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 Sep 01. 2023

어느 소비요정의 고해성사

자본주의의 끝에서 교묘하게 소비를 조장하는 마케팅 전략 기획을 業으로 하고 있다. 현재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다면 다른 관점으로 틀어 갖고 싶게 만들고, 경쟁제품보다 별로로 보인다면 어떻게든 매력적인 포인트를 찾아내 더 나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내 일이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내 스스로가 소비 요정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연말정산 시즌엔 항상 똑같은 곡소리를 하게 되는데..! ‘진짜 이 돈을 다 썼다고?!’ 매년 2월, 나는 절약하지 못한 ‘죄인’이 된다. 웃프게도 올해 또 돈을 돌려받는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죄를 지은 걸까? 절약은 무조건적인 미덕이라 할 수 있는 걸까? 사실 나도 스크루지처럼 강박적으로 돈을 아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참 마음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절약은 좋은 습관인데 왜 내 마음이 힘들었냐고? 절약의 이유를 내가 아니라 남에게서 찾았으니까.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잘 해서 거액의 돈을 번 친구들과 비교했기 때문에. 이직으로 연봉을 30퍼센트나 띄운 친구를 부러워했기 때문에. 저만큼의 자산을 얼른 축적해야 하는데 하는 조급함으로 강박적인 절약을 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꽤 많은 것을 갖고 있었음에도, ‘마음이 가난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에게 맞는 소비와 절약의 중간 지대’는 과연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KT 부사장 신수정 씨는 자신의 저서 <일의 격>에서 이러한 생각을 전하고 있다.  

“어떤 삶을 살든 자신이 선택하여 사는 것이라면 괜찮은 것이다. 아이가 돈을 별로 못 버는데 고급만 찾아다녀서 큰일이라고 해도 잘 들어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부문에 최고를 경험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산다면 그것은 괜찮지 않다."


자신이 경제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소박하게 살거나, 남과의 비교의식으로 인해 과시하려고 사치하는 것, 둘 다 자유가 아니다.

이 글을 읽고 깨달은 건 어떤 것에 소비를 하고, 얼마나 저축을 하든 그것이 온전히 나다운 선택이여야 한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에 소비를 할지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명확히 확립해 놓고, 건강한 마음으로 소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나만의 소비 기준을 정립했다. 재미있는 건 아래에 적은 소비 기준은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고,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1. 새로운 경험에 투자하는 건 아까워하지 말자

  (해외여행, 뮤지컬, 콘서트, 페스티벌, 전시 등의 문화생활, 영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의 경험 등)

2. 나의 성장을 위한 물건이나 서비스에는 돈을 쓰자

(책, 북카페, 강의, 스터디, 지식 큐레이션 서비스, 독서모임 등)

3. 외식비는 되도록 아끼자

(나는 집밥을 많이 먹고, 술도 드물게 마시기 때문에 여기서 특히 많이 절약할 수 있다^^;)

4. 보여주기 위한 과시 목적의 소비는 하지 말자

(나는 명품에 관심이 없으며, 요즘은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아서 여기서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5. 저축분과 함께 부모님께 증여 받은 돈은 내 성격 상, 주식보다는 부동산에 투자하자

  (여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다..)


위의 기준들로 봤을 때 나는 다른 무엇보다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이며, a.k.a ‘호기심 천국 오픈마인더’였다. 그리고 특히 돈을 쓰는 분야는 ‘감각적 경험‘, ’감성적 휴식’, ‘성장과 성찰’ 이 3가지였다. 이처럼 소비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소비를 한다는 것은 인생에 대한 주관과 내 하루하루를 장악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부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힘이다’

<돈의 심리학>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과,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원치 않는 일과 사람은 피할 수 있게 하는 것. 사실 나한테 있어서도 부는 ‘목적’이기보다는 나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해주는 ‘수단’이다. 미래를 위해 현실적인 마인드는 갖추되, 돈에 얽매이지 않으며 매 순간 소소한 행복 역시 추구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만의 소비 기준에 따르며 잘 살아갈 것을 이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주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