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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Sep 10. 2021

끝이 있는 사랑을 시작하는 일

이 사랑에는 안전장치가 없다

성격상 어떤 연애를 하면서도 결혼까지 상상한 적은 없었는데, 마지막 연애에서 상상의 과정을 생략하고도 어찌어찌 결혼에 도달했다. 혼자 살기도 버거운 세상에 남의 운명까지 패키지로 감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결혼을 하다니. 누군가를 '감당한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흔히 말하는 ‘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내가 책임질게’ 같은 마음과는 좀 달랐다. 상대방의 희로애락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일, 당신의 기쁨과 슬픔이 마치 나의 것인 양 느끼는 밀접한 관계가 나는 늘 부담스러웠다. 타인으로서 곁에 머물며 넘쳐흐르는 기쁨에 함께 환호해주고, 슬픔에 티슈를 건네어 말려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옆 사람의 일이었다. 내 몫의 감정들도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진정으로 누군가와 마음을 공유하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하고, 또 어디까지가 안전할까. 나는 그저 내 몫의 감정을 홀로 짊어지고, 나를 휘감고 있는 감정의 한가운데에 가만히 들어선 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조용히 그것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여 누군가와 공동체적인 삶을 선택한다면 각자가 감당해온 영역이 불규칙하게 뒤섞이지 않을까. 예기치 못한 변수가 묵직한 무게감으로 내 삶에 들어서며 내가 지켜온 세상 어딘가에서 댐이 툭 무너지듯 나의 일부가 훼손되지는 않을까. 그것이 비록 우울하고 어두운 영역이라 해도 그 역시 내가 지니고 살아온 것들인데, 나름대로 규칙성을 띠고 늘어놓은 조각들이 밀쳐낼 수 없는 타인에 의해 뒤섞인다면 나는 어쩐지 혼란스러워질 것 같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을 하나로 버무려 우리가 그것을 함께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처럼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되 그저 고개를 돌렸을 때 언제나 옆에 당신이 걷고 있는 일이 결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겠다는 약속은 진심일지언정 형체는 없다고 여겼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특히 혼자가 아니라 남과 함께 하는 일이라면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 어디에서 변수가 생길지 모르고, 그 변수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이 오가는 데에는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이 내 삶의 대전제였다. 언제 해일이 밀려와 나의 일상을 모조리 쓸어갈지, 내가 단단히 딛고 서 있던 땅이 무너져 내려 무릎까지 잠기게 될지 몰랐다. 그렇게 한 치 앞도 볼 수 없으면서도 용기를 내어 다른 이의 구역에 선뜻 들어가거나 내 구역의 울타리를 슬쩍 열어주는 것이 기본적으로 내가 느끼는 사랑의 본질이었다. 내가 정성껏 가꾼 섬에 초대했더니 온갖 과일나무를 다 흔들어 털어 가거나 해변에 장화나 타이어 같은 걸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누구를 쉽게 초대할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이며 그가 내 섬에 드나드는 걸 허락하는 것이 사랑이었다.      


20대 초반의 사랑이 거침없이 뛰어들고 온몸이 너덜너덜해졌다가 또 새로운 사랑에 뛰어드는 것이었다면, 30대 무렵의 사랑은 훨씬 더 머뭇거리고 주춤하며 경계심을 감추지 않는 것이었다. 일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면서도 마음의 방 하나쯤은 아무에게도 열쇠를 주지 않은 자물쇠로 닫은 채 지켜내는 것. 무엇을 사랑하는 건 내 삶에 누군가 더해져 풍요로워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도로 잃을 가능성이 생기는 일이다. 처음부터 없는 건 괜찮다. 하지만 있다가 없어지면 문득 그 빈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니까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되, 잃을 것에 대비하여 내 마음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며 살아가고 싶었다. 언젠가 엉망이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큼 이 사랑의 가치를 확신하는 데에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고, 아무리 견고하게 세워둔 최후의 벽이라 해도 예상치 못한 순간 저 구석에 개 한 마리쯤 드나들 만한 작은 구멍이 생기는 것을 막을 길은 없었다. 그 개는 문을 두드리고 서서히 알아가는 단계를 생략하고 아무렇지 않게 벽을 통과해 들어와서는 만난 첫날부터 벌써 나와 사랑에 빠질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인다. 순한 눈에 꼬리를 바삐 흔드는 여름이는 그렇게 내 삶에 들어왔다. 나는 그 저돌적이고도 무해한 마음에 놀라고, 감동하고, 그리고 몇 발짝 뒷걸음질쳤다.      


개를 키우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세 마리 고양이와 여름이를 키우기 전에 15년 동안 키우다가 별로 떠난 작은 강아지가 있었다. 강아지는 어린 개를 뜻하는 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개를 죽을 때까지 강아지라고 부른다. 작고, 귀엽고, 늙어도 아기 같은 그 사랑스러운 동물에게는 왠지 개보다 강아지가 어울리니까. 나의 15살 된 강아지가 영원히 떠난 이후로 나는 강아지를 개라고 부르게 됐다. 덩치 큰 여름이는 처음 왔을 때 8개월이었으니 나이로 따지면 더더욱 강아지였지만, 강아지라는 말랑한 단어 앞에서 마음이 순식간에 무장해제되는 것을 반걸음이라도 늦추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강아지가 아니라 개라는 단어를 쓰니까, 누군가는 내게 ‘강아지를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인가 봐요’ 하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존재감을 가릴 수 없는 나의 커다란 개와 덤덤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상했겠지만, 나는 이 사랑에 덤덤해질 수 없었다. 순수한 애정으로 끝없이 다가오는 마음 앞에서 그 마음을 차단하는 시도는 대개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래, 넌 언젠가 나에게 차마 들여다볼 수 없는 고통스러운 아픔을 남기고 떠나겠지만 그때까지 행복하고 좋은 시간을 함께 누려보자, 살아 있는 한 너는 나를 상처 입히지 않을 거고 나도 절대 너를 상처 주지 않을게. 그렇게 쉽사리 꺼낼 수 없던 약속을 개에게 하면서 함께하는 시간 동안 힘껏 사랑하자고 다짐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나는 가끔 나의 개나 고양이가 없어지는 꿈을 꾼다. 하지만 별 수가 없다. 도대체 왜 그래, 하고 혼내다가도 무구한 눈빛으로 매순간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개를 상대로 제대로 된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 나는 아직 젊고, 이 개는 심지어 어리다. 우리에게 놓인 유일한 이별은 개의 수명이 다하는 날, 아직은 아주 먼 미래에나 다가올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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