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완벽주의자>를 읽고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각자 나름대로의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그러다 지금까지 품어왔던 정답이 사실은 오답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도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 나의 인생 안에서도 정답은 계속 바뀌어 왔다.
내 경우에는 20대때까지는 ‘만인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지만,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날 좋아해야 한다는 게 그 때의 나에겐 꽤나 중요한 문제였다. 회사에서도 언제나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로 평가 받고 싶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의 좋은 점도 있다. 내 스스로가 상냥하고 친절한, 호감형 인간이 되어 버렸고, 어떤 어려운 일을 하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해내는 긍정적인 사람으로 평가를 받아왔으니.
그러다가 책을 읽어서 알게 되었는데 이게 바로 전형적인 ‘인정 추구형 완벽주의자’의 모습이더라. 책에 나온 설명은 대략 이러했다.
‘그들은 대개 친절하고 밝지만, 어딘가 모르게 묘한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당신은 그들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을 남에게 완전히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애쓰며 먼저 잘해주지만, 동시에 상처받는 상황에 놓이기 쉬운 유형이다.’
사실은 사람들의 인정을 잃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연기하는 것. 혹은 홀로 서지 못하고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기대는 것. 이게 바로 겉으로는 완벽하지만, 속으로는 부족한 나의 모습이었다.
내 생각의 오류를 깨닫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계기가 있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하다 보니 관계가 깊어지는 데에 있어 한계가 오는 순간들이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해서 나를 힘들게 했던 친구에게 ‘너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지 못한 채 맞춰 주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쌓여왔던 것들이 터져서 내가 일방적으로 그 관계를 끊어버렸고, 그 친구를 잃고 나서 후회를 했다. 갈등을 겪더라도, 혹은 내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더라도 솔직하게 얘기나 해볼걸.
다른 경우에는 내가 겪은 힘든 일을 친구들에게 진솔하게 털어놓지 못했다. 그 에피소드를 들려주기 위해서는 필히 나에게 결핍된 것, 나의 부족한 점, 아니면 나의 ‘못생긴 마음’에 대해서 세세하게 털어놔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갖고 있는 이상적인 나의 이미지를 굳이 깨뜨리지 말자고 다짐하며 말을 삼켰다.
회사에서는 윗사람의 가이드가 너무나도 절실했던 프로젝트를 혼자 한 적이 있는데, 그 부담감을 표현하지 못했다. 맡겨주신 만큼 온전히 내 힘으로 해내고 싶었는데 역부족이었기에 나에게 상처를 잔뜩 준 프로젝트가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부서 사람들은 내가 뭘 받아도 항상 해내는 사람으로 봤기에 나는 심각함을 깨달았다.
일련의 사건들 끝에서 깨달았다.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은 사실 절대로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완벽하게만 보였던 사람들은 실은 저마다의 고민과 불행, 극복하고 싶으나 고치기 힘든 단점을 하나씩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 세상 누구도 다른 사람들을 떠나 홀로 완벽하게 독립적인 상태로 살아갈 수 없었다. 사실은 모두가 부족한 면이 많기에, 다른 사람에게 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얻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먼저 내 부족한 점을 드러내고, 힘들었던 기억, 혹은 감정에 대해 털어놓으면 상대방도 반드시 그에 응하는 교감을 해줬다. 그들은 함부로 조언하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감춰왔던 자기 얘기를 내 이야기 위로 담담하게 꺼내서 안아줄 뿐이었다.
예전에 어떤 드라마에서 봤는데, 인디언에게 있어 친구의 의미는 ‘내 불행을 함께 지고 가는 존재’라고 한다. 완벽함을 끌어안고 혼자 울타리를 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약한 부분까지 드러내는 것.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좀 더 깊이 있게 소통하는 것. 때로는 악순환을 끊는 결단력까지 갖추는 것. 지금의 나는 이게 더 성숙하고 강인한 사람의 태도라는 것을 안다.
나의 사주는 ‘겨울의 작은 모닥불’이라고 한다. 따뜻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인복도 일복도 많다는 건데. 이런 나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 앞으로는 내 장점과 웃는 모습만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기꺼이 내 단점까지 내보이고 더욱 진솔하게 소통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행복한 완벽주의자들은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완벽주의라는 연을 날릴 때 강하게 연줄을 당겨야 할 때와 바람에 연을 맡기고 힘을 풀어야 할 때를 잘 아는 것이다.’ - <네 명의 완벽주의자>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