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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Feb 06. 2018

긴 계단 끝에서 일단 수영부터 하자

이탈리아 포지타노에 도착했다

서둘러 뛰어서 겨우 기차에 올라타고 나폴리로 향했다. 나폴리에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택시 기사님이 우리 이름이 적힌 푯말을 들고 역에 나와 있었다. 길쭉한 다리를 꼬고 벽에 기대 서 있던 기사님이 우리와 눈을 마주치더니 활짝 웃었다. 그 뒤를 졸졸 따라가며 (몇 번째인지 모르게) 생각했다. 와, 이탈리아 남자들 잘생겼다. 


택시에 올라타자 기사님이 붙임성 있게 "어디에서 왔니?", "이탈리아는 처음이니?" 물어왔고, 길게 말하고 싶었지만 영어의 한계로 단답형 대답을 하며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한 시간 정도, 시내를 벗어나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에 접어들어 달리자 나는 잠이 쏟아졌고 남편은 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포지타노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야 비로소 둘 다 정신이 좀 들었다. 벌써 몇 개의 해변이 저 아래로 반짝이며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숙소 코앞에서 택시를 내리고 호텔에 들어가 체크인을 하려는데, 로비에서도 큰 창을 통해 바다가 보였다. 


숙소에서 보이는 바다


포지타노는 마치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처럼 언덕을 타고 집이 겹겹이 올라타 있고, 골목을 구불구불 걸어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해변이었다. 몇 시간 전에 판테온에서 브런치를 먹고 온 탓에 별로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곳에 왔으니 이곳 밥을 먹어봐야지. 숙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일단 맥주 두 잔을 시켰다. 포지타노는 어디에서나 아주 멋진 '오션 뷰'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맛이 잘 기억 나지 않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방에 들어가 옷 안에 수영복을 입고 나왔다. 


'지금? 지금 수영하려고?' 눈을 땡그랗게 뜨는 남편에게 '그럼 넌 옆에서 구경할래?' 하고 손을 잡아끌며 일단 해변으로 향했다. 비행기를 10시간 넘게 타고 유럽에서도 휴양지를 찾아온 이유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는 걸. 내가 수영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지인들이 보면 비웃을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수영을 전혀 못한다. 하지만 수영을 못해도 물놀이는 언제나 신난다. 


포지타노 언덕 위의 집 어디에서든 해변으로 가려면 아주 많은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 그래서 숙소가 너무 해변에서 가까우면 낮아서 경치가 아쉽고, 숙소가 너무 높이 있으면 계단 때문에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 우리는 사이드 어디쯤 있는 호텔이었는데 사실 선택권이 별로 없었다. 꽤 일찍 예약했는데도 이미 많은 호텔이 가득 차 있었고, 에어비앤비의 현지 숙소는 훌륭해 보였지만 그만큼 정말 비쌌다. 나름대로 고심 끝에 정한 합리적인 선택이 2박에 400유로 호텔이었는데, 같은 가격에 스페인에서는 5배쯤 고급스러운 리조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 


고양이도 걷고 있는 긴 계단


어쨌든 비치 방향이라는 화살표를 따라 긴 계단을 걸어 내려와 바다에 닿았다. 오늘따라 하늘이 기가 막히게 파랬다. 여기서도 파라솔을 쓰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 가방을 뒤적거려 보니 물에 들어갈 생각에 돈을 안 가지고 왔다. 별 수 없이 바닥에 적당히 짐을 모아두고 수영복 차림으로 바다에 첫 발을 내딛었다. 나는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 들어가 해변 쪽을 바라보는 것의 즐거움을 이곳에서 처음 느낀 것 같다. 통일되지 않은 건물 외벽이 귀여웠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하늘이 정말 파랬다. 


바다에서 올려다 본 하늘


남편이 카메라로 내 사진을 찍어주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옷을 벗고 입수했다. 이따가 저녁을 먹으러 가려면 구불구불한 계단을 올라가서 숙소에 들어가 또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포지타노에는 계단과 바다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메인 상점 거리가 따로 있었다. 저녁에 간단한 안줏거리를 사려고 나선 것인데 마땅한 게 없어서 그 거리를 거의 끝까지 걷고 말았다. 겨우 막 문을 닫으려는 빵집을 발견해 타르트와 피자 한 조각을 사고, 와인과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주종에 상관없이 술을 꽤 자주 마시는 편이라서 한국에서도 9천 원이나 만 2천원쯤 하는 와인을 종종 먹는데, 저렴한 것이라도 나름대로 취향이 있다. 남편은 화이트보다 레드, 나는 달콤한 것보다 드라이한 맛을 좋아하는데 이날 뭣모르고 고른 건 둘 다 돈 주고는 안 사먹는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달이 천천히 하늘을 가로지르는 걸 라이브로 보면서 짠. 


그래도 뭐든지 있으면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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