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_새벽의 시간
20대에는 몇 사람과 공백 없이 꽤 진득한 연애를 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이상을 만나며 20대의 대부분을 연애하며 보내다 30대 초반에 5년간의 연애가 돌연 끝이 났다. 그렇게 20대의 절반을 함께 보낸 사람과 이별한 뒤 꽤 오랫동안 만남을 갖지 못한 채 30대 중반이 되었다.
오랜 기간 연애를 쉬며 의외로 나는 혼자가 잘 맞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혼자서 정성껏 요리해서 밥을 먹고 단골가게에서 혼술을 하고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바깥으로 뻗어있던 신경을 안으로 몰입해가며 조금은 단단해져가던 시간.
나의 생활은 점점 충만해져갔지만 가끔씩 마음 한구석이 바람이 든 것처럼 헛헛해 무릎 위의 보드라운 고양이의 털 속에 코를 파묻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누군가와 가볍게 스쳐가듯 만나기도 했지만 인연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이제는 누군가 곁에 있는 것이 도리어 어색할 것만 같은, 혼자가 익숙해진 내 앞에 네가 나타났다.
우리는 직접 만나기 전 메시지로 한동안 대화를 나눴는데, 서로 좋아하는 음악이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점이 큰 호감요인으로 작용했다. 처음엔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노래'로 시작해 '잠들기 전에 들으면 좋은 노래', '출근준비송 ', 여행을 떠났을 때는 '바다와 잘 어울리는 노래', '호텔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듣기 좋은 노래' 등 매일같이 서로에게 노래를 추천하며 가까워졌다.
그는 몇 번이고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해킹이라도 해서 본 건지 의아해했고 나 역시 그의 선곡에 반갑고도 놀라웠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취향을 공유했다는 동질감 때문일까, 몇 번의 만남 이후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마음을 내보이고 자연스레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누군가와 따뜻한 관심을 주고 받는 것은 가슴 벅찰 정도로 행복한 일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사시사철 찬 내 손이 한층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날. 그의 크고 따뜻한 손이 내 손을 감싸주었을 때 내 안에 잊고 있었던 어떤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누군가와 온기를 나눈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었지.
그동안 나는 참 많이 외로웠구나.
새롭게 시작한 사랑에 더할나위 없는 행복을 느끼는 나날,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어떤 동요가 있었던 걸까. 매일 7시간 이상 꼬박꼬박 통잠을 자던 내가 새벽 4시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행복한데 이 불안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는 분명 사랑하는데 왜 종종 슬플까. 문득 찾아 든 새벽의 시간 속에 생각들이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