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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Oct 01. 2023

무엇이, 어떤 사람이, 어떤 시간이 진짜인가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을 읽고

<크리스마스 타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맨 뒤에 있었던 김금희 작가의 말이다.   

“우리에게 겨울이 크리스마스가 있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무엇이, 어떤 사람이, 어떤 시간이 진짜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도 잃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것을 잃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그렇다면 지금의 나에게 크리스마스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생 동안 가장 기억에 넘는 크리스마스는 7살 무렵의 크리스마스이다. 아빠는 세일러문 다이어리가 갖고 싶다는 막내의 말에, 바로 내 눈 앞에서 세일러문 다이어리를 사다가 걸렸다.

“뭐야 왜 아빠가 그걸 사고 있어?” 산타의 정체를 딸에게 들킬 일생일대의 위기 속에서 아빠는 집에 와서 포장지를 바꿔 포장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나한테 걸렸다. 산타는 없단다.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가족은 매년 크리스마스 트리를 함께 장식했다. 우리 엄마는 빨간색, 초록색의 부직포로 만든 큰 양말을 트리에 매달아 밤 중에 몰래 그 안에 선물을 넣어서 주셨다. 그러면 아침에 깬 어린 자매가 두근거리며 양말을 열어봤다. 외숙모가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를 직접 구워서 가져오신 적도 있었다. 이런 추억들을 생각해 보면 꽤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것 같다.


그랬던 아이가 자라서 30대 초반의 여성이 되었다. 그런 내게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선물을 받는 마냥 들뜨는’ 날은 아니다. 이제 ‘무언가를 받는’ 나이가 아니라 ‘무언가를 챙겨줘야 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느끼기에.

친구들 중엔 벌써 아이의 엄마가 된 사람도 있다. 그들은 아이를 중심으로 살아간다. 육아를 하는 회사 선배들도 확실히 그렇다. 회사 일 때문에 밤을 샌 뒤, 바로 아이 유치원에 가서 산타 역할을 했다는 선배도 있다. 정말 극한 직업이다. 이 나이 대에 접어드니 직접 양말 안의 선물을 채워줘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런데 챙겨야 하는 건 아이 만은 아니다. 환갑이 넘은 부모님을 보면서도, 조부모님을 보면서도. 그리고 회사에서 시니어 라인에 접어든 위치를 보면서도. 슬프게도 책임감은 나날이 더 많아져 간다.


코로나가 터진 후 지난 몇 년 간 연말은 크리스마스 장식도 없이 어둡게 지나갔다.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마다 시끌벅적한 파티, 공연, 재즈바, 해외 여행을 뻔질나게 다녔던 내가 최근 몇 년 간은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연말의 풍경은 마음 상태에 따라 화려하고 아름다울 수도, 쓸쓸할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이제 모든 크리스마스가 특별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


다시 한 번 작가의 말을 인용해, “무엇이, 어떤 사람이, 어떤 시간이 진짜인가” 생각해보고, 내년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시즌. 그것이 어릴 때와 달리 들뜨지 만은 않는 연말의 풍경일 것이다. 내게 있어 크리스마스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좋다. 재미를 쫓았던 20대와 달리 안정감을 추구하는 온화한 어른이 되었다. 나 자신을 좀 더 잘 알게 되었고 공감 능력과 포용력도 커졌다. 좀 더 Fit한 느낌이다.

누구의 말에도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내 생각과 선택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 사색과 성찰을 많이 한다. 작년 연말에는 일기를 쓰며 1~12월까지 월 별 기억나는 키워드를 뽑아보았다. 성공의 기억도, 아픈 기억도 있었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모든 순간이 의미 있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같다.


상황과 함께 사람은 계속 변한다. <크리스마스 타일>의 모든 관계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인생을 항해하다 보면 관계가 끊어지기도 하고, 떠났던 사람이 먼 훗날 우연히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흐름에 맡겨 유연하게 살면서도 중심과 방향성은 잃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


앞으로의 크리스마스 풍경들도 그 나이의 내가 느끼는 것들로 잘 채워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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