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 등장

by Rinah

객실 승무원 훈련생들은 각종 시뮬레이터(Simulator)에서 훈련을 받는다.


시뮬레이터는 조종실에서 캐빈과 갤리(=주방)에 이르기까지, 실제 기내의 장비, 인테리어, 좌석 배치를 실제 사이즈 그대로 구현해 둔 시설물들을 말한다.


난 항공업계에서 실제 비행기들만큼이나 이 시뮬레이터들이 정말 압도적으로 멋있다고 생각한다.


시뮬레이터들은 실내에 있는 시설물이지만 실제 기내와 너무나 똑같이 되어 있어서 입장하는 순간 곧바로 실제 비행상황처럼 실감하며 몰입할 수 있게 되어있다.


객실 승무원 훈련생으로 처음 갔던 곳은 캐빈 시뮬레이터(Cabin Simulator)였고, 몇 년 후 다른 일 하며 들어가 본 칵핏 시뮬레이터(Cockpit Simulator)들은 더 압권이었다. 내가 지금 땅에 고정된 시설물 안에 들어와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도, 어쩜 그렇게 롤러코스터 급강하 때 나는 그 느낌이 그대로 나는 건지. 엔진에 불나서 비상착륙하거나 윈드쉬어로 고 어라운드 하는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처음엔 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이것도 기회가 되면 나중에 따로 썰 풀어보기로 하고...


두 달여간의 훈련기간 막바지에 도래하자 그렇게 압박스럽던 모든 이론교육과 수많은 필기시험들이 지나갔고, 이제 실습 훈련들만 남았다.


여기부턴 체력전이다.



비상탈출 훈련

실제 비행기 같은 시뮬레이터에서 비상문 작동법, 비상탈출 시 승객들 대피안내 하고 대피 돕는 법, 실제 비상탈출 슬라이드 타고 탈출하는 법을 훈련받는다.


비상탈출 슬라이드를 그냥 미끄럼틀 같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슬라이드가 펼쳐진 문 앞에 서보면 대부분 처음엔 멈칫하게 된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높이도 훨씬 높고, 경사도 훨씬 가파르기 때문이다.


내려올 때는 그나마 빨리 타고 내려올 수 있으니까 그 가파른 경사도 몇 번 타다 보면 괜찮아지는데, 문제는 땅에서 슬라이드를 타고 다시 기내로 올라가야 하는 훈련이었다. 이땐 그 경사가 정말 사람 잡는다. 기본적으로 타고 ‘내려가는’ 슬라이드라서 방심하면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은 한 번에 등반을 끝내서 좀 쉴 수 있나 싶었는데, 한 번에 등반 못하고 슬라이드 중간에서 버둥거리는 동기들이 나올 때마다, 조교들이 한 번에 성공한 사람들 중 한 명을 지목해서 "너! 올라가서 도와줘라!"라고 하는 바람에 오히려 등반만 네 번을 더 해야 했다. (나중에 도움받은 동기들이 고기 쐈다....)



수상탈출 훈련

시뮬레이터 한쪽으로는 수영장이 있었다.


바다에 비상착륙한 상황을 가정하고 구명조끼 착용하고 탈출해서 구명정도 가동하고, 열심히 구명정에 모두 탑승하면, 조교들이 훈련생들을 밀어서 물에 다 다시 빠트리고 구명정도 뒤집어버렸다.


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이때 정말 힘들겠다 싶었다. 훈련생들이 3인 1조로 뒤집힌 구명정 위에 올라탄 뒤, 구명정 아래쪽의 로프를 잡고 물에 잠수하듯 뛰어들어 구명정을 다시 뒤집어 원위치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수영장의 정확한 수심은 기억이 안 나지만 1-2미터 수준은 아니었다. 난 수영이나 물을 무서워하는 편이 아닌데도 처음 물속에 들어갔을 때 눈앞에 보이는 그 깊이에 순간 움찔했다. 바닥이 어두운 색이어서 실제보다 더 깊어 보였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조교들이 너무 겁나면 열외 시켜줄 테니 말하라고는 하지만, 물이 무서워서 덜덜 떨었던 친구들도 다 해냈다. 평상시 업무에서야 그렇게 수영하고 잠수할 일이 (있어서도 안되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런 훈련도 다 통과해야 크루가 되는 거니 말이다.


뒤집힌 구명정을 원상복귀 시킨 후에는 물에 빠져있는 다른 사람들 건져내는 연습도 했는데 진짜. 너무. 완전. 무거웠다.


물론 조교들이 “너희들 이런 식으로 미적거리면 사람들 다 죽는다. 너희 가족, 너희 애인이라고 생각하고 빨리 끌어올려!!”라고 수시로 고함을 쳤기 때문에 힘들다고 쉬면서 할 여유도 없었다.


야ec 너 어제 뭐 먹었냐고 서로 소리치며 끌어올렸는데 이게 히히덕거리는 잡담이 아니라 운동할 때 욕하면서 기합 넣는 것과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 우리 배치는 처음엔 영어로 얘기하다가 나중엔 각자 모국어로 뭐라고들 떠들었다.


아마 다 욕이었을 것이다.

일단 난 욕이었다.



화재진압 훈련

화재진압 훈련은 실제 소화기를 작동시켜서 불을 끄는 연습을 하는 것인데, 실습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조교들이 기내에서 불이 얼마나 빨리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화재 시연은 실제 이코노미석과 동일하게 꾸며진 별도의 모형시설에서 진행했다. 안전을 위해서 투명 유리로 밀폐되어 있던 그 모형시설도 다른 시뮬레이터들처럼 실제 캐빈의 사이즈와 인테리어 그대로여서, 이코노미 캐빈 제일 뒤쪽 화장실 하나와 그 앞에 좌석 다섯 줄까지 방금 비행 끝낸 비행기에서 떼온 것 같았다.


화장실에서 담배로 인해 불이 난 경우를 만들어서 보여줬는데, 기내에 검은 연기가 가득 들어차기까지 4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검은 연기가 퍼지는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무섭게 빨랐다.


예상 밖의 압도적인 장면을 본 직후라서 그런지, 난 당시 조교가 우리 배치에 말한 내용을 아직도 기억한다.


“자, 봤지? 불나고 4분 내에 못 끄면 너네는 확실하게 다 죽는다. 살아서 너네 두 발로 직접 땅에 내려오고 싶으면 1분 30초 내에서 진화해야 한다. 만약 1분 30초를 넘기더라도 2분은 절대 넘지 마라. 비행 중 화재 진압은 2분이 데드라인이다. 그리고 방금 봤듯이 2분을 데드라인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다."


이런 걸 보고, 듣고 나서 한 명씩 실제 소화기로 불 끄는 훈련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훈련이 끝날 때까지 그 누구도 감히 장난치거나 히히덕 거리지 않았다.

(물론 훈련 다 마치고 나면 조교분들까지 다같이 웃으면서 함께 기념사진 찍는다.)




이 온갖 시험과 훈련들을 모두 통과하면

이제 드디어,

크루 유니폼을 지급받는다.


카타르항공의 상징인 버건디색 유니폼

오릭스가 새겨진 모자, 벨트, 네임 배지

CREW라고 써져 있는 네임택

크루용 캐리어와 핸드백

기내용으로 들고 다녀야 하는 소형 매뉴얼


그날은 나처럼 평상시 사진 잘 안 찍는 사람이어도

셀카 오만장 찍는 날이다.


동기들과 다같이 신나서 서로 축하하고,

우린 이제 진짜 고생 다 끝낸 줄 알았다.

우리 배치 담당 인스트럭터가 이 말을 하기 전까진.


"모두 축하한다. 견습비행도 다들 잘 통과하길 바란다."


아읽!?


최종_최최종 남았구나.


견습비행 2회를 통과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모여 두 달여를 함께한 동기들은 이제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의 스케줄대로 견습비행에 나서게 되었다.


유니폼 챙겨 입고, 뉴비들이 간다!



+

이전 글들부터 계속 언급하고 있는 사항이지만, 모든 항공사의 모든 크루가 내가 겪고 배운 걸 똑같이 배우는 건 아니다. 알아야 하는 내용은 같아도 실제 교육방식이나 훈련방식은 항공사마다 다르고, 같은 항공사 내에서도 인스트럭터(조교)마다 가르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카타르항공은 다른 항공사에 비해 다소 군대식이라고 하던데, 난 그중에서도 그런 성향이 좀 강한 인스트럭터들을 만났던 게 아닐까 싶다. “비행 중에 너희들은 다 죽어도 조종사만은 살아서 내려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얘기도 수시로 들었으니까.

이건 조만간 다른 에피소드에서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겠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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