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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Dec 04. 2017

콜로세움을 관광해도 괜찮을까?

역사가 지나가고 남은 자리

로마 공항에서 우리 숙소가 있는 테르미니 역까지는 기차 한 번만 타면 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 역에서 숙소까지 가는 5분 거리 사이에 나는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렸다. 레스토랑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거리에 늘어져 있는 테이블에 사람들도 꽤 여럿 보였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갔을 때 (소도시라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오후 5시 즈음부터 벌써 식당 문을 닫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는데, 같은 유럽이라도 이탈리아의 밤은 길고 활기차 보여 마음이 설렜다. 숙소에 도착한 게 거의 밤 9시 즈음이라 꽤 늦었다 싶었는데, 12시까지는 영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테르미니 역에서 숙소로 가는 길


짐을 내려놓고 내려와 숙소 바로 아래에 있는 레스토랑에 앉았다. 메뉴는 마르게리타 피자와 봉골레 파스타. 조금 부담되지만 기념 삼아 와인 한 병. 설레는 첫 식사를 기다리는 중에 누군가 야외 테이블 사이로 돌아다니며 장미꽃을 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우리에게 다가와 장미꽃을 권하기에 반사적으로 “괜찮아요~” 하는데 남편이 한 송이 사주겠다고 나섰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에서 13시간을 보낸 이날은 바로 우리의 결혼기념일. 못 이기는 척 내 지갑에서(?) 3유로를 내고, 포장도 없는 장미꽃 한 송이를 받아들자 기분이 간질간질 기뻤다.


다음날 로마에서 포지타노로 떠나는 기차를 오후 1시쯤에 예약해 두었다. 로마에서 머무르는 건 사실상 반나절에 불과한 셈이었다. 실은 그만큼 로마에 별 기대가 없었다. 각 나라의 수많은 유적지가 얼마나 교과서에서 보던 사진과 똑같은지, 그리고 역사에 관심 없는 내가 그곳에서 얻는 감흥이라는 게 얼마나 얕은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일 오전에 뭐 할까? 하고 구글 지도를 켜서 보니 숙소 주변에 콜로세움도 있고, 트레비 분수도 있고, 웬만한 아는 것(?)이 다 모여 있었다. 그럼 오전에 시간이 나니까 한번 가볼까? 다행히 시차 때문인지 6박 8일 내내 새벽 6시, 늦어도 7시에는 잠에서 깨어 아침이 길었다. 물론 밤 10시만 되면 참을 수 없이 눈꺼풀이 감겼지만.




어릴 때, 그러니까 내 기억으로는 한 9살 때쯤 태권도를 배웠다. 태권도 자체는 그렇게 재미있지도, 또 그렇게 지루하지도 않았다. 문제는 어린 나이에 스포츠 정신도 잘 모르겠고 나는 그냥 누구랑 물리적인 충격을 주고받고 싶지가 않다는 데 있었다. 학원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겨루기 시합을 했는데 난 그게 너무 싫었다. 관장님이 나를 지목할까봐 항상 가슴을 졸이며 시선을 피했다. 태권도는 물론 좋은 운동이지만, 다른 아이와 몸으로 부딪치며 기술을 겨루는 것이 내 성향에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겨루기를 하기 싫어서 태권도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난 지금도 싸우거나, 피가 나거나, 누구를 공격하거나, 심지어 갑자기 누가 튀어나와 놀라게 하는 영화도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콜로세움은 기본적으로 매력적인 관광지일 수 없었다. 콜로세움 하면 연극이나 서커스 등 볼거리가 제공되었던 공공 극장이기도 하지만, 싸움으로 명예를 얻고 죽음으로 영광을 얻는 (현대인의 시각에선) 잔혹한 검투사들의 경기가 있던 곳이 아닌가. 물론 내 개인의 성향을 기준으로 콜로세움이라는 장소를 옳고 그르다 판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격렬한 삶과 역사를 가볍게 들여다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게다가 앞뒤 상황이 어찌됐든 누군가 그토록 온 힘을 다했던 장소를 그저 ‘관광’해도 될까? 하는 약간의 죄책감과 꺼림칙함 같은 것이 있었다.


경기장은 또한 해상 전투를 재현하거나 고전극을 상연하는 무대로도 사용되었다. 검투사들은 보통 노예나 전쟁 포로들 중에서 운동 실력이 출중하고 용맹하게 잘 싸우는 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서로 결투를 벌이거나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사냥해 보여 로마 관중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으나, 검투사가 되면 이득도 있었다. 다른 노예들보다 생활환경이 훨씬 나은 군대식 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었고, 승리를 거둔 검투사들은 영웅 대접을 받음으로써 한편으로는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그래서 로마에서 하루를 보내면서도 굳이 콜로세움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숙소와 가까워서, 그리고 로마에서 한두 군데 둘러본다면 가봄직한 상징적인 장소라서 콜로세움으로 발걸음을 향한 것이었다.


콜로세움이 가까워지자 아직 오전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엄청나게 북적이고 있었다. 그 앞에서 몇몇 사람들이 셀카봉을 팔았다. 평소 같으면 너무 뻔한 풍경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관광지다운 활기에 오히려 긴장감이 좀 풀렸다. 로마의 관광지에 가면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탓에, 나는 지갑과 휴대폰과 카메라가 들어 있는 가방을 두 손으로 꼭 여미고 그 사람들 틈으로 조심스레 파고 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빼곡한 콜로세움


그리고 눈앞에 말 그대로 ‘펼쳐져 있는’ 콜로세움을 빤히 마주보았다. 콜로세움이 어찌나 큰지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건축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혀 가려지지 않는 듯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그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보려고 눈동자를 사방으로 굴리다 보니 사실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기분이었다. 눈으로는 콜로세움을 조금이라도 잘 보려고 구도를 찾고, 동시에 소매치기로부터 짐을 사수해야 한다는 긴장감에 손으로는 가방을 꼭 움켜쥐었다.


우와. 사람들이 왜 로마에 오는지 알 것 같았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구나……. 그 크기만으로도 웅장하고 경이로웠다. 옛날 사람들이 이걸 도대체 어떻게 지었을까? 과거에는 수많은 삶이 부딪치는 생생한 현장이었겠으나 현대에는 그저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만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사람은 짧게 스쳐갔으나 그 기록은 건재했다. 관중들의 재미를 위해 목숨 건 혈투를 벌인 맹수와 검투사들의 역사를 떠올리면 마냥 신나게 감상할 수는 없지만 그 규모가 놀라운 것은 사실이었다.


당시 이곳의 뜨거운 열기 속에 있던 이들은 먼 훗날 그 현장이 관광지가 되리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아마 지금 우리의 기록도 언젠가는 과거가 되겠지. 나에게는 힘겹고 두려운 삶의 전쟁터도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흩어지고 이렇게 동떨어진 실체의 조각으로만 남겠지. 모처럼 역사의 형체를 목격하는 것 같은 기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으로 콜로세움을 바라보았다.


콜로세움 안에 들어가기 위한 줄이 너무 길게 늘어서 있어서 우리는 그 앞에서만 한참 서성이다가 발길을 돌렸다. 가는 길에 '모든 신을 위한 신전' 판테온에 들러 그 앞에서 점심을 먹고 나니 기차 시간이 촉박하게 남아 있었다.  


판테온 신전 앞의 레스토랑
파스타와 함께 맥주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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