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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시인 Oct 16. 2024

오늘은 내가 주인할게, 반려 집사는 좀 쉬어

책임의 무게에 대하여

[아, 제윤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제윤이가 학원에서 애들이랑 다퉜다는데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봐요.]

[제윤이가 심적으로 어려운 상황인가 봐요]

[됐고, 얘기해 보라니까?]

[....]


[은희 어머니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 있으실까요?]

[은희 내일 5시에 못 가니 아침에 보강해 주실 수 있어요?]


[민지가 학교 끝나고 안 좋은 데를 가는 것 같은데 좀 봐주실 수 있나요?]

[....]


하루를 꼬박 달린 시침이 버겁게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식은 치킨만큼이나 볼품없는 남자가 혀를 끌끌 차며 손톱을 매만지고 있었다. 평소 남자의 수다만큼 귀를 따갑게 하는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수화기 너머 여자의 음성이 가히 수준을 아득히 넘은 것처럼 보였다. 안쓰러워진 그의 표정처럼 튀김옷은 계속 눅눅해지고 있었다.


집사는 때때로 삶의 힘듦을 토로한다. 그의 녹진한 한숨이 밖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줄여주기도 했다. 지금처럼 환한 창밖과는 별개로 그의 낯빛이 캄캄해질 때가 많았다. 달이 떠도 거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러나 하늘에 뜬 무수한 별이 그의 곁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럴 때면 그의 허락을 받고 옆에 가서 조용히 앉아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다가 의욕 없이 밥을 굶을 때면 발가락을 물어서라도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감기에 들었을 때 주사기로 알약을 먹였던 것처럼 나도 그가 살아갈 수 있게 그의 아픔을 감당해야 했다. 더 크게 운다. 언어로만 소통하는 건 아니니까. 남자가 자주 트는 음악에도 가사가 없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지난주에는 갑자기 천안에 가야 한다며 떠나는 그였다.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가출했다는 전화가 온 모양이었다. 헐레벌떡 뛰어간 그가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야 지친 기색으로 왔을 때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심심했을 나를 위해 그가 입을 열었다.


[출발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너무 막막한 거야. 부모님은 당연히 어디 갔는지 모르고 동네는 넓고 그래서 어떻게 했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찾아서 친구들에게 연락했어. 처음 보는 사람한테 연락 왔으니 걔네들도 적잖이 당황했을 거야. 그런데 팔로우나 친구 추가한 사람들이 많잖아? 그래서 머리를 썼지. 댓글 많이 다는 친구들 중점으로 해서 치킨으로 꼬셨어. 그 외에 다른 이야기도 했지만 어쨌든 가출한 건 잘못한 거기도 하고 걱정도 되니 알려주더라.]


목이 말랐는지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곧장 이야기를 이어갔다.


[피시방에 있는 것까지 확인했는데 가는 동안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안 되잖아. 그래서 게임 닉네임을 받았어. 요즘은 실시간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지 볼 수도 있거든. 신기하지? 아무튼 도착한 피시방에 교복 입고 있는 애가 한 명밖에 없어서 손쉽게 찾을 수 있었어. 근데 설이야 이런 경우 가출을 왜 했는가를 생각해야 해. 내가 동네 형이라면 머리통 한 대 쥐어박고 혼내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교육자잖아?]

그가 항상 달고 사는 말이었다.

    

[교육자가 가져야 할 책임은 도망 나간 아이들을 찾는 데서 오지 않아. 찾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어. 곧장 뛰쳐나가면 그만이거든. 다시 현실로 돌아가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이 애들에게 항상 책임감을 가져야 해. 그 책임은 결승 지점에만 서 있는 사람은 결코 볼 수 없는 거야. 시곗바늘이 하루, 한 달, 일 년을 바쁘게 돌 때 매 순간 결승 지점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나는 학생의 꿈을 제대로 보고 있을까? 그건 밤낮을 고민해도 알기가 쉽지 않아. 그러나 밤낮을 고민하는 모습에 애들이 마음을 열어주니 꼭 곁에 있어야 해. 그러니 아이들의 기쁜 순간을 축하해 주려면 먼발치에 있으면 안 되는 거야. 우리 인생은 결승 지점에 골인하는 게 다가 아니야. 그럼 길대로 따라오는지 확인해야 할까? 설마, 달리기 따위와 비교도 할 수 없지. 삶에는 정해진 길이 없는걸. 그러니 나는 멀리 있지 않고 달려가는 아이들 옆에서 물 한 모금 사다 주면 돼. 지쳐 누운 아이들과 원래 이 길이 어렵다며 작은 담소를 나눠 주면 되는 거야. 아이들이 언젠가 끝에 다다랐을 때 누구와 기쁨을 나눌지는 아이들 자유거든. 아, 물론 이건 내 생각이니 넌 너만의 책임을 만들렴. 어쨌든 그냥 옆에 앉아 불닭 볶음면 하나 먹으면서 같이 게임했어. 게임도 내가 더 잘해서 한 대 쥐어박을 수 있었어.]

  

진지하게 끝날 수 없는 그의 성격에 고개를 저으면서 적어도 그가 느낀 책임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드러누운 그의 입에서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지만 깨우고 싶지 않았다. 참새 아저씨도, 담벼락 황색 고양이도 오래 살고 보면 사는 기준이 생기는 걸까? 나는 아직 정해놓은 것이 없고,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살고 있는데 잘못된 걸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지금은 집사가 이끄는대로 살고 있었다. 맛있는 간식을 주며 앉으라 할 때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발을 모았고, 이름을 불러 달려가면 쥐어지는 간식 하나에 기뻐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정작 표정은 집사가 더 밝아졌다. 그것이 내 책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사 양육이라... 결승점이 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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