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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eter 정민 Aug 04. 2023

멋진 신세계

당신의 취향과 요구를 파악해  

맞춤형 선택지를 추천하는

신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Brave New World에 방문해서

고객님이 물어보고 싶은 걸 챗GPT에 입력하고,

대화를 이어나가며 구체화하고 좁혀나가보세요

그럼 가장 완벽한 선택지가 나올테니까요!


2028년, 바야흐로 사람들은 멋진 신세계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게 되었다. Brave New World에 방문한 사람들은 함께 배치된 마법 지팡이를 그들의 관자놀이에 갖다댄 후, 그들의 생각을 실처럼 뽑아내 챗GPT의 투입구에 집어넣었다. 팡팡! 그러자 그들의 눈 앞에 놓인 커다란 모니터에는 수십 개의 옵션이 촤르륵 펼쳐졌다. 그 마법 같은 순간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원하는 것을 더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꼬리를 무는 대화를 몇 번 더 해서 선택지를 추리는 수고를 들여야 했다. 코인을 더 구입해 넣고 그 과정을 거치면 마침내 최적화된 한 두개의 베스트 옵션을 추천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추천해준 옵션들을 프린트해서 부적처럼 손에 꼭 쥐고 갔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 시대. 그 속에서 결정장애가 있거나, 불안하거나, 무언가를 추진하기에 너무 신중한 사람들은 이 기술을 매우 반겼다. 사람들은 이미 인공지능에 ‘자비스’, ‘사만다’ 등의 이름을 붙여 친근하게 부르고 있었고, 그들 자신이 내려야 할 결정을 인공지능에 위임하고 있었다.



Scene 1

‘이따가 홈파티를 할 건데 센스 있게 보이고 싶어. 인기 있는 파티용 음식들과 그 레시피를 리스트업 해줘’

‘그 중 한국 사람들이 한 번도 안 먹어봤을 만한 신기한 메뉴들로 추려줄래?’

최종적으로 5개 메뉴가 추려져 #5502812에게 제시되었다. 인공지능은 실제 대화하듯이 친절하게 레시피를 설명해줬다. 좋아 가보자고!!

3시간에 걸쳐 #5502812은 폭풍 같이 요리를 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도착하기 바로 직전, 그가 만든 음식들은 모두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이걸 네가 다 만들었다고?! 근데 이..이건 대체 어느나라 음식이야? 인공지능은 초심자로서의 그의 요리 실력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Scene 2

‘여성스러운 옷보다는 스포티한 옷이 잘 어울리는, 그리고 실제로도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을 소개시켜줘’

‘그 중에서 혹시 내 MBTI와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이 있을까?’

3명이 최종 후보로 #3279045에게 제시되었다. 그는 일주일에 걸쳐 그들을 모두 만나봤다. 놀랍게도, 그 3명 모두 이전에 그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들의 외모를 조합한 얼굴을 갖고 있었다. 응..? 우리 어디서 보지 않았나요? 심지어 그 중 한 사람은 #3279045의 전 여자친구와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똑같은 문장을 뱉어내서 그를 놀래켰다. 아니 이거 내 이전 연애 데이터를 조합해서 이런 사람들이 나오는 건가?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고, 그 누구를 만나봐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Scene 3

‘나와 비슷한 커리어 경력, 그리고 비슷한 소득 수준을 갖고 있는 그룹의 사람들이 퇴직 이후 어떻게 돈을 버는지 분석해줘’

‘그 중 내향형 인간이 해볼 만한 안전한 선택지는 뭐야?’

여러 개의 질문을 거쳐 마침내 1개의 옵션만이 남았다. 이거 근데 내가 진짜 몰입해서 할 수 있는 일일까? #1700397은 고민했지만,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사업을 준비하면 할수록 기분이 이상했다. 그녀에게는 예전부터 어렴풋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다른 일이 이미 있었다. 사업이 폭삭 망하더라도 그 길을 선택했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 생각이 너무 많아졌고 그 덕에 #1700397에게는 불면증이 생겼다.


Scene 4

‘각각의 옵션을 선택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시나리오로 써줘’

-삐, 코인을 더 넣어주세요. 코인을 더 넣어주세요



Brave New World! 과연 그 속에서 우리는 행복할까요?

앞의 예시에서 든 것처럼 인공지능이 가져다준 선택지들이 우리에게 ‘최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골라준 선택지들을 제외한다면, 우리에게 보여지지 못한, 배제된 수많은 가능성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인공지능은 앞으로 우리들의 삶에 더 깊이 침투할 것입니다. 인생이 예측 가능한 패턴과 통제로 가득해질 거라고 생각하면 꽤나 무서워집니다.


미래에는 당연해질 것인데, 괜히 지금의 제가 틀리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저는 기술로 실현하는 극도의 ‘효율’은 ‘예상치 못한 발견이 주는 즐거움’과 반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거에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후대에는 종종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어쩌면 미래의 사람들은 기술에 결정을 맡기지 않았던 과거의 저 같은 사람들을 보며 어리석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당연히 지금의 수준보다는 기술이 훨씬 발전하겠지만요.


그렇다면 기술의 흐름에 순응하지 않았을 때 인간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요?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참고하기 위해, 실제로 챗GPT에 아래 내용을 써봐 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데이터 기반으로 모든 걸 결정하는 세상에 회의감을 느끼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써줘’

그리고 아래 문구는 챗GPT와 제가 공동 집필한 소설의 주인공이 한 말입니다.

"이 세상은 숫자와 규칙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야. 내 안에는 더 큰 힘이 있어. 이를 통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어."

조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꽤나 인사이트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직관에 따르는 삶의 태도. 그리고 획일적이지 않은 다채로운 인생의 항로. 이것이 바로 불확실성을 마주할 수 있는 인간의 힘이자, 권리가 아닐까 합니다.

 

비록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처럼 모두가 잘 살고, 안전하고, 병을 앓지 않고, 불편한 감정을 느낄 일이 전혀 없는 세상은 아니더라도. 우리들은 불완전하기에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아닌, 마음이 끌리는 대로 선택하고, 때로는 실패하며 불행해질 권리가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길을 기웃거려보며 마침내 자신이 선택해서 걸어간 길이 차츰차츰 좁아지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Brave New World에 방문하신 여러분!

그럼 오늘 이후로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드리죠! 굿 모닝 굿 애프터눈 굿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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