 떨어져 나와 함께 실려 내려갔어. 사람과 새가 함께 그걸 타고 내려갔던 경험이 너무 기괴했기에 그 잔상을 선명히 기억해. 그 경험을 떠올리면, 인생도 종종 그런 순간들의 연속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종종 너무 무심히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나아가. 그럴 때마다 어떤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우리를 깨우고, 되돌아보게 만들어.
나 역시 그랬던 것 같아. 세상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게 너무 짜릿해서 곁의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못했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나는 조금씩 날아갔으니까. 꿈, 사랑, 우정, 성공, 세계 여행, 좋은 대학, 좋은 회사, 좋은 친구들. 20대의 나는 이 모든 걸 가졌어. 어린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불안해했지만, 성년이 된 순간부터는 내가 원하는 삶을 조금씩 찾아갔어. 한편, 입시 시절을 함께 견뎌낸 10여 명의 친구들. 너희들은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조금씩 흩어졌어. 그 길이 반드시 빛나는 것만은 아니었어. 특히 S대에 들어간 너는 끊임없이 방황했어. 행정고시를 준비한다더니 잘 안되어 2년간 잠수를 탔었고, 20대에 거의 끊임없이 연애를 했던 나와 달리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걸 택했어.
나는 그런 너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했어.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봐서 나이브한 환상을 갖고 있는 걸 보며. 작년까지도 돈을 벌지 않고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고 있던 모습을 보며. 네가 너무 세상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런 널 만나면 내 이야기를 온전히 공감받기가 어려웠어.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들을 조금 더 가까이하게 되었어. 사실은 그런 네 모습이 내가 벗어냈던, 방황하던 잿빛 시절이기도 했기에 스스로에게 열등감을 느꼈던 걸까.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계로 나아가는 30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네가 아직도 미성년 시절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 모든 편견이 깨져버린 건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어.
너는 마음에 드는 남자와 4번이나 데이트를 했는데 고백을 받지 못했고 더 이상의 연락이 오지 않는다며 괴로워하고 있었어. 친구들과의 대화에도 집중을 못 하고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던 너. 30대가 되어서도 이성으로 인해 이 정도로 심한 감정 소모를 하고 누군가에게 깊이 빠져 있는 널 보며 이상한 기분을 느꼈어. 나도 분명 너처럼 그럴 때가 있었는데. 왜 이렇게 감정에 무뎌진 걸까. 그 다음 주에 그에게 완전히 차였다며 너는 나를 다시 불러냈어. 아무 생각 없이 그동안 궁금했던 걸 물어보기 시작했어.
네가 이렇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거 처음 본 거 같아.
예전엔 연애에 너무 관심이 없어 보여서 그런 얘기는 잘 꺼내지도 못하고 다른 친구들한테만 했었어.
예전엔 왜 그랬던 거야?
세상과 스스로를 단절하는 듯 매일 쓰고 다녔던 두꺼운 뿔테 안경, 성적이 안 나올 때마다 유독 예민하게 굴었던 모습. 사실은 고등학교 때부터 네 얼굴을 볼 때마다 내면 깊은 곳에 그림자가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건 추측이었을 뿐이었지, 그게 얼마나 큰 고통을 숨기고 있는지 알게 된 건 그때였어. 너는 차분한 목소리로 비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어. 그 이야기는 곧 내 마음을 미어지게 했어.
누군가를 사랑할 여력이 없었어.
아빠가 가정을 제대로 책임진 적 없었어.
중학교 때 엄마가 자살하려고 뛰어내리려는 걸 봤어.
넥타이로 목을 매려고 한 적도 있었어.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 울면서 지켜보기만 했어.
그렇게 자라서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 걸 두려워했던 것 같아.
네가 사랑을 두려워했던 이유를 들었을 때, 내 가슴 속에서 뭔가가 움켜잡힌 듯한 기분이 들었어.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친구로 지냈지만, 이런 깊은 사정을 들은 건 처음이었어.
나 고등학교 때 공부만 했잖아.
내가 공부를 잘하면 집안 분위기가 괜찮았거든.
그래서 기를 쓰고 공부했어.
엄마는 나만 바라봤어.
세월에 대한 보상을 나로서 받으려 했던 것 같아.
엄마는 내가 5급 공무원이나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어.
그 옥죄었던 기대 속에서 원했던 대학에 들어가니까 오히려 길을 잃은 것 같아서 공부를 안 하고 몰래 시간을 때웠어.
그동안 미숙했던 건 네가 아니라 오히려 나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네가 느꼈을 어둠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내가 얼마나 편협하게만 생각했는지 떠올리며 왈칵 울어버렸어. 그동안 온전히 너를 이해하지 못했던 걸 후회했어. 네 모습 뒤에 숨겨진 깊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간과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울자, 너도 울었어. 네가 고시 합격에 실패해서 2년 동안 잠수를 탔을 때 내가 얼마나 걱정했고, 관계로부터 도망 다녔던 너에게 얼마나 큰 배신감을 느꼈었는지 이야기했어. 그 퍼즐이 이제서야 맞춰지는 듯 했어.
그러다가 나 역시 내가 안고 살아갔던 아픔들을 들려주기 시작했어.
5년 전에 언니가 마음의 병이 생긴 적이 있어.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어.
그녀가 삶과 화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많은 대화를 했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어.
끝까지 곁에 있으려고 노력했어.
그러다가 하루는 위협을 느꼈어.
집을 나가서 몇 주를 보냈어.
우리 가족은 그 이후로 언니를 만나지 못했어.
나, 한동안 언니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살았어.
본가에 갈 때마다 그 빈 자리를 보면서 대체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화해를 할 수는 있는 걸까, 그런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고 있어.
그 시기에 안 좋은 일들이 유독 몰려서 찾아왔었어.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회사를 꿋꿋하게 계속 다닐 수 있었는지가 신기할 정도로 나 많이 아팠어.
네가 대충 알고 있는 사정들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자세히 들려준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교환했어. 그건 단순히 아픔의 공유가 아니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었어. 불온한 비밀을 나눈 공범처럼 우리는 함께 그곳에 있었어.
너와 함께 그 시간을 나누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받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 그렇게 긴 대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고요하고 연한 봄의 기운이 도는 듯했어.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3.
알을 깨고 태어나는 건 늘 어려웠다.
칠흑같이 검은 터널이 끝났다고 페이지를 넘기며 기뻐하자, 몇 개의 챕터 뒤에는 또 다른 어두운 터널들이 기다렸다.
아침이 오는 걸 의심했던 때가 있었다. 시린 기억들은 완전히 지워지지도 않았고, 보상받을 수도 없었다. 언젠가부터는 아픔에 익숙해져 내성이 생겨버린 내 모습에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 몫의 고통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각자의 부서진 세상을 끌어안고 살아갔다. 어딘가 고장 나버린 시절을 건너온 이들을 보면 무한한 애정을 느꼈고, 결국 그 곁에는 내 사랑이 맴돌았다. 그들이 다른 이들과의 교감 속에서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다면, 나 역시 연약한 그림자를 그 앞에 내려놓을 만큼 용기 내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슬픔 속에서 아름다움이 나타나는, 혹은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구원하는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한강 작가의 책을 7권이나 읽었던 것도, 그중 <희랍어 시간>을 가장 좋아했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녀의 문장들은 숨 막히는 감정들을 다루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숨이 막히게 아름다웠다.
'왜 그런 힘든 글을 자꾸 읽느냐'고 누군가 묻곤 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잔혹한 칼날처럼 다가올 수 있지만, 그 칼날을 삼킨 채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내면의 일면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세상 앞에서 겸손해지고 싶었다. 남들은 외면하는 삶을 조명하는 것. 그 고통에 닿게 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것. 그게 작가와 문학의 역할이라 믿었다.
내가 가장 어두웠을 때 나를 살린 것 역시 고스란히 곁을 지킨 사람들, 그리고 차마 언어화할 수 없던 내 상처 위에 포개어 덮어준 그들의 상처였다. 그 온화함으로 깨져버린 삶의 조각들을 주워 담아 정제된 상태로 다시 맞춰낼 수 있었다. 거짓말처럼 웃음이 다시 어둠을 지워내버렸다.
이제 그 희망의 빛을 좇아 내 안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 나 역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부지런히 읽고 공부한다. 삶은 때때로 내 편이 아닌 거친 모양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무수히 깨뜨려야 할 편견과, 부단히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발견하기에, 나는 삶을 긍정한다.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던,
가냘프고 부드러운 어린 새***가
나에게 날아와서 닿는 듯했다.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중 "피 흐르는 눈 3", 한강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중 "회복기의 노래", 한강
***가냘프고 부드러운 어린 새 : 한강 작가의 책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 요소,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