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카이도 여행(1) 오타루
결혼하고 혼자 여행을 가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한 번은 출장 겸 홍콩에 다녀온 것이라 신랑과 고양이들을 두고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게 조금은 낯설었다. 좋은 풍경과 음식과 그 순간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은 여행의 밀도 높은 행복 중 하나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홀로 천천히 걷는 시간이 좋았다. 혼자 있을 때만 떠오르는 생각은 꼭 그 찰나에만 붙잡을 수 있었다.
꼼꼼한 신랑 옆에서 늘 여유롭게 늦장을 부리던 나는, 이번 여행만큼은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해 시간을 꼼꼼히 챙겨 썼다. 하필 전날 몸이 안 좋아져서 처음으로 인천공항에 있는 병원에 가고, 통신사에서 콘센트를 빌려준다고 해서 그걸 빌리고, 줄을 길게 서서 표를 끊어 들어갔다.
매번 연착되는 이 저가항공은 이번에도 출발이 늦었다(새벽의 두 시간 연착을 겪은 뒤 다신 안 타리라 이를 갈고도 가격 때문에 또 선택하게 되는!). 이륙하는 느낌이 싫어서 비행기에 타자마자 자려고 노력하는데, 이번에는 새벽 일찍 일어난 탓에 별 노력 없이도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었다. 한참 자고 깨어난 것 같은데 아직도 땅 위였다. 그냥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니, 2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 끝에 마침내 눈 덮인 새하얀 육지가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훗카이도에서 주로 여행하는 곳은 삿포로, 오타루, 비에이, 노보리베츠, 하코다테 등이라고 한다. 서울처럼 지하철 몇 정거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몇 군데를 돌아보려면 이동 시간을 감수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공항에서 3시 30분에 JR열차를 타고, 오타루에 있는 호텔에 도착한 것이 딱 5시였다. 이번 여행은 편의보다 비용을 선택했기 때문에, 정확히는 관광 중심지인 오타루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오타루칫코 역에 호텔이 있었다.
공항부터 호텔에 가는 길에 한 시간이 넘게 열차를 타고 이동하니 눈앞에는 온통 눈과 나무, 눈과 나무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눈길에 설레는 마음도 잠시, 그저 하얀 배경에 삐죽삐죽 나뭇가지가 솟아 있을 뿐이니 스르르 잠이 왔다. 마침내 호텔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고 나와 걷는 길에 거리마다 눈이 내 키만큼 쌓여 있었다. 훗카이도의 눈은 직접 보고 밟으니 비로소 현실감이 느껴졌다. 뽀드득 뽀드득 두텁게 쌓인 눈을 밟고 걷는 것은 몹시 오랜만이었다.
오타루에서는 유명한 오르골당과 운하를 보고 다음날 삿포로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하얀 골목길을 구불구불 몇 번 지나자 저 멀리에서도 한눈에 오타루의 유명한 오르골당을 발견할 수 있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본 건 오르골당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오래된 제과점이었다. 하지만 맞은편에 바로 오르골당이 있다. 훗카이도는 오사카나 교토 등 일본 전통 문화가 남아 있는 지역과 달리 역사가 매우 짧다고 한다. 훗카이도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 1869년으로, 지역 자체에 일본 전통적인 느낌이 적고 오르골당은 오히려 유럽풍의 건물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반짝반짝 튀어 오르는 소리와 건물 전체에 가득 찬 앙증맞은 오르골들이 크리스마스처럼 빛났다. 마법 학교에서 파는 재료인 것처럼 온통 빛이 감돌아 나는 오르골은 들여다보지 않고 한참 천장을 올려다보며 걸었다. 언뜻 오래된 것 같기도 하고 꼼꼼한 장인이 공들여 지은 것 같기도 한 색깔이었다.
오르골은 종류도 다양하고 예쁘지만 손바닥 위에 쏙 올라오는 작은 사이즈도 기본으로 2000엔이 넘어 예산이 빠듯한 여행자에게는 조금 비쌌다. 결국 목조 건물 안에 흐르는 오르골 소리를 깜박이는 빛인 양 감상하다가 더 시간이 늦기 전에 오타루 운하를 보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게 없을 땐 어떻게 여행했을까 싶은, 기특하고 고마운 구글맵 어플에 운하의 위치가 떴다. 조금 멀어 보이긴 해도 못 걸을 정도는 아닐 것 같았고, 결정적으로 다른 교통수단이 뭐가 있는지를 몰랐다. 이미 주변은 어둠이 무르익는 중이었고, 간판 불이 켜져 있는 아기자기한 길을 따라 운하로 향했다. 훗카이도가 서울보다 영하 10도 정도는 더 춥다기에 옷을 꽁꽁 입고 털모자에 목도리까지 싸왔는데, 내가 어디서 잘못된 정보를 봤는지 2월의 훗카이도 체감온도는 겨울 끝자락에 있는 서울과 비슷했다.
대신 배가 고팠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아직 오후 6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식당은 다 문을 닫았거나 문을 닫는 중이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저녁을 먹는 걸까, 하고 비틀비틀 눈길을 걷는데 불 켜진 라멘 집이 구원처럼 나타났다.
미소 라멘은 조금 짰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훗카이도 음식은 원래 조금 짜고 짠 맛에 먹는 거라고 한다. 그럼에도 따뜻한 국물에 마음이 노곤하고 너그러워졌다. 운하까지 한번 천천히 걸어서 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