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측면에서
설이가 화장실 모래를 사방에 흩뿌렸다. 녹차향이 나는 두부 모래 제품이었다. 기존 모래가 가루가 너무 날려 이번에 새로 바꾼 터인데 어제부터 근처를 서성이며 연신 냄새를 맡고는 모래 안에서 뛰어다니며 사방에 퍼트리고 있는 짱구 같은 반려묘이다.
팅팅 부은 눈을 비비고 비비며 투덜거렸다.
"왜 이렇게 흩뿌리는 거야, 대체. 아직 침대 안에 들어가 있을 시간이라고!"
설이는 모른 척했다. 건조기 위에 올라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모습이 퍽이나 약이 오른다.
눈만 꿈벅거리더니, 천천히 입을 벌려 고소한 향기를 방안에 내뿜었다.
시위인가 싶어 한숨이 나왔다.
잠시 뒤, 설이가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몸을 기댔다. 골골송을 부르며 바닥에 몸을 뉘인다. 어깨를 들어 나를 보는 눈동자에는 조금 쓰다듬다가 가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잠시동안 녀석의 눈동자에 매료되어 화가 가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얄밉지만 괜히 예민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다.
어쩌면 설이는 말로 해결하려는 내 습관을 잘 알지도 모른다. 어제는 교과서 대단원 1과에 대한 문제를 정리할 양식지 좀 만들어달라 부탁한 일이 있었다. 후임이 시킨 일을 까먹고 안 해왔을 때 그 자리에서 1시간을 얼굴을 붉히며 이야기를 하니 하루 종일 얼굴을 피하고 다녔다. 사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는 일로 싸우고 나면 시간이 지난 후 서로에게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만 들뿐이다.
이 흰색 고양이는 몇 년을 살았다고 능구렁이처럼 어색한 상황을 피해 가며 멀어졌다가 다시 달라붙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양을 부리는 재간을 이겨낼 겨를이 없다.
마치 사소한 다툼으로 상처를 지어줄 필요는 없다는 걸 아는 듯 늘 제 방식으로 풀어낸다.
화를 낸 내가 미안해지는 건,
설이가 순하고 착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는 상황에 상관없이 늘 옆자리를 지켜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릎을 베고 누운 설이의 등을 쓰다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은
때론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주는 걸로도 채워질 수 있다는 것.
사람 사이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는 말보다,
명쾌하고, 획기적인 정답보다,
그냥 같이 앉아 있는 게 더 큰 위로가 되는 순간.
설이는 그걸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