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여성의 개념을 검증하는 사회
너 ‘김치녀’야?
스무 살 때 처음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나는 커피의 맛 같은 것은 전혀 몰랐다. 친구들을 만나면 좋은 커피를 마시러 가기보다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거나 오래 앉아서 수다를 떨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 카페를 선택했다. 커피 값은 저렴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게 사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성인이 되었고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까, 알바비를 받으면 나를 위해 4천 원 정도는 쓸 수 있었다.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사 먹는 사람들이 꼭 비싼 브랜드를 원하거나 원두의 맛을 따지는 것은 아니었다. 분위기가 좋아서, 그저 눈치 보지 않고 쉴 자리가 필요해서, 특별히 좋아하는 메뉴가 있어서 등 커피 맛을 모른다 한들 카페를 선택하는 데에는 자기만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자기 돈으로 비싼 커피를 사 먹는 사람들을 비난할 필요가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굳이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서 당시 ‘된장녀’나 ‘김치녀’라는 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자친구에게 명품을 사달라고 조르는 여자친구뿐 아니라 자신이 번 돈으로 명품을 선택한 여성들까지도 어느새 ‘사치스러운’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그리고 김치녀의 의미는 점점 확산되면서 남성들의 시선으로 여성의 가치를 가르는 보편적인 기준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여성의 경제관념을 검증하는 것은 지나가는 여성들의 외모에 점수를 매기는 행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나는 느꼈다.
그때쯤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돌아다니면 평소 친하게 지내던 남자 선배나 동기들은 의아함과 깨달음이 미묘하게 뒤섞인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너도 스타벅스 다녀?
여자를 사귀기 위해서는 오로지 경제력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남자들은 사치스럽게 돈 쓰는 여자들을 비난하고 그로 인해 스스로 피해의식에 빠지는 것처럼 보였다. 여성들의 검소함에 높은 점수를 매김으로써 남성이 돈을 많이 벌고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남성만이 경제적 의무를 짊어지는 것이 불합리하고 무거운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제력이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유효한 지표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을까. 더치페이나 스타벅스 커피로 여성들의 경제적 개념을 검증하는 것은 아마 결과적으로 남성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내 주변에는 입만 열면 ‘여자들이란’을 내뱉는 선배가 하나 있었는데, 그 선배는 자신은 집도 없고 차도 없기 때문에 연애는 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했다. 여성들은 오로지 남자의 집과 차와 돈만을 중요시 여길 거라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지금 필요한 건 집이나 차가 아니라 여자들을 존중하는 ‘개념’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너도 스타벅스 다니냐?”고 인상을 찡그리는 선배에게 굳이 조언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경제관념을 검증하고 줄 세우는 그들의 시선은 불쾌했다.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상대와 밥 한 끼를 먹더라도 내가 돈을 더 내려고 신경 쓴 것은 내가 ‘개념녀’라서가 아니라, 더 이상 그와 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공공연하게 퍼져 나간 세상의 잣대에서 자유롭기란 어려웠다. ‘된장녀’나 ‘김치녀’로 보이지 않기 위해 몸을 움츠리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 않고 스쳐지나갈 뿐인 상대라 한들, 그 한마디만으로도 너무나 쉽게 나를 평가하고 비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 '워마드'야?
요즘에는 브래지어를 입지 않거나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화장을 하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게 ‘너 워마드야?’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사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가진 생각과 가치관, 일종의 사상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스스로에게 ‘무슨 주의’라는 ‘사상’을 말하기에는 사실 페미니즘이 뭔지 잘 모르고, 또 그 전체를 내가 포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 그래서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닌데’ 하고 조심스레 접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건 뭔가 좀 불합리해’라고 한 걸음 나아가 말하기도 전에 우리는 ‘워마드로 대표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예전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말했을 뿐인 여자 아이돌의 사진을 불태우며 지탄했던 사건이 있었다. 최근에는 학교나 직장에서도 페미니스트라는 것이 알려지면 실질적인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건 페미니즘이 위험하고 나쁜 사상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적어도 내가 알기로 페미니즘은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세상을 구축하자는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다. 젠더에 따라 주어지는 의무나 기대감에서 벗어나자는 것이고, 그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여자만 힘들어? 남자는 더 힘들어!’ 그런 식으로 누가 더 힘든지 따지고 재어보자는 것이 아니라, 성별에 의해 규정되는 힘든 지점에 공감하며 논의하고 시선을 바꾸어보자는 뜻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그러나 세상이 들이대는 잣대에 맞추어 자기검열을 하던 여성들이 이제 세상이 강요하는 코르셋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여성 인권 향상을 주장하자, 이번에는 그게 ‘징징거림’이나 ‘권리만 챙기려는 이기적인 행위’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남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지 않으면 김치녀라 불리던 시절을 지나, 남성과 평등한 권리와 안전을 주장하니 메갈이나 워마드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많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여자들이 의무는 팽개치고 권리만 챙기려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 탓에 오히려 남성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그들은 또 '여성 상위 시대'를 뒷받침하는 주장을 던진다. 현실을 인지하고 방법을 찾으면 되는데,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니 '남자들도 지금까지 이런 게 힘들었는데 참았어!' 하고 생색을 내는 형세다. 남성 인권 향상이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여성 인권 향상을 막으면서 이루어질 필요가 없다. 게다가 실제로는 많은 여성들이 ‘김치녀’나 ‘메갈’이 되지 않기 위해 함부로 페미니즘을 말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남성들은 ‘한남’이 되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며 말조심을 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을 검증하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남성들에게도 성 역할에 따른 고충이 있어왔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남성들의 어려움으로 여성들이 겪어온 불평등을 덮어씌우는 식으로는 의미 없는 불행 배틀이 될 뿐이다. 오히려 여성들이 말하는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 남성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 역시 페미니즘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 여성들을 아름다운 꽃이나 가정적인 현모양처가 아니라 한 사람의 동등한 주체로 바라봄으로써 남성들이 겪게 되는 피해는 없다는 뜻이다.
어떤 성별이 더 우월하고 또 어떤 성별이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우리가 다툴 필요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젠더 의식과 가치관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자고 말하는 것이 뭐가 나쁘단 말인가. 많은 이들이 자신이 결코 겪어보지 못한 삶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내가 힘들었던 걸 너도 똑같이 겪어봐야 한다고 앞 다투어 세상을 더욱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페미니즘은 아무것도 망치고 싶지 않다
페미니스트는 곧 ‘워마드’나 ‘메갈’를 뜻하고, 즉 여성우월주의이거나 적극적인 남성혐오에 앞장서는 집단이라 여기는 건 결국 이름만 달라진 또 다른 ‘무개념녀’의 등장이다.
그러나 모든 남성들이 여성혐오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듯, 페미니즘을 고민하는 모든 여성들이 급진적인 여성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것처럼 의심하는 시각은 불합리하다. 일부의 과격한 사상이 마치 전체를 대변하듯 치부하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변화시키고 싶지 않은 이들의 자기 방어일 뿐이다.
만약 처음 본 상대 남성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한다면 나는 그가 자신이 겪어보거나 혹은 겪지 않았던 영역의 어려움까지 포괄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성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사회운동가라고 여겼을 리 없다.
페미니즘이 곧 여성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불균형한 사상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많은 여성들이 발언할 기회마저 잃는다. 당장 모두가 만족할 만한 답을 낼 수 없다면 대화조차 단절되어야 할까. 우리는 다 같이 힘들어지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닌데’라는 말이 나를 조금 더 안전하게 지켜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페미니즘이 무엇을 망치려는 과격한 사상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의미가 담기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우리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며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