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잘알도 따로 재테크 공부해야하는 이유
처음 본 상대방이 내가 금융권에 재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항상 " 와~ 재테크는 잘 하시겠어요?"라고 묻는다. 내가 재테크를 또래보다 빨리 시작하기도 했고, 운도 따라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더더욱 "네가 금융권에서 일했기 때문에 재테크도 잘 했나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우리 회사에서 RA 등으로 일하는 대학생들 중 금융권 취업을 희망한다는 친구들과 대화해보면 "금융권에서 일하면 재테크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도 많다. 이런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아마도 "금융권에서 일하면 재테크를 잘 할 것이다"라는 가정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지금 금융권에서 10년 재직한 나의 생각은 어떨까?
자산을 잘 관리하는 사람에 한해 매우 유리하다
금융권에서 근무하는 경험은 재테크나 투자에 있어 분명 어드밴티지가 있다. 업무때문이라도 지속적으로 경제에 대한 관심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정도 근무하면서 이래저래 다양한 케이스를 본 결과, 자기 자산을 잘 굴리는 거랑 금융권에 종사하는 것이 반드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자기 자산에 관심이 있고 이를 잘 불리고 싶은 사람들은 금융권에 종사하면서 상식도 넓혀나가고, 시장사이클에 대해 모니터링도 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십분 활용한다. 돈을 원래도 좋아하고 관심도 있는데 회사에서 아무튼 하루종일 돈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는 것이니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분명 간접적으로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기 자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회사 일은 정말 정교하고 훌륭하게 처리하면서도 자신의 자산을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잘 방어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내 생각에 회사 일을 처리하는 방과 자신의 자산을 관리하는 방이 아마 머릿 속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런 분들에게는 금융권 종사가 큰 어드밴티지는 아닌 것이다.
금융권 종사의 어드밴티지는 무엇일까?
일단 위에서 언급한 대로 업무때문이라도 지속적으로 경제에 대한 관심을 놓을 수 없다는 점이 장점이다. 회사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뉴스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시장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블룸버그나 인포맥스를 매 분마다 확인해야 하는 때도 있다. 또는 긴 호흡으로 시장이나 실물경제를 보는 부서에 가서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우리 경제에 대한 인사이트를 키울 수도 있다. 때로는 다양한 시장참가자를 만나서 다른 각도에서 시장을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도 얻는다. 특히 종종 실물 분야에 종사하는 업종 관계자를 만날 기회도 생기는데 이를 통해 산업전망에 대한 rough하지만 비교적 정확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이런 시간이 쌓여가면 나도 모르게 내가 자주 보는 지표, 자주 보는 경제지, 칼럼 등 나만의 정보 확보 route도 생기고, 나만의 시장을 보는 인사이트가 생긴다. 이런 경험들은 분명 투자에 큰 도움이 된다.
또 주변에 아무래도 돈에 관심이 많은 동료들이 많으니 관련된 대화를 많이 하게 되고 이 덕에 자연스럽게 투자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돈의 흐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직업안정성, 높은 연봉 때문에 선택하는 경우도 대다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상당히 많은 수가 시장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기회를 보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중 일부는 끊임없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그런 정보를 공유해준다.
예를 들어 전의 글에서도 썼듯이 내 친한 회사 동료가 SK바이오팜 공모주 청약을 해보라고 추천해줘서 나도 공모주 투자를 시작하게 됐었고, 아파트 분양 역시 예전 팀장님이 청약이라는 제도를 활용해보라고 알려주셔서 청약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정도 정보는 금융권에 굳이 재직하지 않아도 본인이 재테크에 관심이 많거나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있거나 경제신문이라도 꾸준히 읽어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긴 하다. 그래도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이런 대화를 나누는 비중이 더 높은거 같긴 하다.
경제나 경영을 전공하면 재테크에 유리할까?
나는 사실 영문학 전공자이지만 회계사가 되고 싶어서 학교에서 재무회계, 세무회계, 미시경제학 정도 수강하고 학원 다니면서 공부한 케이스이다. 회계사 공부 1년 3개월 가량 하다가 지금 직장에 합격해서 회계사 시험은 더이상 응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법, 재무관리, 재무회계, 원가관리회계, 경제학, 경영학, 상법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있었고 지금까지도 업무는 물론 나의 개인적인 투자에도 아주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근데 그럼 나처럼 관련 과목을 수강하지 않은 사람은 주식이나 부동산, 기타 재테크를 하기 어려울까? 그건 절대로 아니다. 돈에 관심이 있고, 돈의 흐름을 잘 캐치하는 사람은 무슨 전공을 했든 그리고 최종 학력이 무엇이든 결국에 자신의 자산을 불리기 위해 알아야 할 내용은 다 알고 있다. 또는 자기가 모른다면 그것을 아는 사람을 귀신같이 잘 찾아서 자문을 구해서 투자를 잘 한다. 만약에 내가 관련 내용을 모른다면 그냥 그걸 공부하기보다는 내 본업에 충실하고 그걸 잘 아는 사람과 상의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첨언을 하자면 나중에 자산규모가 불어나기 시작하면 법 관련 지식이 있는 것이 오히려 어줍잖은 상경계 지식보다 도움이 많이 될 수 있다. 경영대에서 세법이나 상법을 가르치니 이런 과목들은 재미가 없더라도 수강해두는게 좋다. 특히 세법은 나중에 부동산 매매나 하다못해 연말정산때라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대학생이라면 지루하더라도 꼭 수강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들은풍월이 있으면 "어? 이런 때 이런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데?"라는 조금의 감이 생긴다. 그리고 세법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나는1가구 2주택 한시적 비과세 규정을 잘못 이해해서 억단위의 돈을 양도세와 가산세로 내신 분을 안다. 그 분의 케이스는 며칠만 매수일을 조정했다면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원하는 평형대의 급매가 나왔다는 이유로 성급하게 매수를 했다가 큰 돈을 손해보게 되었다. 매수 전에 세무사와 상의했더라면 아마도 몇 억의 돈을 손해보진 않으셨을 것이다.
금융권 재직이 불리한 점도 있다?
금융권에 따라 다르지만 자신이 리서치를 담당하거나 투자를 담당하는 기업에는 투자를 할 수 없게 하는 회사가 있다. 가족, 배우자 명의로까지 해당 산업이나 기업에 투자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또는 아예 기업이나 산업에 관계없이 모든 상장주식에 대한 투자의 횟수를 분기 내에 몇 번으로 제한하거나, 절대 금지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front running, 즉 선행매매를 금지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내가 삼성전자에 대해 매수의견을 내기 전에 삼성전자를 대량 매수하는 등, 사전에 입수한 주식 관련 정보를 통해 정상 거래가 이뤄지기 전에 미리 주식을 매수도 하여 차액을 챙기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건 자본시장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지만 개인으로서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 시중은행같은 경우에는 직원들이 임대사업자를 내는 것을 금지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경업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상가나 오피스텔, 다세대주택, 고시원 등에 투자를 할 때 절세를 위해 임대사업자 제도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세후수익률이 결국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자신이 종사하는 직종에 따라 이런 제약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오히려 아는것이 병인 경우도 정말 많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본 케이스인데 이런 가능성, 저런 가능성을 지나치게 많이 재다가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자산가격의 폭락에 큰 두려움을 가지고 리스크테이킹을 못해서 좋은 투자안을 놓치는 분들을 많이 봤다. 본인이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독이 된 것이다.
투자나 재테크를 잘 하고 싶어서 금융권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진로를 고민하는 20대 친구들이 나에게 "저는 투자나 재테크를 잘 하고 싶어서 금융권을 희망해요"라고 말하면 나는 다시 생각해보라고 한다.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걸 여태 살면서 많이 봤기 때문이다.
물론 10년간 재직해본 결과 금융권 직장은 좋은 옵션임에는 틀림없다. 내 자녀가 금융권에 재직하고 싶다고 하면 굳이 반대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투자의 측면에서만 보면 오히려 최근 성장하는 산업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좋은 기회를 많이 잡을 수 있다. 자신이 그 업종에서 일하다 보니 좋은 회사를 빨리 알아보고 주식이 쌀 때 투자할 수도 있고, 때로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가 ipo를 하면서 몇억의 돈을 만져볼 수 있는 기회도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field에서 일하기를 권하는 편이다. 특히 그 섹터가 앞으로 성장산업에 속한다면 더할나위없이 좋다.
재테크는 그냥 관심을 꾸준히 놓지 않는 것으로 족하다. 경제신문을 꾸준히 보고, 돈에 관심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피터 린치나 워런 버핏 같은 투자 guru들의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면서 해나가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 금융업이 적성이라면 모를까, 투자를 잘 하고 싶어서 나의 적성을 무시한채 금융업을 선택하는 과오를 범하지는 말자.
금융업에 종사하더라도 재테크는 따로 공부하자
금융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모두 재테크를 잘하지 않는 이유는 보통 관련지식은 많지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지식들이 반드시 실전 재테크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경잘알"(경제 잘 아는 사람)도 재테크는 따로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자신의 업무에 신경을 쓰는 총 시간의 5%만 할애해서 내 자산관리에도 신경써보면 어떨까? 회사에서 제공하는 시황정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동료들의 대화에도 귀를 쫑긋 해보자. 회사에서 발휘하는 엑셀 실력을 내 자산을 관리하는 엑셀을 구현하는 데다가 활용도 해보고 이를 월말에 한번씩 업데이트도 해보자. 회사에서 열람할 수 있는 경제 경영 재테크 관련 도서도 빌려다가 퇴근길에 읽어보자. 이미 우리에게는 기본기가 충분하기 때문에 약간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빠른 지름길로 경제적 자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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