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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예나 Aug 09. 2019

어느 날 밤, 죽는 게 무서웠다.

2019년 4월 어느 날의 일기장 ,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것에 대하여

<2019년 4월의 어느 날>


 달이 휘영청 떠오른 어느 날 밤, 갑자기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내일 당장 죽을 것 같다는 공포는 아니었다. 죽을 날짜를 받아 둔 것도, 몸에 위험한 증조가 생긴 것도 아니다. 그저 미래, 언젠가 찾아올 나의 죽음이 끔찍하게도 두려웠다. 


  23년,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이 쏜살 같이 느껴졌고, 앞으로의 시간도 그렇게 빠르게 지나갈 것이라고. 그리고 그 이후의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우리는 신문으로, 뉴스로 매일같이 낯선 사람들의 죽음에 대하여 듣지만, 사람들은 죽음, 죽음 이후를 언급하는 것도, 상상하는 것도 싫어한다. 죽음에 대하여 자주 말하는 곳은 그나마 종교일까.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함께했던 교회, 나의 산책 장소가 되어주는 불교의 법당은 나와 가까이 존재했지만. 그들이 말하는 사후세계는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세상이다.


 어린 시절 학교 앞에는 자주 병아리를 파는 노점이 열렸다.


 아마 농장에서 낙오되었을 그 가녀린 생명들은 과자 한 봉지 값도 채 되지 않는 푼돈에 반투명한 봉지에 담겨 조막만 한 손에 들려나갔다. 그렇게 팔려나간 대부분의 병아리들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는다.


 따뜻하고 몰랑했던 살덩어리는 딱딱하게 굳어 역한 시취를 풍기고. 윤이 나며 반들거리던 까만 눈은 탁하게 가라앉았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뇌리에 박혀있는 첫 죽음, 어린 시절의 나는 목숨을 잃은 병아리를 위해- 부디 저 세상에서는 행복하라고, 다음 생에는 행복하라고 빌어보았지만 그 '저 세상'이라는 것이, 다음 생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할까? 


 축 늘어진 병아리를 보며 나는 모든 신체가 작동을 멈춘 그때의 기분을 상상했다. 암흑, 아니 암흑이라는 것을 느낄 순 있을까. 촉감, 그리고 코를 타고 흐르는 공기의 느낌도 사라진 그곳. 그 미지의 공간에 한참을 몰입하던 나는, 이내 몸서리치며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마치 검고 질척한 늪의 바닥에 처박힌 것 같은 무력감과 공포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또 그 검은 늪에 잠겨간다. 사실 죽음은 누구나 두려운 것이지. 


 잊고 있었을 뿐이지만. 살아있다면 죽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두렵고. 


 하지만 나를 잠식해가는 이 감정은 이질적이다. 아니,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왜일까, 왜 갑자기 또 이렇게 두려운 걸까? 꾸준히 상담을 다니고, 매일 햇빛 아래서 산책을 하고, 명상을 하고, 오래된 친구와 떠들고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이제는 모든 게 괜찮아졌다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강아지가 크게 배앓이를 해 병원에 달려갔다 왔던 일 때문일까? 하지만 의사는 큰 문제가 없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이어지던 상념을 멈추고 감고 있던 눈을 벌떡 뜬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들어 죽음 불안에 대하여 검색했다. ...‘한국 노인의 죽음불안과 관련된 변인의 메타분석’ ‘암 병동 간호사의 죽음에 대한 인식’ 빠르게 화면을 넘겨가던 중 나의 시선을 잡아 끈 제목이 있었다.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이 성인의 죽음 불안, 영적 안녕 및 삶의 의미에 미치는 영향’ 


‘죽음 준비 교육’ 난 9페이지가 넘는 글을 단숨에 읽어 내렸다. 그리고 죽음 준비 교육에 대하여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피하고 싶은 죽음과 직면하라. 죽음이 두려우니 죽으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저 나의 삶을 기록하고 정리하며 늙어감, 약해짐, 죽음을 이해하고. 내가 바라는 아름다운 죽음을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상을 직면하고. 자신이 바라본 죽음을 거울삼아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바라보라는 그들의 이야기. 


 글을 읽어보며 고민하던 나는 유언장을 쓰기로 했다. 


 사실 버킷리스트 인생곡선 그리기 자서전 등 앞서 하도록 추천하는 사항이 있지만, 여러 가지 자기 발전 및 정신건강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던 나에겐 낯설지 않은, 접해 본 적이 있는 프로그램이었다.(이 글을 보고 죽음 준비 프로그램에 흥미를 가지게 된 사람이 있다면, 전문가와 함께 앞서 하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길 바란다)


 하지만 ‘유언장’ 쓰기는 정말 낯설게 느껴졌다. 아마 이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감할 것이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유언장’을 썼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열에 열은 놀랄 것이라고 장담한다. 한국의 통념상 유언장 쓰기란 시한부와 같이 죽음을 앞둔 사람이 하는 행동이 아닌가. 미래에 찾아올 그 순간이 두려운 사람에게 그 순간의 불안을 이기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죽음 이후 전달될 유언을 미리 쓰라니. 


죽음에 정면으로 몸통 박치기라도 하는 걸까? 그래, 저걸 해보자. 나는 메모장을 열어 유언장에 기입해야 할 것을 적어 넣었다.


1. 내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다면, 위급한 상황이라면 생명유지 장치를 달 것인지 말 것인지.

2. 끝끝내 내가 죽는다면 어떤 장례를 치르길 원하는지. (어디서/어떻게/얼마나/누가 참여했으면 좋겠는지)

3. 나의 재산, 일기, 기록, 책 등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4. 누구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5.  묘비명은 무엇으로 하고 싶은지. 


 주의점이 있다면, 유언장을 작성하는 시간은 내가 불안하지 않고, 가장 평온하다고 느끼는 시간에, 즉 나의 죽음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에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마음을 추스르며 나의 마음이 가장 편안해질 수 있는 때를 기다렸다. 날씨가 맑은 날, 해가 밝은 오후 2시. 아침을 먹고 빨래를 해두고 집안을 청소한 뒤 마음이 개운해지는 그때. 우선 나는 내 주변 사람들부터 천천히 정리했다. 


 하지만 노트 위로 쓰이는 그 글귀의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드문 드문 연락하는 나의 소꿉친구, 고마웠던 나의 은사님. 나의 가족, 그 누군가를 채워 넣다가 몇 명 되지 않는 그 약소한 목록이 나의 부끄러움인 것만 같아 떠오르는 이름을 마구 집어넣다, 남길 거라곤 쥐뿔도 없어 짐뿐인 주제에, 그만큼 베푼 적도 없는 주제에 그들에게 나의 짐을 떠넘기고자 하는 나의 행동에 비소가 지어져 몇 이름들을 지우고, 사람을 추리겠다 마음을 먹고선 내가 그들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있는지, 그저 나에게 남아있어 주는 사람이라며 함부로 대하지 않았는지, 내가 죽은 뒤 무언가를 맡게 된다면 그들에게 너무나 큰 짐이나 불편함이 되지 않을지, 하는 고민에 골머리를 앓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구겨진 종이를 뒤로하고 컴퓨터 책상 위로 올라갔다. 그냥 내용을 쓰고 지우고 고치다 보면 정리가 되지 않을까? 모든 글은 그렇게 시작되니까.


 “제가 만약 불시에 사고를 당해 여러분 곁을 떠날 때를 대비하여 이 글을 남깁니다.” 차분하게 써 내려간다고 담담한 어조로 적어봤지만 첫 문장부터 숨이 턱 막혔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비장한 기분이 드는 걸까, 정말 죽을 것도 아닌데. 나는 잠시 찬물 한잔을 가져와 들이키고 다음 문장을 써 내려갔다. 


“제가 만약 생명 유지 장치를 달아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 온다면...” 이후의 문장이 써 내려가지 질 않아서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놨다. 


 장기 기증, 생명 포기 등 여러 단어가 떠올랐지만 선 듯 손이 가지 않는 걸 보니 역시 난 막대한 돈이 들더라도 가족에게 부담이 되더라고 생명 유지 장치를 달아서 까지 살고 싶은 게 분명하다. 당연한 욕망이지만 글로 쓰자니 괜히 머쓱해졌다. 


“생명유지 장치 달아주세요.” 


글로 쓰인 한 문장을 보고 있자니, 조금 후련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만약 뇌사 판정을 받는다면.”


 나는 또다시 멈칫하고 만다.  만약 살 가능성이 있는데 뇌사로 오진이 나면 어떡하지. 몇 번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겨우 마무리 지었다.


“정말 확실한 뇌사라면 장기기증을 해주세요(진짜 진짜 확실한 뇌 사라 면요.)” 


 나에게 쓸모없는 무언가를 나눔으로써, 나를 기억해줄 누군가가 하나 더 있길 바랄 따름이다. 아마 그런 욕심이다.나는 더 나눌 것이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작은 단칸방에서 내가 살아오며 쌓아온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철제로 이루어진 싸구려 벙커 침대. 켜켜이 쌓여있는 리빙박스, 작은 책장 한가득 꽉꽉 채워져 있는 책들과, 전자기기들. 


“나의 책과 옷들은 필요한 누군가에게 갔으면 좋겠어요.” 


 옷은 몰라도 책은 제법 비싼 책들이다.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겠다며 엄마에게 사달라 졸라 한가득 손에 넣어놓고 채 다 보지도 못해 이제 먼지만 쌓여가는 낡은 책들. 하지만 제아무리 낡은 책이라 하지만- 비싸기도 하고 지금도 구하는 이가 있는 책들이다. 공부해야 할 책이기도 하고. 언젠간 다 봐야지 다 봐야지 하면서도 끝까지 다 읽지 못한 채 짐이 되어 따라다니는 책들. 필요한 누군가의 손에 가 빛을 보았으면 좋겠다.


 "나의 컴퓨터는.. "


 내 좁은 방에서 가장 값이 나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컴퓨터일 것이다. 다른 물건과 마찬가지로 부모님에게 돈을 갚겠다 그리 졸라 손에 넣은 그 컴퓨터는 ‘영상 편집과 프로그래밍’에 초점을 맞춰 최고급 성능으로 뽑았고. 2년이 되어감에도 150만 원이 넘는 가치를 가지고 있을 터였다.


그러다 문득 웃고 만다.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여긴 대부분의 것이 부모님이 주신 것인가. 여기저기 묻어나는 그들의 흔적에 그 그림자에 에 젖어있다가 금세 그것이 필요할 만한 누군가가 떠올랐다. 


 아직 부모님에게 컴퓨터 값을 청산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필요도 없이 고성능의 컴퓨터를 끌어안고 있을 이유가 무어 있겠는가? 나는 필요할 만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 두었다. 


“ 나머지 나의 전자 기기들은 주변에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가져가도록 해주세요. 우선 선택권은 동생에게 있습니다.”


 4년 전에 산 아이팟과, 스마트워치들 무선 충전기 핸드폰.., 모두 제법 값이 나가는 기기였다. 참 쓰지도 않으면서 많이도 끌어안고 산다 싶기도 하다. 


 세평 남짓의 이 좁은 방안에 뭐가 그리 많은 거야? 


 또한 나의 통장에 들어있는 아주 자그마한 재산과, 여러 계정에 들어있는 회원권들과 같은 나의 무형의 재산들은 동생에게로 갔으면 좋겠다고 적어 넣었다. 늘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내 동생,  나의 자매 그가 보여주는 무한한 신뢰 그리고 그녀를 향한 나의 신뢰가 그 사랑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삭막하고 외로웠을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목록들의 정리가 얼추 끝났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짐이 될지도 모르는 나의 책임, 나의 미련을 적어두기로 했다.


 첫 번째로는 나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겠지만, 만일이라도 내가 먼저 떠난다면 거처를 잃고 헤매야 할 반려동물들. 나는 그들이 나의 부모님 아래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부모님들은 항상 짐승이 싫다고 그리 말했지만, 반겨주는 이도 맞이해주는 이도 이 조막만 한 짐승밖에 없다며 내가 키우던 고양이를 챙기던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어쩌면 나보다 잘 돌봐줄 수 있을 거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친 듯이 떠나고 싶었던 그 집안, 소통하고 싶지만 그 오래 소통하는 법을 몰라, 삭막한 적막이 떠나지 않는 그 공간 속에서 한결같이 꼬리를 치며 반겨주고 날 사랑해주었던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활기가 돌개 될까? 내가 알게 되었던 그 기쁨을, 깨달음을 부모님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나의 존재가 사라짐을 어찌 받아들일까. 나는 부디 나와 함께 살아갔던 동물들을 나에게 사랑을 베푼 그들을 많이 사랑해 달라고 적어 넣었다.


 두번째로는 어린 시절부터 정리해왔던 나의 일기장과 내가 살아온 기록들. 누렇게 변색되었지만 미련이 넘쳐 버리지 못하는 공책들과 단체와 나의 작업물들이 고스란히 쌓여있는 하드디스크를 함께 일해왔던 동료들에게 떠넘기기로 했다. 


 내손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던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들과, 그들과 함께 그려왔던 그 목표를 이뤄 달라고. 또한 나의 억울함 또한 매듭지어 달라고. 


 이 두가지를 그렇게 떠넘기니 조금 후련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참 못난 사람이다 싶으면서도, 뭐가 그리 욕심에 겨워서, 뭐가 그리 한이 맺혀서 죽기가 억울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중학교 때 썼던 버킷리스트 한켠, 이미 옛적에 써두었던 내가 바라 왔던 묘비명 ‘최선을 다했으며 후회 없다’ 


 오래되어 손때가 가득 번진 연필 자국을 보며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하고 생각에 잠긴다. 최선을 다한다면 그 어떤 후회도 남지 않을 것이라 그리 믿었던 걸까. 


나는 지금 삶을 후회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나는 그와 똑같은 묘비명을 다시 적어 넣으며 생각했다. 


 ‘족하지 않다.’


 그래, 나는 만족스럽지 않다. 억울하다. 누군가에 떠넘겨야 할 것이, 떠넘기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이. 


 “나의 장례식은 누구든 올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무도 외롭지 않게.” 


마지막 구절을 적어 넣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우습게도 그렇게 후련하게 쓰고서는 이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튿날 상담 선생님에게 찾아갔다. 유언장을 쓰던 그 날,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기다렸던 '그 날'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기묘하게도 차분했고. 초연한 기분이었다. 나에게 무엇이 사라진 걸까. 무엇이 생긴걸까. 하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 이후 나는 밤에 죽음을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웃기게도 한편으로 그렇게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 불안은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고자 하는 듯한다. 그래, 나는 죽기전에 내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어.



2019년 4월의 어느 날 초등학교 시절의 나에게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선물한 선생님의 선물. 

-청소년 문학 <불안의 주파수>를 읽다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037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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