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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Nov 08. 2017

사진 한 장으로 결정한 여행의 목적지

비행기를 다섯 번이나 타야 하지만, 가자 

올해 추석 연휴는 열흘이나 됐다. 이 긴 연휴를 도대체 어떻게 써야 아쉬움 1g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모아 만끽할 수 있을까? 우리는 추석이 오기 1년이나 전에 이 여행을 결정했다. 비행 시간이 긴 유럽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성수기라 비싼 항공권을 12개월 할부로 긁었다. 마침 추석 연휴가 우리의 결혼기념일과 겹쳐 있어서 명분이 되어주었다. 우리 영수증을 본다면 김생민 아저씨가 '슈퍼 울트라 스튜핏'을 외칠 것이 명백하나…… 으으, 죄송해요. 직장인이 신혼여행과 열흘의 추석 연휴 아니면 언제 시간을 내겠어요. 


이번 여행 일정은 총 6박 8일로, 이탈리아에서 3박, 스페인에서 3박이었다. 그중 2박은 사실상 이동을 위해 잠시 머물러 가는 일정이었다. 유럽 여행은 동선을 효율적으로 짜서 이동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지만, 이번 휴가는 효율보다 가고 싶은 곳을 우선으로 하기로 했던 것이다. '여기는 무조건 가자'고 처음 정한 곳이 스페인의 '메노르카'라는 작은 섬이었다. 이전에 우연히 사진을 보다가 그 멋지고 투명한 바다에 반해 언젠가 가리라 기억해놓은 곳이었다. "우와- 여보, 세상에 이런 곳이 있대." 바다가 수면 위의 모든 것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여기가 도대체 어디인가, 하고 찾아보니 스페인의 유명한 이비자 섬과 마요르카 섬, 두 개를 지나서야 도착하는 작은 섬이었다. 


우리가 가보고 싶었던 그곳, 메노르카
운 좋게도 여행 내내 하늘이 이렇게 파랗고 예뻤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체코로 갔는데, 당시 첫 유럽여행이었던 신랑이 한 나라에만 머물렀던 것을 짐짓 아쉬워하여 이번에는 한 군데를 더 골랐다. 현지 이탈리아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서 스페인과 이탈리아, 두 곳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로마 IN, 바르셀로나 OUT으로 항공권을 먼저 끊었다. 이후 몇 달이나 지나서야 나는 친구의 말을 듣고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을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전에 프랑스, 독일, 벨기에를 기차로만 여행하고 온 적이 있어서 유럽이면 당연히 육지로 이동할 수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깜짝 놀라서 나중에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하니 우리가 원하는 여행 코스는 비행기를 총 5번이나 타야 하는 일정이었다. 아이고. 


이탈리아 : 로마 1박 - 포지타노 2박 

스페인 : 바르셀로나 1박 - 메노르카 2박 


기내용 캐리어 한 개에 신랑과 내 짐을 꾹꾹 눌러 담았다. 두꺼운 겨울 옷을 챙기는 게 아닌 이상 출발할 땐 항상 캐리어가 널널한 편이다. 대신 돌아올 땐 마트에서 산 과자나 맥주 같은 것으로 꽉 찬다. 고양이들을 친정집에 데려다 맡겨 놓고, 잘 적응하는지 사흘 정도 지켜본 뒤에야 10월 3일에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의 꽃(이라고 생각하는) 기내식


장거리 비행의 유일한 즐거움은 역시 기내식이다. 2007년인가 2008년쯤, 내 인생의 첫 기내식은 너무 맛이 없어서 거의 다 남긴 기억만 남아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무 맛있어져서 깜짝 놀랐다. 특히 나는 깨작깨작 먹는 걸 좋아해서 자그마한 도시락 통에 아기자기하게 담긴 기내식 스타일이 딱 알맞다. 10시간 넘는 비행 끝에 저녁 무렵의 로마 공항에 비로소 도착했다. 빨리 숙소 근처로 가서 첫 저녁을 먹자, 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여행에서 가장 신나는 시간은 저녁 식사 때다. 그날 일과를 돌아보며 어디가 좋았는지 되감아보는 것도 즐겁고, 멋진 걸 눈에 실컷 담아온 뒤 나른하게 풀어지는 여유도 좋다. 점심을 너무 비싸게 먹으면 왠지 과한 것 아닌가 싶지만 저녁은 왠지 좀 든든하게 먹어도 용서가 된다. 그날의 일정이 끝났으니 만족할 만큼 마시고 취해도 좋다. 밤 비행기를 타더라도 꼭 편의점에서 간단한 음식을 사 숙소에서 맥주와 함께 먹는다. 어떨 땐 여행지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 같기도 하다. 평소에는 그런 기분이 덜 난다. 이 저녁식사의 즐거움은 '내일 해야만 하는 (생산적인)일이 없는 것'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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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여행기를 시작해 봅니다 :)

인스타그램 @sogon_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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